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리비아식 해법
카다피의 리비아식 해법
  • 오정인 소설가
  • 승인 2007.06.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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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리비아식 해법 받아들이면 북핵문제는 더없이 쉽게 풀릴 것

 
   
  ^^^▲ (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 지도자, (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별도로 북핵 2.13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시설폐쇄 여부를 자체적으로 검증 할 것 ”

6월 2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미(美)태평양군의 <티모시 키팅>사령관이 한 말이다. 그는 “우리는 IAEA를 포함한 다른 기구들의 지원과 협조아래 북한의 핵 폐쇄 검증을 시도 할 것” 이라고 했다.

미국군이 북한핵의 폐쇄를 검증하겠다는 불신(不信)의 배경이 분명 있을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의 유력지(紙) <워싱턴 포스트>는 24일자 사설(社說)에서 “미국은 양보만 하고 있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며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양보를 <부시>정권의 졸속정책으로 보고 이제는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과거 <힐>이 동유럽에서 다루던 유럽식 공산주의자로 생각하면 실패하게 된다”고도 했다.

27일 , <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기 전에 모든 보상을 제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경험에 따르면 북한은 그럴 경우 보상만 챙기고 값은 더 높게 매겼기 때문” 이라고 했으며, <힐>의 이번 21일 방북에 대해서 “희망적이 됐지만 낙관적인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나는 금방 북핵이 다 해결 될것처럼 한반도 평화체제니, 일본, 러시아를 뺀 4자회담이니, 연말 전이니, <부시>의 임기전이니, 장밋빛 청사진을 말하는 <크리스토프 힐>차관보의 스스로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눈빛과 다변(多變)은 신뢰할 수 없지만, 위에서 예를 든 이들의 사려깊은 판단에는 동감한다.

당장 초기 단계 이행 해야 할 <핵 불능화>라는 용어에서도 북한은 2.13 합의 바로 직후 <임시가동중지>라고 한 바 있다. 한국의 친 김정일 정권은 아직도 초기 단계의 이행여부도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30일 40만톤의 쌀을 보낸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에서처럼 북한의 핵포기의 진정성은 2.13 합의후 140일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아직 제대로 신뢰감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모든 관계국들이 현 시점에서 북한에 바라고 있는 것은 물론 다른 방법도 숨겨져 있으리라 믿고 싶지만 표면적으로는 <리비아식 해법>으로 보인다.

<리비아> 역시 북한처럼 <아랍 사회주의자 동맹>이라는 단일 정당이 지배하는 이슬람과 사회주의의 혼합국가이고 독재정권이다.

리비아의 30여년 독재자인 <무아마르 카다피>역시 북한의 김정일 못지않은 철저한 반미, 반(反)유대노선이었었고 <중동의 미친개>로 불릴정도의 가장 적극적이고 호전적(好戰的)인 테러지원국이었다.

북한처럼 생화학무기, 생물무기는 물론 미사일과 핵을 개발했고 ,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도 사들였다. 대량살상무기를 제재하려는 세계에 반발해서 전세계 반체제게릴라 단체를 적극 지원했고 테러를 감행했다.

1986년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테러 지원을 제재하기위해 수도 <트리폴리>가 폭격당하고 양녀가 죽자, 1988년 영국발 뉴욕행 <펜암>기를 폭파해서 270명이 사망하는 <로커비>사건을 일으키고 1989년에는 프랑스 UTA항공사 항공기 폭파사고까지 생기자 유엔 안보리가 제재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시절부터 경제제재를 받아왔고 1996년 미국은 <이란 - 리비아 제재법안(ILSA)>을 제정하고 더욱 강력한 봉쇄조치에 들어 간다.

북한과 거의 흡사한 길을 걸어온 곳이다. 그러나 < 크리스토프 힐>과 <부시> 정권이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점이 있다. 북한과 <리비아> 그리고 <카다피>와 김정일은 전혀 다른 부분이 있다.

첫째,

<무아마르 카다피>는 철저한 무슬림으로 태어나서 종교를 가지고 있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부패에의 저항에서 스스로의 손으로 정의를 위한 혁명을 일으켰다.

그 자신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혼합한 독재자가 되었지만 혁명을 일으킨 바탕이 <리비아>의 정치 사회질서의 규율을 종교적인 <코란>에 의해 인민대중국(Jamaihiriya)체재로 간 것이다.

김정일은 폐쇄된 북한에서 세습 독재의 그늘 속에서 그대로 스스로 신(神)과 같은 절대자가 되어 세상의 변화 , 국제질서의 변화 자체를 모르는 우물안의 개구리식 아집의 독재자일 뿐이다.

물론 완전한 후계자가 되어 권력을 잡을때가지의 잔혹한 투쟁은 있었겠지만 , 그것은 나름대로 부패에 항거하는 젊은이의 정의로움에서 , <카다피>처럼 이슬람이라는 민족적인 문제에서의 몸부림이거나, 북한 주민들의 삶을 위한 어떤 혁명이 아닌 단순한 탐욕의 권력투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다르다.

더구나 북한공산주의, 특히 김정일에게는 <카다피>같은 이슬람으로서 , 더구나 가장 힘들고 모험적이고도 사막의 천막민족인 <베드윈>족 출신으로서, 무슬림으로서<카다피>가 지녔던 그래도 신(神)을 경외하는 종교적 신앙심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고 , 오히려 김정일 그 스스로 축지법도 쓰는 영명하신 장군님 ,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절대 신으로 추앙받는 상황이라 할수 있었다.

그래서 북한주민 3백만이 거리에서 굶어 죽어도 김정일은 눈도 깜짝 하지 않고, 오히려 같은 시기에 그들 모두를 살릴수 있는 9억달러를 들여서 죽은 김일성의 무덤인 금수산 궁전을 지을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무아마르 카다피>에게는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 라는 제대로 된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김정일과 다르다.

물론 김정일에게도 아들들이 있다.

건강 이상설이 나도는 이즈음 김정일은 군부를 다시한번 자신의 충복들로 완전히 개편하고 그 아들들 중 하나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그 아들들의 면면을 보면 김정일의 그 바램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3대째로의 독재의 세습을 꿈꾼다는 자체가 김정일의 병적인 폐쇄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세상이 변화하는것조차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다.

2003년12월19일

<리비아>의 <카다피>는

“리비아는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국제 규약상 금지된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 라는 발표를 해서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 이면에는 <카다피>의 아들, ‘이슬람의 칼’이라는 의미의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의 설득이 있었다.

영국의 런던 경제대학(LSE)에서 박사과정에 있던 <사이프 알 이슬람>은 실용적이고도 합리적인 지식인이었고, 미국과 영국등이 그야말로 조용한 외교로 설득할수 있는 대화가 통하는 젊은이였다.

유엔과 전세계의 무제한사찰과 경제 봉쇄정책으로 석유 매장량 세계제 3위이고 OPEC(석유 수출국기구)중 7위인 산유국이었지만, 원유수츨 봉쇄등의 강력한 제재로 당시 실업률 30% , 인플레이션 년 50%의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더구나 미국의 9.11테러 이후 <리비아>는 더욱 고립 되었었다. 그런 중에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는 호주, 스위스, 프랑스등에서 비자연장거부라는 굴욕을 당한다. 그는 그때 그 일에 분노하기보다 <리비아>를 살려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35세의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를 미국이 협상채널로 활용했고 당시 영국에 거주했던 미하원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웰던>의원이 그를 설득했던 것이다.

2003년 3월

영국정보국 해외파트인 MI 6으로 온 <사이프 알 이슬람 >의 전화,

2003년 12월 16일,

<로버트 조지프 >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비확산 담당 보좌관이 런던으로가서 < 리비아>정보국 총책임자 <무사 쿠사>와 최후 담판,

2003년 12월 19일 <리비아> WMD포기 선언,

독재자의 아들이 아버지 < 무아마르 카다피>를 설득했고, 마침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자,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포기하고 <카다피>는 테러 지원국의 오명에서 벗어나 <리비아>를 살리기로 결정했고 , 개혁 개방을 택하기로 했으며 적대적 반미를 버리고 미국의 중동정책을 지지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 지도자라는 것은 영원한 직업이 아니며 상속되는것도 아니다”라고 세습 독재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자신을 후계자로 부르는것도 사양하는 <카다피>의 젊은 아들은 지금 <리비아>의 민주주의화와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위해 <두바이>의 눈부신 발전을 모델로 삼고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리비아>식 해법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지금 이시점에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

2003년 12월 19일 WMD완전포기를 선언하고 단 1주일만인 12월 27일에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사찰단을 데리고 <리비아>로 들어 갔다는 사실이다.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선언했다면 적어도 이정도의 진정성은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은 2.13합의를 끌어내는데도 10여년이 걸렸고 그 합의서의 초기단계 이행조차도 140일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진전이 없다.

김정일에게는 대화가 통하거나 북한주민들을 인간답게 살게 하기위해 고민을 하는 이지적이고도 합리적인 실용주의자 아들도 없다.

북한은 석유산유국은 커녕, 식량조차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몇십년전의 삶을 겨우 꾸려가고 있는 척박함과 퇴보의 페쇄, 여름에도 그대로 암울하고 얼어붙은듯한 붉은 장막속의 동토의 땅이다.

막다른 골목의 김정일이 유일하게 움켜쥐고 있는 마지막 생존의 무기가 결국 핵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김정일은 살아있는 한은 절대로 자의적으로 개방, 개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개방은 곧 김정일과 그 체재의 몰락을 의미한다. 김정일은 누가 뭐래도 중환자다. 북한의 우연적인 개방? 혹은 변화는 의외로 빠를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내부로부터의 붕괴, 그리고 혹시 급변이나 변고에 의한 김정일 이후의 북한은 누가 정권을 잡던지 잠시는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머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저절로 개방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나 휴전선정도는 저절로 무너질 엄청난 난민들에 의해 무서운 혼란을 동반한 급변사태가 이 한반도에 오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북한의 그런 급변사태는 한국의 친 김정일파를 두렵고도 당혹하게 만들 것이고, 그들의 마지막 생존에의 투쟁들이 곳곳에서 일어 날 수도 있을 것이어서 어쩌면 한국이 더욱 참혹한 혼돈의 쓰나미에 정신없이 휩쓸릴 수도 있을것이다.

<힐> 차관보가 연일 말하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한국의 국민적 합치된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미국과 북한만의 평화체제 선언이라든가, 김정일 비위맞추기나 한국대선을 위한 평화를 빙자한 4자회담의 평화무드라는것도 과연 누구를 위한 진정한 평화공세인지? 실은 우리 국민들로서는 그리 기분 좋게 들리는 말들은 아니다.

물론 <카다피>가 선택한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 김정일이 받아들인다면 북핵문제는 더없이 쉽게 풀릴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나 역시 바라고 있다. 그러나 <리비아>와 북한이 너무도 다르듯, <카다피>와 김정일은 그 출생이나 종교, 사상이나 철학 자체가 전혀 다르다.

더구나 북한의 김정일에게는 독재자로 세습시키겠다는 아들은 있지만, 북한을 개혁 개방해서 부강하게 발전 시키려는 젊은이다운 열정을 가슴에 품은 이지적이고도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생각의 대화가 통할만한 아들은 없다.

그래서 방법은 단 하나. 김정일에게는 방법을 전혀 달리해야 한다는 게 방법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평화를 위해 ,인류를 위협하는 핵을 반드시 폐기시킨다는 순수한 진정성이 미국과 우리모두에게 정말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의 서두에 소개한 “미군이 북핵 2.13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시설 페쇄여부를 자체적으로 검증 히겠다”고 한 <티모시 키팅> 미 태평양 군 사령관의 말에 나는 오히려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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