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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 죄와 벌 책표지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불후의 명작 <죄와 벌>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약 이십년 전 쯤 이었는데, 그 때 필자가 이 글을 통해 느낀 것은 단순히 권선징악적인 요소에 기초를 둔 인간행위의 분석과 도적적 차원의 징계 정도에 불과 했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가 의도한 것이 지식인을 대표 한다고 할 수 있는 한 대학생을 통한 양심에 근거하지 않은 논리의 허구성과 지식인의 독단적일 수 있는 오만한 지성에 대한 냉엄한 지적과 경종의 소리임을 깨닫는 데는 벌써 이십년 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읽으면 읽을 수록 작품의 심오한 의미에 빨려들게 하는 이 글에서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까지 속속들이 파헤쳐내는 작가의 치밀함과 예리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처했던 독특한 시대적 상황과 체험, 즉 구질서와 신사조가 격동하는 19세기 러시아 사회에서 사형 구형과 유형(流刑) 등의 엇갈린 체험과 온갖 역경 속에서 얻은 남다른 사색 때문이었으리라. 이 작품은 작가가 가장 어려운 역경에 처한 시베리아 유배지에서 집필된 것인데, 그 내용은 나름대로의 자기 주장과 논리를 토대로 정당하다고 믿는 살인을 자행한 한 대학생의 이야기다.

장소는 뻬데스부르그의 한 빈민가. 주인공 라스코오리니코프는 무척이나 이론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의 소유자인데, 그는 집안의 불행과 가난, 기타 여러가지의 복잡한 동기에 의해 고리대금업을 하는 한 노파를 살해하고 의외로 살인 현장에 나타난 노파의 동생까지 살해해 제 2의 살인까지 자행하고 만다. 그는 자신을 범인(凡人)과 대별되는 비범인(非凡人)으로 여기며 사회에 쓸모 없는 한 노파 쯤 죽여서라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식의 주관적 논리 하에 이러한 범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그러나 범행 후 자신이 믿었던 신념과 양심 간에 심한 괴리를 느끼며 양심의 가책과 밀려오는 고독, 공포에 휩싸인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그는 나약하고 순진한 창녀 쏘냐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시베리아 유형(유형)의 길에 오르게 되는데, 쏘냐도 그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는 자신의 범행을 후회 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 보려는 몸부림을 계속 한다.

역사상의 많은 위인들이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지만 범죄자로 취급 받기는 커녕 오히려 영웅으로 취급 받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볼 때, 자기 자신은 단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했을 뿐이라 단정하며 자신의 논리를 계속 고집한다. 그러나 그는 유배지의 옥중에서 인간의 본성 앞에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점차 새로운 삶에 눈 뜨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감옥에서의 갖가지 체험과 쏘냐의 한없이 순진하고 순수한 모습에서 받은 감명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 나의 첫번째 의문은 작가가 왜 지식인이고 지성인의 범주에 속하는 한 대학생을 작중 인물로 택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확고한 자기주장과 논리를 토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소위 지식인들에게 윤리와 양심의 뒷받침이 없는 논리와 사상은 한낱 허울에 불과 하다는 종교적 도덕적 신념을 말하고 싶은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것은 무지한 인간의 단순 동기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합리적 사고로 무장된 한 대학생이 행위의 주체로 등장했기 때문에 더 가슴 깊이 와 닿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작가의 치밀한 심리묘사에 빨려 때로는 작중 인물과 같이 고뇌 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했는데, 결국 라스코오리니코프의 행위는 그의 독단적이고 냉혈한 범죄자적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에서 멀어져가는 측면도 없지 않은 현대적 사고방식의 시대적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 했다.

그가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사고를 하기에 앞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양심을 존중하는 인간 본연의 심성에서 출발 했더라면 이러한 비극적인 일은 없지 않았을까? 왜곡된 지(知), 불합리한 지(知)는 무지 만도 못하며, 그것이 누구나의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절대적 가치에서 벗어났을 때 그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소설에서처럼 개인적인 차원의 불행 정도가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어떠한 종류의 큰 비극도 가져다 줄 수 있는 심각한 독소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 라스코오리니코프의 비극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식 해야 될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이 작품은 우리들에게 그러한 현대적 인간형의 문제를 제시 했다는 점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 된다.

논리적인 사고는 현대인에게 분명히 필요한 요소이나, 그 속에서도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될 인간 본연의 그 무엇이 있음을, 논리에 앞서는 그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고 느끼게 해 주는 수백년 전의 한 작가의 메시지는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드는 위대한 조언으로 다시금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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