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젊은 영국 창출 기치들고 출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지지 등에 몰락 ⓒ AP^^^ | ||
10년간의 권좌에 앉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푸들’소리를 듣던 그가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쓸쓸하기 그지없이 물러나게 됐다.
블레어 총리는 10일 각료들에게 퇴임 사실을 먼저 밝힌 다음 지역구인 세지필드(Sedgefield) 유권자들에게 퇴임청사진을 공표할 것이라고 총리실이 밝혔다고 ‘로이터통신’등 외신이 일제히 전했다.
블레어는 노동당이 7주간의 선거과정을 통해 차기 당수이자 총리를 새로 뽑을 때까지 총리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총리실은 밝혔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현재로서는 재무장관인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이 총리자리를 이어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문제에 관해 부시 미 대통령과는 아주 가까운 동맹관계를 유지해오다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영국 언론들은 토니 블레어에게 가혹하리만큼 비판을 가해왔다. 1997년 최연소의 나이로 총리자리에 올라 출발은 화려했으나 이제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상태로 현직에서 쓸쓸하게 물러나게 됐다.
그는 1953년 영국 에딘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변호사가 된 후 1983년 노동당 세지필드 지역 총책이 됐다. 1997년 총선에서 1812년 리버풀 국왕 이 후 최연소인 43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등극했다. 그는 브리트 팝(Brit-pop : 1990년대에 영국에서 유행한 댄스 반주 음악)과 브리트 아트(Brit-art) 및 새천년 돔(Millenium Dome) 등 영국의 젊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의 일부 정책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그는 18년 장기 집권의 보수당 정권에 염증을 느낀 영국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총리에 당선됐다.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신선한 엘리트인 40대의 젊은 총리는 낡아빠진 영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의 ‘제3의 길’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주창했으며, 이로써 그의 이미지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 때 80%대를 웃도는 지지율을 즐기기도 했다. 그는 줄곧 영국의 두통거리였던 북아일랜드 분쟁을 해결하는 역사적인 ‘굿 프라이 데이(성 금요일)협정’을 맺어 테러와 피로 물들었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거리에 그 지긋지긋한 총성이 멈추게 됐다.
그는 2001년도에 재선에 성공한다. 그의 2기 임기는 더욱 골치 아픈 시기였다. 2002~2003년 기간 동안 그는 폭넓은 영국국민들과 노동당의 이라크 전쟁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지지하면서부터 개인적인 권위에 위기가 몰려들었다.
그는 “이라크 정부가 45분 만에 대량살상무기(WMD)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거짓 보고서를 공표했다. 그는 부시와 함께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에 최대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하며 미국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난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워싱턴을 방문해 부시에게 무시당할 정도의 대접을 받기까지 했다고 영국 언론들은 비아냥거렸다.
그 뿐이 아니다. 2005년 52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발생시킨 런던지하철 폭탄테러 사건을 비롯 각종 부패 스캔들로 그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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