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등교길에 남은 기억
스크롤 이동 상태바
딸아이의 등교길에 남은 기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침에 등교하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차 있는 곳 까지 우산을 함께 쓰고 걸었다. 어제 우산을 두고 그냥 차에서 내린 탓이다.

딸 아이는 부쩍 커 버렸다. 나의 사랑스런 딸은 어떤 등교길 기억을 간직하게 될까. 그리고 걱정했다. 코드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교육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밑천이지만 딸아이에게는 시시콜콜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다.

등교길은 어머니의 길

신작로가 뚫리기전 나와 친구들은 5㎞이상 떨어진 초등학교까지 걸어다녔다. 손수레도 다니기 힘든 좁은 소나무가 덮힌 산길이었지만 여름이면 깡통에 송충이를 가득채울수 있었고 어머니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과 그리고 부끄러운 기억이 함께 남아있다.

등교길은 어머니의 길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월남전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24살에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린동생과 나를 키워 오신분이다. 처음 학교에 보낼때 어머니는 이길을 통해 자식에 대한 꿈을 가꾸고 계셨다.

“학교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시며 옷 매무새를 고쳐주셨고 할머니는 손주가 영 못 미더우신지 매일같이 “길은 가운데로만 다니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몸이 아플때는 업어서 등교를 시켜주었던 이 길은 가끔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주라”며 마늘짱아찌 들려보내시기도 했다(어머니 몰래 부끄러워 산길에 버린 적도 있다).

어머니는 “책보가 싫다”는 아들에게 책가방을 사주셨고. 검정고무신을 찢어오는 아들의 속마음을 읽으시고 구두 한켤레를 사주신 사랑의 길이기도 했다. (어느날 싸움에 진 친구는 그 구두만 아이모 내가 안진다 하며 눈물을 훔치던 기억도 남아있다. 지금도 괜히 구두때문에 어린날 상처받았을 그 친구의 마음이 안쓰럽기만 하다)

비오는 날의 등교길

비오는 날은 비료푸대가 제일이다. 우산도 집안에서는 아끼는 보물이었다. 그 귀한 우산이 아이들의 몫이 될리는 만무했으니 비료푸대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비옷이 된 것이다. 등교길에 비가 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동나무 잎으로 우산을 대신하거나 물에 빠진 생쥐처럼 집으로 가기가 일쑤였다.

비 내리는 날 고랑진 산 언덕은 폭포가 되고 황토길은 제법 근사한 물길을 만들어 준다.좋은 놀이감이다. 댐을 만든답시고 돌맹이를 쌓고 그 틈을 황토로 매운다. 진흙탕 투성이의 물구덩이에 고무신을 뛰어놓고 성웅 이순신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재미있어한 것은 길 한가운데 진흙구덩이를 파고 소나무 가지로 위장한 후 그위를 흙으로 표시나지 않게 덮어두고 길가에 숨어 지켜보던 일이다. 간혹 어른들이 걸려들어 낭패를 당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부끄러운 기억

사실은 부끄럽다기 보다는 무심코 한 행동이 큰 사건을 부른 날이었다. 여름 어느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앞서가던 우리들은 여자친구들을 골려주기로 의기투합했었다. 방법을 찾다가 “옷 나무와 비슷한 닥나무 가지를 꺾어 얼굴에 칠한 뒤 겁을주며 놀려먹자”는 것 이었다.

나는 도망가는 아랫동네 여자친구의 눈과 얼굴에 닥나무 진액을 정말, 정녕코 살짝 발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이 있었던 터라 고개만 내밀어도 동네사람이 지나가는 것은 다 볼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친구의 오빠가 지게작대기를 손에 들고 씩씩거리며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나와는 7살정도 차이가 났다. 정말 살 힘을 다해 도망쳤다. 공동묘지가 있는 동네 앞산에서 그 날 밤 12시가 넘도록 집으로 내려오지 못했었다. 물론 어머니가 사정해서 별일은 없었다.

다음날 알게됐지만 내가 꺾었던 가지는 닥나무가 아니라 정말 옷나무였고 그 친구의 얼굴은 퉁퉁부은 복어얼굴이 돼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야 정말 미안하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