제9회 김달진관장의 미술사이야기, ‘포스터 이야기’편
제9회 김달진관장의 미술사이야기, ‘포스터 이야기’편
  • 김한정 기자
  • 승인 2020.08.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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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에 위치한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는  8일 오후 김달진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포스터를 배경으로 김달진 관장의 포스터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이번 제9회 김달진관장의 미술사이야기, ‘포스터 이야기’편은 시리즈로 나누어 보도될 예정이다.

포스터를 발명한 사람이 중국인이라는 설도 있고, 고대 이집트인이 도망 노예를 수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는 설도 있으나 모두 분명하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본격적으로 포스터가 사회에 주요한 매체로 등장한 시기가 석판화 기술의 발명으로 짧은 시간 안에 대량 인쇄가 가능해진 18세기 후반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때까지 포스터는 간결한 문자와 디자인 요소를 통해 통행인의 즉각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응용미술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한다. 프랑스 화가 쥘 세레(Jules Cheret, 1836-1932)는 최초의 원색 석판인쇄 포스터를 1858년 선보인다. 세레는 당시 생활용품이나 가게 간판에 등장하던 그림과 글자처럼 간결하고 평면적인 색과 선으로 포스터를 구성했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의 입체적 명암법과 원근법에 기반한 그림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런 세레의 포스터는 툴루즈 로트렉, 피에르 보나르, 조르주 쇠라 등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툴르주 로트렉과 알폰스 무하 같은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표현 기법, 뛰어난 소묘 실력을 지닌 화가들은 포스터를 순수예술의 영역에 들어서게 한다. 20세기 이후 포스터의 영향력은 라디오, TV, PC와 스마트폰에 이르는 다양한 매체들의 등장에 따라 축소되었다. 그러나 다른 고전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포스터는 이전과는 다른 사회적, 미적 의미를 획득하였고, 앞으로도 매체로서의 생명이 지속될 것이다. 포스터는 무엇보다도 인쇄 및 복제란 행위에 초점을 두고 볼때 판화와 그래픽디자인으로 분화하여 확장되었다.

‘TREASURES OF TUTANKHAMUN’, National Gallery of Art·Washington,
1976.11.17-1977.3.15, 125×47cm, 김홍남 기증

‘TREASURES OF TUTANKHAMUN’, National Gallery of Art·Washington, 1976.11.17-1977.3.15, 125×47cm, 김홍남 기증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된 어린 왕의 황금 장례식 마스크, 셀켓(Selket) 여신의 화려한 나무 그림, 램프, 항아리, 보석, 가구 등 내세를 위한 55개의 유물들을 이 전시에서 볼 수 있었다. 전시는 고대 이집트와 황금 유물, 어린 왕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전시가 진행되는 117일 동안 8만5천여 명의 관람객이 전시를 찾았다. 전시가 이러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집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192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개초된 첫 전시였기 때문이다. 1922년 투탕카멘의 유물이 발굴된 이래 첫 미국 순회 전시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전세계를 순회하며 진행되었다.

‘Kunst aus dem Alten Korea’, Museum fur Ostasiatische kunst, 2005.9.23-11.20, 83×53cm, 황채금 기증 : 고구려 무덤 벽화의 역사적 이미지, 독일 동아시아미술관

‘TREASURES OF TUTANKHAMUN’, National Gallery of Art·Washington, 1976.11.17-1977.3.15, 125×47cm, 김홍남 기증-김달진박물관 전시중기자)

고대 한국의 미술-고구려 제국의 무덤 벽화의 역사적 이미지> 전시가 2005년 9월 23일부터 11월 20일까지 동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렸다.

고대 한국의 미술인 고구려 왕국의 무덤에서 나온 벽화들의 역사적 그림을 전시하고자 했다. 이 전시는 고대 한국의 역사인 고구려의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유럽 최초의 전시회이다. 전시에서는 한국의 남포 인근 덕흥리에 있는 원래 크기의 벽화 무덤과 함께 무덤, 도자기, 석조, 석조 등 고구려의 주요 예술작품을 전시했다. 박물관 앞에는 광개토대왕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졌는데 이 기념비는 높이가 6.39m이며 길이가 2m이다.

‘호암미술관개관’, 1982.4.22, 106x65cm, 황채금 기증

‘호암미술관개관’, 1982.4.22, 106x65cm, 황채금 기증-김달진박물관 전시중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40여 년에 걸쳐 수집·소장하고 있던 골동품과 미술품을 1982년 4월 22일, 호암미술관 개관을 통해 일반에 선보였다. 이병철 회장은 앞서 1978년 자신의 소장품 등을 삼성미술문화재단에 기증했으며, 1976년 7월 착공에 들어가 1978년 5월 준공되다. 경기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호수 북쪽에 위치한 호암미술관은 부지 약 42,900㎡에 조성된 미술관은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석조건물로 총 19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개관전으로는 국보·보물급이 포함된 1,100여 점의 미술품을 전시했다. 793㎡의 1층 전시실에는 동양화·서양화·조각 등 현대미술품이, 2층 760㎡ 전시실에는 선사시대 유물과 고려·조선시대 도자기 등 문화재를 진열하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을 접할 수 있다. 1997년에는 부지 내 한국 전통의 멋을 살린 정원 ‘호소’를 개원했다.

‘Guardians of Happiness(행복의 수호자)’, 에밀레박물관, 1982, 92×63cm, 김홍남 기증 : 에밀레박물관 소장 한국민화전

‘Guardians of Happiness(행복의 수호자)’, 에밀레박물관, 1982, 92×63cm, 김홍남 기증 : 에밀레박물관 소장 한국민화전-김달진박물관 전시중

Guardians of Happiness(Shamanistic Tradition in Korean Folk Painting)-Collections of Emileh Museum은 1982년 5월 1일 에밀레 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에밀레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민화 중 대표작 1백 50여점이 5월 2일 미국으로 떠나 15일부터 워싱턴을 포함해서 미국을 순회했던 전시다. 이 전시는 우리나라 에밀레 박물관으로부터 작품을 빌려 열렸던 전시로 「행복의 수호자들」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 이 전시는 한국인들의 염원과 삶의 가치가 담긴 민화를 주제로 삼아 외국에 한국 미술의 멋과 아름다움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제로 이 전시와 관련해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즈와 같은 미국 주요 일간지들은 ‘미소 짓게 만드는 한국 미술의 매력’을 칭찬했다.
민화의 주요 소재는 호랑이, 까치, 거북이, 학, 수탉, 잉어, 대나무 등으로 소박한 필치와 화려한 색이 특징이다. 민화는 재앙을 물리치는 수호자이자 장수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들을 그림으로서 건강과 평화, 부귀를 염원하던 한국인들의 희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JF.Millet’, Museum of Fine Arts·Boston, 1984.3.28-7.1, 88×60cm, 김홍남 기증

‘JF.Millet’, Museum of Fine Arts·Boston, 1984.3.28-7.1, 88×60cm, 김홍남 기증-김달진박물관

장 프랑수아 밀레(J.F.Millet, 1814-1875)는 바르비종파를 이끈 19세기의 화가로 사실주의, 자연주의 등 다양한 화풍을 구사했으며 데생과 동판화에도 능했다. 바르비종파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와 풍경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생활을 그리던 사실적인 화풍이 특징인데 밀레는 이 바르비종파의 대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연 풍경이나 숲을 위주로 그린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과는 달리 밀레는 농민의 삶의 풍경에 사실적인 묘사와 종교적인 분위기를 적용시킴으로써 바르비종파와 사실주의 화풍을 모두 보여주었다. 밀레가 이렇게 농민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밀레가 나고 자란 곳이 그뤼시라는 작은 농경 마을이기 때문이다. 밀레가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환경이 어려웠다. 그러다 1847년 파리 살롱에서 성공적인 전시회를 열게 되며, 1848년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이 정부에 의해 매입되는 등 그는 미술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 후 탄생한 작품이 <이삭 줍는 여인들>이다. 1859년에 완성된 <만종>은 미국과 프랑스가 그림을 구매하기 위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근대미술’, 국립중앙박물관, 2002.10.29-12.8, 89x60cm, 황채금 기증

‘일본근대미술’, 국립중앙박물관, 2002.10.29-12.8, 89x60cm, 황채금 기증-김달진박물관 전시중

<일본근대미술> 전시는 1945년 광복 이후 본격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일본 근대미술 작품 중 '일본화'와 '공예품' 70여 점을 정선하여 선보인 전시이다. 이 전시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와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일 문화교류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있는 일본 근대미술품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점진적으로 공개함으로써 국민에게 일본문화에 대한 폭넓은 접촉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 작품들은 1900년대부터 1940년 초까지 열렸던 일본의 관설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이나 추천작가로 활동한 당대의 유명작가의 작품들이기 때문에 일본 근대 관전의 양상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Atget’, The Museum of Modern Art·New York, 1969.12.1.-1970.3.22, 74×48cm, 김홍남 기증 : 프랑스 사진가 으젠 앗제의 MoMA 개인전

‘Atget’, The Museum of Modern Art·New York, 1969.12.1.-1970.3.22, 74×48cm, 김홍남 기증 : 프랑스 사진가 으젠 앗제의 MoMA 개인전-김달진박물관

프랑스 사진가 장 으젠 오귀스트 앗제(Eugène Atget, 1857-1927)의 회고전으로 미국 사진가 존 샤르코우스키(John Szarkowski, 1925-2007)가 기획하였다. 앗제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활동하며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사라져가는 파리의 옛 모습을 기록하였다. 앗제는 1890년경에 파리로 이주한 뒤 사진술을 독학해 다양한 피사체를 촬영한 뒤 화가들에게 자료 사진을 판매하기도 했다. 1890년대 후반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앗제에게 오스만 남작의 도시계획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파리의 구시가지를 촬영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옛 파리 지형과 거리, 풍경 기록 등을 연작으로 남겼다.

‘한국화100년전’, 호암갤러리, 1986.4.1.-5.12, 76×52

‘한국화100년전’, 호암갤러리, 1986.4.1.-5.12, 76×52-김달진박물관 전시중

중앙일보사에 위치한 호남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로 ‘한국화100년’ 이란 제목으로 우리 근대의 심전 안중식 작가에서 그 당시 30대 작가까지 우리나라 한국화 100년에서 중요했던 작가들을 총 망라해서 보여주었던 전시로 우리나라 역사상 중요한 전시이다. 주최가 중앙일보, MBC, 삼성미술문화재단, 후원사가 동방생명, 한양투자금융으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남겨진, 미술, 쓰여질, 포스터》展을 8월3일부터 10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그 본연의 실용적 목적은 사라지고 예술적, 기록적 가치만을 지니게 되는 ‘미술 포스터’에 집중하였다. 포스터는 광고나 선전을 위해 사용되어 온 가장 고전적 매체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작가라면, 포스터는 전시장의 작품보다 시기적으로 더 앞서서 대중에게 보이는 작가의 ‘첫인상’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이러한 포스터 중에서도 뮤지엄과 미술전시 홍보를 위해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만들어진 미술 포스터를 1,0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남겨진 것’, 그 개별 요소들의 특성을 탐색하기 위해서 2008년 박물관 설립부터 현재까지 선보이지 못했던 것에 집중하여 선별했다. 이번 포스터전은 국내 만이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일본에서 열린 전시를 볼 수 있으며 실제 판화로 제작된 오리지널 판화포스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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