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9
스크롤 이동 상태바
[역사탐방] 196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치권 정부당국에 반환하고 국내의 질서 회복할 것

박 의장 미국 방문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 중앙 방송국은 갑자기 정규프로의 진행을 중단하고 군대의 행진곡에 맞추어 무력에 의한 군사혁명의 성공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혁명 위원회의 성명서가 발표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유엔군사령부 방송은 합법적 절차에 의하여 성립된 장면정권을 지지한다는 카터 매구루더 대장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국군 및 주한 외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는 유엔군 사령관 매구루더 대장은 그의 직권으로 예하 전장병에게 장면 국무총리가 영도하는 합법적 절차에 의하여 승인된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할 것을 요망하면서 매구루더 대장은 한국군 수뇌들이 그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여 통치권을 정부당국에 반환하고 국내의 질서를 회복할 것을 요망하였다.

당시의 그린 주한 미 대리대사도 매구루더 대장의 성명을 지지하면서 “본인은 작년 7월 29일 총선에 의하여 한국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에서 인준된 국무총리의 조각으로 성립된 합헌적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명백히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라고 그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같은 유엔군사령관과 그린 대리대사의 성명은 미국의 대한 기본 정책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록 혁명군이 수도 서울을 완전히 장악한 후의 사태라고는 하지만 아직 야전군의 향배가 결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혁명군의 실제 병력은 1천 6백여명에 불과하였으므로 이 성명은 혁명 성공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날 오후 5시까지 계속된 이 방송을 서울 시민들은 귀담아 들었고 , 이로 인하여 미국이 군사혁명을 지지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혁명으로 인한 한국의 내정에 관여하지 않았고 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기정화된 군사 혁명을 소극적이나마 간접적으로 승인하게 되었다.

여기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외교정책의 기본 원칙을 상기할 수 있는 것으로 미국은 대한정책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의 선전 공세를 막기 위하여, 그리고 미국과 자유주의 제국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며 미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하여 온 대한 원조에 대하여 최소한의 보상으로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확립과 정치적 안정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여 왔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 두 가지 원리를 충족시키는 일만이 한 국민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미국으로서도 긴요한 것이었으며, 아 두 원리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한국 정부만이 한 국민의 복지와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대한 정책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희망과 요구에 대하여 이승만 정권은 그 말기에 집권 연장의 야욕에서 이 두 가지 원리를 모두 어겼으며, 민주당 정권은 전자는 충족시켰으나 후자를 어겼고, 혁명 정부는 전자를 어기고 있는 것이므로 미국의 실망과 고민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내의 군사 혁명에 성공한 강력한 혁명 정부 집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된 미국은 그들의 대한 정책의 성공을 군사혁명의 집권자들에게 기대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으며, 혁명 정부에 대하여 민정 이양에 의한 합헌적 정부 수립과 함께 정치적 안정의 확실한 보장을 직접 간접적으로 강력히 요구하게 되었다.

한편 군사 혁명 당국은 그들이 내세운 혁명 공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경제 개발에 의한 국민 생활 향상의 실천을 위하여서는 오랜 전통적 우호 속에 원조를 하여준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와 원조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8월 12일 군정 2년 이내에 민정으로 이양할 것을 확약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군사 혁명 정권의 강력한 집권으로 인하여 모든 정치 활동이 중지된 가운데 점차 표면적인 안정이 조성되고 박의장의 민정이양 약속성명이 있은 후 혁명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미온적인 자세는 점차 수정되기 시작하였다.

방미 초청

미국은 16여년 동안이나 투자하여 온 한국에 대한 정책을 새로운 한국 지도자들과 검토하기 위한 조치로서 5월 12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방미 초청을 정식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한국에서의 군사 혁명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미국 정부를 설득시키고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원조를 획득하기 위하여 박의장의 방미 기회를 모색하고 있던 혁명 정부는 11월 15일과 16일 양일간의 케네디 미대통령과의 회담을 즉시 수락하고 그 준비를 서둘렀다.

한편 방미 준비를 서둘고있는 혁명 정부에 한일 회담의 일본측 수석대표 삼도조는 박의장의 방미길에 일본을 방문하여 줄 것을 초청하는 지전수상의 친서를 전달하였으며 , 이때 일본 동경에서는 러스크 미국무장관이 일본 고위 관리들과 일련의 경제회담을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군사 혁명 이후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일 회담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의 일본 정계 요인들과의 적극적인 접촉에 이어 지전 수상의 박의장 방일 초청은 한.일간의 현안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기도하는 것으로 한일 회담에 전격적인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혁명 정부의 저의를 궁금히 여기고 있는 세인간에 여러 가지 억측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음은- 한일회담에 따른 재산 청구권 및 평화선과 미국 방문의 성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