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임옥상, '미술관 벽 허물기' 조직 가동하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화가 임옥상, '미술관 벽 허물기' 조직 가동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물포커스(1) 생활미술가 임옥상

 
   
  ▲ 임옥상의 손
ⓒ 김유원 기자
 
 

세상을 밝히는 손

고은 선생이 마침 나의 작업실에 오셨다. 오신 김에 손을 떠놓고 싶었다. 시인의 손은 그 자체가 기념물이니까. 그러나 그보다 나는 손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손에 관심을 갖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제일 먼저 우리는 손을 잡는다. 이 교류를 통하여 우리는 사랑을 믿기 시작한다. 손길이 닿지 않고서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머리가 손을 지배한다고들 생각하는데, 나는 손을 통해서 머리가 움직여야 세상이 밝아진다고 믿는다. / 임옥상의 근저 <벽 없는 미술관>에서 

 
   
  ▲ 화가 임옥상의 최근작들
ⓒ 김유원 기자
 
 

'사람과 삶을 위한 살아 있는 미술'을 위해 혈혈단신 바쁜 손놀림을 보이던 화가 임옥상(53)이 마침내 조직을 갖추고 보스(?)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공공문화(public culture)'를 기치로 내걸고 지난 20일 출범한 사단법인 문화우리의 회장직을 맡은 것.

기자는 지난 주말(21일), 그가 문화 특강을 위해 '부림 문화의 집'(경기 과천시)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디지털카메라와 취재수첩을 재빨리 챙겨들었다. 그리고 임옥상 특유의 감칠맛 나는 강의를 엿들으면서 어둠 속에서 찰칵찰칵 넘어가는 그의 작품 슬라이드는 카메라로 몇 컷 잡아봤다.

기자가 촬영한 이들 작품은 어느 철물 도매상이 제공한 숟가락, 매향리에서 주워온 폭탄파편, 기관총 표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동차, 어느 아저씨가 10년간 모은 미군용 포크와 나이프 등을 재활용해 엮거나 녹여낸, 임옥상의 작가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최근작의 일부다. 깨끗하고 시원스런 화면을 제공하지 못해 안타깝다.  

 
   
  ▲ 화가 임옥상
ⓒ 김유원 기자
 
 

다음은 강의가 끝나고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주고받은 일문일답.

- 먼저 사단법인 문화우리를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흐흐 한마디로? 도대체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게 어디 있나. 문화우리는 '만들어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 안에 잠들어 쉬고 있는 창조력을 불러내는 과정 그 자체다."

-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지금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에 지배받고 있다. 나는 감히 말한다. 문화가 중심에 서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물론 문화만 중심에 서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중심(多中心)의 나라를 꿈꾸니까."

- 문화가 중심인 나라?

"개개인이 갖고 있는,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창의력을 중시하는 사회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인간이 문화적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요구해야 하는 권리요, 의무다. 말하자면 문화권(文化權)을 주장하자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 입회 자격을 소개한다면.

"문턱이 없다. 그야말로 활짝 열려 있다. 굳이 자격이라면 '창의력이 있는 분'쯤 되겠다. 흐흐. 함께 가꾸고 어울려 일할 뜻이 있으면 모두 다 문화우리 식구다.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한번 화학반응을 일으켜 보자."

- 문화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우선 생활문화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삶 속에 뿌리내리는 문화라야 진정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높디높은 미술관의 벽에 부딪혀 넘어지는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거리를 어떻게 만들고 마을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면 쾌적한 삶이 보장될수 있을까?' 등등. 이런 게 문화우리의 화두다. 말하자면 도시를 디자인하는 신나는 공동체, 대동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문화마을'을 구상 중이다. 주민 5000명 이상의 자족적 소문화도시 말이다.

- 문화의 기능을 실용성에 국한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문화는 소수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지 않나. 언제까지 썰렁한 전시회장에 우리 문화를 가둬야 한단 말인가. 삶 속에 녹아드는 문화여야 한다. 문화에는 모성성(母性性)이 깃들어 있다. 온유하게 모두를 껴안고 함께 가는 아주 오래된 미래가 있다. 지금은 나를 위한 문화가 아닌, 남과 함께 하는 공공문화(公共文化)에 관심을 쏟을 때다."

 
   
  ▲ 화가 임옥상
ⓒ 김유원 기자
 
 

[강의 지상중계]소리에 주목한다

날숨과 들숨 사이의 존재가 인간이라던가. 덧없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한 것은 없다.

21세기의 예술을 생각해 본다. 20세기의 예술이 '보여주기'와 '드러내기'의 예술이었다면 새 세기의 예술은 '껴안아 주기'와 '듣기'의 예술이어야 할 것이다. 다시, 20세기가 눈과 입의 세기였다면 이제 21세기는 귀와 코, 그리고 손의 세기여야 할 것이다.

개성이다, 자유다 하면서 각각의 목소리로 목청껏 외치느라 지난 세기는 모두 목이 쉬어버리고 말았다. 다투어 악을 쓰느라 제 정신들이 아니었다. 시장논리가 이를 부추겨 모두들 죽지 않으려고 생존경쟁 속에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세월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현란한 옷을 걸치고 조금 더 눈에 띄게 조금 더 큰소리로 자신을 포장하여 보여주기 바빴다. 그러나 이젠 남의 말에 귀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소리에 주목한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서로 한 발씩 상대에 다가가야 한다. 사람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소리 중에서 가장 가까이 다가가야 들을 수 있는 언어는 호흡이다. 최단거리까지 근접하지 않으면 상대의 숨소리는 감지되지 않는다.

남으로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숨소리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호흡을 나눌 수 없다. 사랑은 결국 호흡인 것이다. 입맞춤도 성애도 호흡이다. 호흡엔 거짓이 없다. 가장 진솔한 언어가 호흡인 것이다.

호흡은 '불피우기'다. 산소를 들이켜 태우고 연기(탄산가스)를 내뿜는 풀무질이다. 끝없는 불지피기가 호흡이다. 결국 생명작용은 불을 꺼뜨리지 않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생명이 있는 곳에 호흡이 있다.

풀도 나무도 숨을 쉰다. 대지도 숨을 쉰다. 대지의 숨소리를 듣고 느껴보자. 대지의 신음, 체념, 탄식, 분노, 꿈, 사랑을 내 호흡과 맞춰보자. 대지의 호흡을 감지하는 것은 대지의 모든 것을 인지하는 것이요, 대지와 교통하는 것이다.

미술(시각예술)이야말로 눈감음이 필요한 예술이다. 눈감음의 미학을 모르면 미술은 걷잡을 수 없게 날뛰게 될 것이다. 소위 영상시대에 범람하는 영상의 홍수를 보라. 이미지의 폭우를 보라. 눈감음은 소리를 듣는 일이지만 또한 자신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일, 자신과 대화하는 일, 더 나아가 눈감는다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일이다. 살아있음이 눈뜸이라면 눈감음은 죽음이 아니고 뭔가. 그럼 눈감음은 적막인가? 아니다! 눈감음은 깊은 침잠이요, 사색이며, 명상이다.

죽음도 결국 이 눈감음으로 익숙해지고 편안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과 작별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다. 살아있음만이 강조되는 세상, 죽음이 부인되는 사회. 이런 사회는 균형을 잃은 사회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흙은 새 생명을 키울 수 있다. 흙이 저렇게 수평으로 누워있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땅이 수직으로 일어서면 만물은 생명의 터전을 잃는다. 모든 것은 지평에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

땅의 일어섬은 순리에 대한 반역이요, 섭리에 대한 거역이다. 땅의 일어섬은 혁명이다. 땅을 누워있게 하라. / 정리=김유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