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와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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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와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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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에 있을지 모르는 문화재를 찾는 일이 더 급하지만,

^^^▲ 청계천의 현재 모습. 삼일아파트 부근
ⓒ 서울시청^^^


우리에게 우여곡절이 많은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영구지배 할 생각으로 1918년에 청계천을 하수도 기능화 하려고 준설작업에 착수했다가 패망하면서 중단되었다. 그 후 해방과 전쟁이 끝난 후인 1958년에 시작해서 79년에 복개되었지만 결국은 서울의 하수구로 변했다.

그 당시가 기억이 난다. 청계천을 한참 복개할 때인 1962년에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는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미국 콜롬비아사가 1957년에 제작한 영화다. 제2차 대전을 배경으로 타이의 정글에 있는 일본인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으면서 이 다리를 폭파하는 것으로 감동을 준다.

딱딱한 전쟁 영화지만 유머러스한 장면과 철저한 군인정신을 보여 주어서 감명을 주었다. 콰이강은 타이의 서부에 있는 강으로 미얀마와 연결된다. 이 영화의 모델이 되었던 다리는 칸차나부리에 있는 철교로서 강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물이 맑아서 우리의 청계천과 비교되어서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의 주제곡도 그 당시 청계천 주변에 있는 다방에서 들을 수 있었던 곡으로 콰이강 마치(The river Kwai March)라는 곡이다. 지식인들은 이 곡을 감상하면서 애통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복개하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그냥 좋아했다.

청계천은 놀이문화의 중심지였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각종놀이 문화는 답교놀이, 편싸움, 연등행사 등이 열리는 문화공간이었다.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음식과 풍악으로 즐기며 삶을 달래기도 하였던 곳이다. 사월초파일에는 연등 놀이를 해서 장관을 이루기도 했었다.

^^^▲ 서울시청
ⓒ 광통교 답교놀이^^^

^^^▲ 20세기 초 청계천 및 수표교
ⓒ 서울시청 홈페이지^^^


정월 대보름날에는 서민과 상류층, 노약자. 질병인 들까지 삼삼오오 모여서 둥근 달을 보고 다리 밟기를 했다. 음력 정월 보름날에 다리를 밟으면 일년 내내 액운을 때운다고 하여서 그렇게 했다.

수도가 없던 예전에 장마가 지면 불이 불어나서 오물이 씻겨 나갔다. 그래서 물이 맑아지면 아낙네의 빨래터와 어린이의 목욕장소가 되었다. 남자들은 아낙들을 돕기 위해 지게에 빨랫감을 지고 오고, 한쪽에서는 아이들에게 목욕을 시켰다.

그러한 다리 밑에는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거지움집을 만들어 살아서 대조를 이루었다. 추운 겨울에 임금이 선전관을 보내서 쌀과 포목을 나누어주며 이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조선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광복이후에도 한동안 모여서 살았다.

또한 노천 극장이 만들어져 각종 공연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당시 서커스단이나 만담가들과 약장수의 나팔소리가 들리고, 시끌벅적하게 모여들어서 정말로 서민들의 생동감 있는 참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는 장소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농촌을 떠나서,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이 도시 빈민층을 형성하여서, 청계천제방에 무허가건물을 짖고 생활하였다. 따라서 하천이 많이 오염되었으며, 각종 전염병발생의 근원이 되었고, 홍수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청계천의 치수 사업은 조선 때 태종이 처음으로 했다

청계천은 서울 한 복판인 종로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으로 북한산, 인왕산, 남산 등으로 둘러 쌓인 개천으로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이곳에 모여서, 동쪽으로 흘러서 왕십리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중량천과 합쳐서 한강으로 흐른다.

^^^^^^▲ 20세기 초 청계천 및 수표교
ⓒ 서울시청 홈페이지^^^^^^


서울의 내사산인 북한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산마루를 연결하는 도성안에 있는 사대문인 남대문, 흥인문, 돈의문, 숙정문 안, 한가운데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서 흐르기 때문에 명당수의 개천이라고 했다.

이 개천에는 수표교, 광교, 영미교, 관수교 등 남북으로 왕래하는 24개의 작은 다리들이 있었다.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어서 태종이 처음으로 개가공사를 하였다. 그 후 영조 때 개천 양옆을 돌로 쌓아서 직선에 가까운 수로가 되었다.

그 후인 79년에 청계천이 마장동까지 복개가 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주변이 상가로 변하여서, 기계공구상, 전기용품, 의류, 신발, 헌책방, 벼룩시장, 전자대리점, 소규모 공장, 사무실이 들어서서 도심의 상업지역이 되었고, 지층은 더러운 물이 흐르게 되었다.

교통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기여를 했다. 서울시 통계연보를 보면 2천년 말에 청계천도로에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6만4,753대, 고가도로에는 12만1,272대가 통행을 했다. 하지만 5년 전의 7만4,616대와 15만0,778대와 비교하면 점차 감소추세다. 그 이유는 지하철 개통과 주차문제로 보인다.

청계천이 빨리 옛 모습으로 돌아 왔으면?

다음달 1일부터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된다. 시멘트 구조물을 헐고 환경 친화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지층에 있을지도 모르는 문화재를 찾는 일이 더 급하다고 해서 그 일을 오는 27일에 결정한다고 한다.

^^^▲ 청계천 삼일아파트 부근 복원 후의 모습
ⓒ 서울시청 홈페이지^^^


이 일이 결정되면 복원공사가 몇 달 지연되겠지만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청계천은 구한말 서민들의 생활터전으로서 목욕과 빨래, 종교의식, 수난사고, 도적질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없이 빠트리거나 잃어버린 역사적 자료와 유물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찾는 방법으로는 바닥의 흙을 파서 물로 걸은 다음에 유물과 자갈을 골라내는 방식으로 복개작업과 같이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 소요기간을 몇 달로 잡고 있어서, 생각보다는 그렇게 길어 보이지는 않는다.

어떻든 그러한 것, 모두를 떠나서 다시 복원을 하기 위한 공사가 이제 시작된다.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문화재위원회의 의견도 존중되고, 공사가 빨리 마무리되어서, 원래의 모습과 같은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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