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어떤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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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어떤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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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이에게 어떤 만남이 될까

만남이 사람의 삶을 만든다.

모르던 사람과 만나면서,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나도 영향을 받아간다. 그것이 삶이다. 세상에 누가 혼자 산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모두 혼자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사람의 삶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다.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은 자꾸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글만 쓰려고 하면 현재와 미래의 모습보다 자꾸 과거의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나는 아마도 과거의 삶에 많은 미련과 애증이 있었던가 보다. 그래 내가 살아오면서 짧고, 긴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마다 자꾸만 떠오르는 한사람이 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저 밤늦은 시간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잠간 몇 분, 아니면 몇 십 초간 만나고, 헤어져서는 다시는 인연이 맺어지지 않은 스쳐간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어쩌면 그 사람은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아직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그가 나에게 주었던 인상은 강렬했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 감수성이 예민한 그 시기에 나는 어렴풋이 살아간다는 게 무언가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다. 가방에는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친구가 빌려준 니체를 넣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시험기간. 다소 평소보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신흥 주택지였다. 버스정류장 부근에 있는 기존의 주택단지를 벗어나 나무가 우거진 길을 조금 지나면 우리 집이 있는 주택단지가 나왔다. 내가 기존의 주택단지와 우리 집을 연결하는 한적한 길을 지나갈 무렵, 그 길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한 남자가 휘청거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와 그의 만남은 그 두 길이 마주치는 교차로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길을 걷다 멈추어 서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곤 뭐라고 나를 불러 세웠다. 내 기억 속에 다소 무섭긴 했지만 싫지만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가 위압적인 태도로 나를 불러 세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는 어두운 길에서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 긴 시간이었을 리는 없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짧고도 긴 시간동안 나 역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외진 길에서 만난 낮선 술 취한 남자가 왼지 그렇게 무서워 보이진 않았다.

“학교에서 오니?” 그는 그렇게 말했다. “에” 나의 짧은 대답에 그는 다시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래!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손을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넣어서 한참을 찾더니 지폐 몇 장을 꺼내어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그리고 또 무어라고 한 두 마디 말을 한 것 같은데, 그 말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곤 그는 다시 휘청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어린 내 마음에도 그의 뒷모습이 참 쓸쓸하게 보였다. 그에게서 받은 돈이 얼마인지, 그 돈을 무엇에 사용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나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대학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몇몇 가까운 친구에게 몇 번 하게 되기까지는, 오래 동안 가슴에만 묻어두고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닌 법이다. 짧은 시간 나를 스치고 지나간 그 사람의 뒷모습이, 그렇게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남에게 쉽게 내 뱉을 수 없을 만큼 큰 무게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내 삶 속에 들어와서 큰 자취를 남겨놓았다.

나는 어떤가? 혹 누구에게, 누군가의 가슴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자취를 남기지는 않을까? 혹은 어린시절의 그날처럼, 오늘 또 다시 나에게 또 다른 어떤 의미로운 만남이 희미한 불빛 속에서 휘청거리며 다가오지는 않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이 밤 세상은 조용하다. 사방은 어둠뿐이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를 늦추지 않는다. 그날 그가 그렇게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듯이, 어떤 책의 페이지에서 또는 인터넷에서 혹 어떤 이의 가슴 벅찬 글을 이 밤에 내 가슴에 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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