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 타카모리와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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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고 타카모리와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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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 닮아도 너무 닮아

 
   
  ▲ (좌) 사이고 타카모리 (우) 이명박  
 

일본 우익의 원류로 취급받는 사이고 타카모리는 악랄한 정한론자였다.

처음 조선을 쳐야한다며 ‘정한론(征韓論)’를 내세운 자는 키도 타카요시(木戸孝義:1835~1877)였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성공 시킨 후 그해가 가기도 전인 12월 키도가 먼저 ‘조선을 정벌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조선이 외교상 무례를 저질렀다는 억지였다.

키도는 죠오슈우(長州-현재의 야마구치현) 출신의 토막파(土幕派-막부 타도를 주장하던 그룹)로 쵸오슈우항(長州藩)의 번의(藩醫-항의 의사) 출신이다.

당시 일본정부는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토오쿄오)에 막부를 연 이후 12차례에 걸쳐 조선에서 통신사를 파견해 주었던 사례에서 보여주듯 한일관계는 250여 년간 조선 우의의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성공 이후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일본정부는 조선보다 먼저 근대화 시킨 국력을 무기로 일방적으로 한일 간의 외교 관례를 깨고 갑자기 일본 상위의 입장에서 다시 외교관계를 맺자고 요구해왔다.

즉 일본은 ‘천황’의 국가이므로 조선의 ‘왕’ 체제 국가보다 상위(上位)라는 뚱딴지같은 주장이었다. 이에 조선은 ‘천황’의 ‘황(皇)’이 중국 황제의 ‘황(皇)’과 동렬이므로 이러한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에 메이지유신 성공 이후 자신감에 벅차오르던 일본은 조선을 침략해야한다는 정한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강성해진 국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자는 발상이다.

키도에 이은 일본 우익 정치가들의 조선 무시 발언은 줄을 이었다. 일본 근대사를 바꾼 중요 인물인 이들은 키도의 정한론을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지지했다.

예를 들면, 요시다 쇼오인(1830~1859)으로부터 사이고 타카모리(1827~1877)를 비롯하여 한학자에서 당시 유행하던 네델란드와의 무역 열풍을 타고 그 언어를 전공한 후 다시 국제 정세를 미국이 주도하자 즉시 영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한 사상가요, 와세다 대학을 세운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福澤諭吉) 등이 정한론을 이끌었다.

이들은 모두 ‘고대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굳게 믿는 몽매한 황국사관 신봉자들이었다. 때문에 조선침략은 수치가 아니며 오히려 정당한 고토회복이라는 의식이 그들의 작은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들이 일방적으로 일왕(천황)을 조선보다 상위의 입장으로 정해놓고 조선과의 외교관계 재개정 요구를 꾸준히 요구하다가 우리정부가 계속 이를 거절하자 마침내 정한론을 근거삼아 1875년 일부러 모사를 꾸며 강화도사건을 일으키니, 본격적으로 한반도 침탈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들 중 가장 악질적인 인물이 바로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다. 정한론의 우두머리 격인 사이고는 1873년 정한론을 정권다툼으로까지 이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권 획득을 위해 이웃나라마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용하는 저열함과 비열함이 특히 눈에 띤다.

그는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와 에토오 심페이(江藤新兵)의 도움을 얻어 정권 장악에 거의 성공하는 듯 했으나 서구 견문으로부터 막 돌아온 오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와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 등에 의해 좌절 되었다.

그렇다고 오오쿠보나 이와쿠라가 정한론을 원칙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먼저 일본의 부국강병을 완전히 이룬 다음에 조선을 치자는 시기선택의 문제만이 사이고와 달랐을 뿐이다.

즉 조선과 중국의 국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조선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일단 일본이 완전히 무장한 다음 공격해도 늦지 않다는 견해였을 뿐이다. 그 시간차는 단 2년에 불과했다. 결국 메이지정부 내의 권력다툼에 정한론이 철저히 이용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촉발시킨 것이 사이고(西郷)였다.

그러나 정권다툼에 실패한 탐욕스런 사이고, 에토오, 이타가키는 참의(參議) 직을 사직당하고 만다. 이에 사이고는 결국 고향인 사쓰마(薩摩-현재의 카고시마현)로 내려가(쫓겨 가) 그곳에서 1877년 세이난(西南)전쟁의 영수로 추대되어 이토 히로부미, 이와쿠라 등이 주도하는 정부군과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할복자살함으로써 한 많은 51년의 인생을 끝으로 최후를 장식하고 만다.

이처럼 정권다툼에서조차 조선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던 사이고는 결국 자신이 만든 학교에서 키운 2만여 명에 가까운 제자들과 함께 무력으로 정권의 고지에 서려다가 고향 사쓰마에서 자신의 손으로 결자해지 하는 비운의 사이고(最後)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웃국가마저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이용하던 사이고, 그의 비열함은 결국 메이지유신의 동료였던 이토 히로부미와 오오쿠보나 이와쿠라로부터도 철저히 소박을 당하고 비참한 모습의 최후로 일생을 끝맺고 말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현재의 한나라당 내 경선 구도 하에서 벌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책임당원 규정을 놓고 억지와 떼법을 즐겨 사용하거나 공천권을 가진 척(몽상에 불과) 공갈, 협박으로 의원들 줄 세우기 하는 등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계산으로 양심적인 당원들과 많은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후보가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

특히 이명박 전 시장과 사이고는 비슷한 면이 많아 보인다.
우선 비슷한 점을 비교해 보자.

① 일본 태생이다 (사이고는 사쓰마[카고시마현], 이명박은 오오사카)

② 일본 이름이다 (사이고 타카모리, 츠키야마 아키히로[Tsukiyama Akihiro:月山明博]-호적상 6세까지)

③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다 (정한론까지 이용하는 사이고, 믿을 수 없는 여론조사 및 공천 공갈 협박, 무리한 한반도 대운하 공약 등 등)

④ 거짓이 많고 억지를 잘 부린다 (일본이 조선보다 상위이며 상국에 무례하다고 이웃 국가를 정벌하자는 주장, 김유찬 씨의 주장으로 볼 때나 여론조사 67% 하안선 보장이라는 반민주적 억지 주장과 책임당원 규정에 대한 생떼쓰기)

⑤ 자신을 죽이는 공허한 계획을 남발한다 (정권획득을 위해 ‘정한론’을 이용한 사이고, 대권을 쥐기 위해 허황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이나 747 경제계획, 신혼부부에 공짜(원가) 아파트 한 채 씩 제공 등 등 임기 내 이루기 힘든 공약 남발)

⑥ 권모술수에 능하다 (스스로 정당성을 주장하며 정한론을 외치고, 모사를 꾸며 이를 권력 장악에 이용했던 사이고, 이 캠프 쪽의 믿을 수 없는 여론조사와 정당한 검증조차도 네거티브라며 매도하는 뻔뻔함 등 등)

⑦ 과대망상증이 환자 같다 (사이고는 폐번치현[廃藩置県-번을 폐하고 현을 둠]을 주도적으로 성공시킨 후 이 작은 성공을 계기로 오만방자 해져 실제적으로 일본최고(일왕은 상징적인 권력자)의 권력자를 꿈꾸었다.

이 후보는 작은 성공으로 일부에서 평가받는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한반도대운하’라는 환경파괴적인 국가적, 민족적 대 재앙을 공약으로 내걸어 대권을 쥐려는 무모함을 보임. 마치 일제 때 일본인들이 한국의 산자수려한 유명 산 정상의 혈맥에 쇠말뚝 박듯 한반도 대운하는 국운[國運]을 쇠하게 할 가능성이 크며 결국은 이 운하 공약으로 운하[運下:운이 하락함]에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최고의 권력에 다가서기 위해 사이고나 이 후보 측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공허한 공약(空約)을 남발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 오로지 권력 쟁취에 눈이 멀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내달리는 모습이 불쌍하고 처량해 보인다.

사이고의 최후를 아는 사람이라면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물이 아무리 과욕과 탐욕을 부린다한들 그 결과가 어떠한지 그 결말의 무서움을 알아야할 것이다. 하여튼 비양심적이고 부도덕한 인물이 어떠한 결말을 보여줄지 자못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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