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벽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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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벽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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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대륙 거쳐 한국까지 온 선불교 법맥

큰길은 문이 없다네 (大道無門)
많은 갈래가 있으나 (千差有路)
이 빗장 풀어버리고 (透得此關)
하늘땅 홀로 걸으리 (乾坤獨步)

- 무문관(無門關) 서문(序文) 중에서 -

서두의 “대도무문”은 무아(無我)가 펼쳐놓은 파노라마이다. 무문관은 13세기말에 무문 혜개(無門慧開)가 48개의 화두(話頭)를 엮어 만든 책이다. 모든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出家)한 선승(禪僧)에게 하나 남은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무아의 해탈(解脫)이리라. 그러나 구도자의 이런 소망자체도 의식하면 빗장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마저 포기하는 상태가 절연이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무늬로 보면 닮았다. 문양을 표현하는 용어가 무아-자기 부정, 해탈-거듭남, 절연-회개, 이런 식으로 서로 대응한다. 그런 반면 양쪽의 차이도 확연하다. 불교의 표현이 마음으로의 내성(內省)이라면, 그리스도교의 용어는 하늘로의 외향(外向)이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한계 또는 구사력의 차이일까. 다르더라도 그 끝점이 서로 만날지 모른다.

선불교의 법통은 가톨릭교회의 교황제와 닮았다. 붓다의 수제자 대가섭과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각각 스승의 지목에 따라 초조(初祖)의 권위를 획득하여 종단을 거느렸던 것이 비슷하다. 그러나 2조부터의 취임은 서로 달랐다. 선불교의 조사(祖師)는 성불(成佛)의 권위로서 차기 상속을 지명하지만, 가톨릭교회의 차기 교황은 천주(天主)의 대리자(agent)로서 선출된다.

선불교 14조 용수는 이전의 소승신앙을 공(空) 철학으로 재편하고 대승불교를 세계종교로 발전시켰다. 비슷하게, 그리스도교의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써 구원된다(Justification)”는 신학을 내세워 유대인의 지역종교를 세계화하는데 성공했다. 바울이 말한 믿음은 성령의 감화에 따라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인데, 이는 관세음보살에 의한 공즉시색(空卽是色)과 흡사하다.

선불교 28조 달마가 숭산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面壁) 수행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오랫동안 수도원에서 정진한 것과 서로 비교 할만하다. 달마는 멀리 인도에서 불전 한권 없이 빈손으로 와서 적묵선정(寂黙禪定)이란 새로운 스타일 “깨달음”을 선보였다.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북아프리카 출신이었고, 그의 신학은 특히 “은혜”를 강조했다.

선불교 33조 혜능의 특별한 공헌은 불교에 평등과 자유를 가져온 것이다. 그가 주창한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는다(頓悟頓修)”는 경험은 어느 누구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배경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佛性)이 갖춰져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개신교의 종교개혁자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내세워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 즉 성속의 간격을 허물어트렸다.

중국선종은 38조 임제에서 간화선(看話禪) 전통을 세웠고, 45조 양기의 문하에서 공안선(公案禪)을 편집한 벽암록과 무문관을 남긴 후, 56조 석옥(石屋)까지 이어졌다. 한반도 선종은 8세기말부터 구산선문(九山禪門)이 들어서 여러 교종과 함께 흥성했다. 그러나 고려 때 국교처럼 지원받던 불교는 선교 모두 타락하여, 중기부터 스스로 무속(巫俗)화하며 쇠락을 재촉했다.

동국(東國) 선종의 초조는 고려 말 보우(普愚 1301-1382)가 차지했다. 그는 중국의 56조에서 정식으로 57조의 법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동안 선종의 법맥은 인도에서 1조부터 27조까지, 중국으로 건너와 28조부터 56조까지 이어지다가 마침내 한반도로 넘어온 것이다. 조선시대의 불교는 환란 중에도 63조 휴정(休靜 1520-1604)을 거쳐 75조 경허(鏡虛 1849-1912)로 이어졌다.

로마 교황청이 지상 한곳에 매여 있는 동안, 선종의 법통은 대륙에서 심인(心印) 따라 물결처럼 굽이치다 지금은 한반도에서 머물고 있다. 여기서 잠깐, 대륙과 대양으로 구분된 지구의를 한번 돌려보자. 한반도는 뭇 대륙이 한곳으로 몰려와서 대양의 중심인 태평양을 향하여 굽이치다 조성된 벽감(niche) 같다. 그 마감이 백두대간으로 석굴암에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백두산과 금강산 아래 금관을 쏟아놓은 신라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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