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대전 함락- 낙동강으로 후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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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대전 함락- 낙동강으로 후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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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 소장 마저 전사...

^^^▲ 긴박했던 한국전쟁^^^
7월 13일에는 청주가 떨어지고 방어하던 수도사단은 보은으로 후퇴하였고 다음날은 육군본부가 대전에서 대구로 후퇴하였다. 미 24사단장 딘 소장은 대전 고수를 결심하고 7월 12일까지는 휘하 병력 모두를 남하시킨 다음 금강에 놓여있던 모든 교량을 폭파해 버렸다.

금강 남쪽에 딘 소장 휘하의 34연대, 19연대를 배치시켰다. 14일 이른 새벽 강건너에 적의 탱크가 그 육중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상대는 50여대의 탱크를 앞세운 공산군의 정예 중의 정예군인 3사단과 6사단, 하지만 탱크는 강을 건너지 못하는 쇠뭉치다. 곧이어 빗발치듯 하는 포탄이 아군 진지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수백명의 공산군이 나룻배로 물을 건너 측면으로부터 방어 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산군은 정상적인 공격법으로는 방어선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작전을 바꾸었다. 즉 어둠을 이용하여 보병병력을 도강 시키기로 작전을 바꾸었다.

16일 밤 일제히 물로 뛰어 들었다. 미군은 야간 작전에 서툴렀다. 그러나 날이 새고 미 공군의 지원을 받은 유엔군의 맹렬한 반격이 개시되자 밤새 도강했던 공산군은 완전히 격퇴되었다. 이러한 가운데도 주방어선을 벗아난 공산군의 보조부대들은 어느 사이 강의 다른 곳으로 넘어 들어와 강변에 포진한 유엔군의 후방에서 쉴새없는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폭 200미터에서 300미터에 달하는 달하는 금강 남안에 배치된 유엔군의 50킬로에 달하는 방어선은 강 건너 전면에서 공격해 오는 주공격을 막기에도 힘에 벅찬 형편이었고, 더구나 측면이나 후방에서의 공격을 막을 여유는 없었다.

즉 미 24사단의 3개연대는 정규병력의 60%밖에 되지 않았으며 이들은 야전이나 산악전 또는 야간전투를 몸에 익힌 공산군의 교묘한 전술에는 당할 도리밖에 없었고 또 적은 숫적으로도 우세한 입장에서 공격을 하고 있었다.

만일 금강의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대전은 그 길로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고 대전의 함락은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호남과 영남으로의 요충이다. 게다가 실제로 방어를 맡고있는 병력이라야 전투에 서툴고 통신 연락도 두절상태이다.

방어선의 후방에서 공격하는 공산군은 유엔군의 보급로와 주요 통신시설을 파괴하여 후방의 지휘사령부와의 통신은 두절되고 방어선의 횡적인 연락망도 막혀버리고 말았다. 또한 적들은 방어선에 배치된 유엔군의 퇴로마저 끊고 섬멸작전으로 나왔다.

7월 17일, 대전의 사단본부에서 딘 소장은 미 24사단에 후퇴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후퇴조차도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금강 방어선 후방의 고지 능선에 배치된 적의 기관총 사격을 피해 나가야했다. 적은 금강을 강행 도하하였으며 미 24사단의 방어선은 붕괴되고 말았다.

포로가 된 딘 소장

7월 16일 밤 금강을 도강한 적의 주력은 대전을 향하여 몰려들었다. 7월 18일에는 대전을 완전히 포위하자 딘 소장은 24사단의 34연대를 대전 시내에 배치하고 사단의 나머지 병력을 시외로 이동시켰다.

3일간의 공방전 끝에 20일에는 시내 변두리에 진을 쳤던 병력이 시내로 후퇴해 들어오고 포위한 적의 화력은 시내 중심지로 들어와 마침내 적의 탱크가 대전 시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8군 사령부는 이미 대전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최후의 교두보를 낙동강으로 옮겼다.

20일 아침 공산군의 선봉대가 대전 시내로 돌입하여 오자 미군은 적은 병력으로써 3개사단의 적과 싸우면서 대전으로부터 후퇴하였다. 시내에서 최후로 후퇴하던 미 24사단장 딘 소장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단신 남하하다가 8월 25일, 진안군 정천면 구룡리에서 포로가 되었다.

대전을 점령한 공산군은 숨쉴 겨를도 없이 후퇴하는 유엔군과 국군의 뒷덜미를 위협하였다. 공산군의 병력은 여기서 경부선을 취한 병력과 호남으로의 진격 부대로 갈렸다. 호남을 향한 적군은 급속도로 전라지방을 석권하였고 이 방면을 맡았던 국군은 대항도 못하고 후퇴를 거듭하였다.

당시 전북지구 사령관 신태형 소장과 전남지구 사령관 이응준 소장의 병력은 철수에 철수를 거듭, 결국은 경남지방으로 밀렸다. 즉 전북지역 부대는 전주-임실-남원을 거쳐 산청-합천으로 빠졌고, 전남부대는 광주-순천을 거쳐 7월 27일 여수에서 해상으로 철수 마산에 상륙하였다.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 소장 전사

공산군 제4사단은 진안-장수-합천으로 공략하고 제7사단은 장수-진주로 향하였으며 6사단은 남원-하동-사천을 거쳐 마산으로 진격하였다. 또한 그 일부는 전주-광주-순천을 거쳐 역시 마산 근교에 집결하여 낙동강 방어선의 서쪽 공격선을 형성하였다. 이때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 소장이 하동작전에서 7월 26일 전사하였다.

이렇게 그칠 줄 모르는 공산 침략군은 경기, 충청, 전라, 강원 등 중부와 관동, 호남지방을 완전히 석권하고 낙동강 이남에 남은 유엔군과 국군을 전면에서 공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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