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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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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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부터 배우는 글쓰기 방법

“이런 글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거다. 기쁨에 관해 적으려면 ‘나는 기쁘다’고 하지 말고, 왜 기쁜지를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읽는 사람이 공감을 할 수가 있다.”

선배의 지적을 날카로웠다.

“글을 쓰는 관점이 뚜렷한 것을 알겠다.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만 써 놓는다면 그것은 글이 아니라 일기가 되고 마는 거다. ‘글’을 쓰려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나는 선배의 지적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내 글을 다른 이에게 읽히고 싶다면, 읽을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지적이 당시의 내 마음에 와 닫지는 않았다. 남에게 읽히도록 글을 쓰는 방법을 고치는 것보다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그대로 쓰고 싶었다. 나에게 절실하지 않은 글이라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고 하여도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며칠이고 선배의 지적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나는 보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선배나 다른 사람에게서 문학수업을 받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내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일기를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글을 팔아서 밥을 벌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가 살아온 과정, 내가 느끼고 감동한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글이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팔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고쳐가면서까지 글쓰기 연습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훌륭한 작품을 읽으면 나 역시 감동하지 않는가. 나도 꽤난 깐깐하게 글을 읽는 편인데, 나를 감동시킬 만한 글을 쓰기 위해서, 그 작가는 얼마나 고된 문학수업을 치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만 고집을 하려면 차라리 일기를 쓰는 것이 났다”

이것이 ‘인터넷상의 한 ’문학 동호회‘에서 뜻이 맞는 선배를 선생님 삼아서 메일로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이 나의 문학수업의 전부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문학수업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학 때, 카톨릭 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작가와의 대화’ 강좌에 등록해서 몇 번 작가들의 강의를 직접 들은 적이 있었고,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대학 1학년 때 문과계열에 다니는 친구의 책을 빌려서 ‘문학개론’을 한번 읽은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당시엔 그 모든 것이 뜬 구름 잡는 소리같이 들렸고, 도대체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 것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저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 좋았고, 삶의 순간순간이 다가왔다 사라져가는 모습에 잘 감동 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감동의 느낌을 글이나 메모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더 잘 남기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이 내가 글을 써보고 싶었던 이유였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후, 직장생활 초년에 약 십년 정도를 정신없이 보낸 후, 그제야 조금의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겼다. 당시 인터넷이 막 보습되기 시작할 초기에 나는 우연히 가입한 문학 동호회에서 잠간동안 수업 아닌 수업을 받았던 것이다.

‘일기를 쓸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의 고민에서 나는 일기 쓰기를 택했다. 애당초 나를 사로잡고 있던 글쓰기에의 열정은, 나를 감동시킬 만큼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겪어왔던 과정을 이겨낼 만큼 강렬하진 않은 듯 했던 것이다.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나는 것들, 자꾸만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에 묻어서 그냥 망각으로 떠나보내기에 앞서 조금 더 남겨서 음미해 보고 싶은 것들을 일기처럼 적어놓기로 했다.

그러나 일기쓰기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잠깐 찾아온 여유기간동안, 글쓰기니 문학 동호회니 하고 멋을 부려 보았지만 IMF가 터지고 온 나라가 정신없이 분주한 동안 나도 다시 한동안 바빠졌다. 그 바쁜 기간동안 나는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고, 이젠 젊은 시절의 그 예민한 감수성은 무디어졌지만,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하니 이젠 좀 감정이 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선배가 지적해준 그 양자사이의 갈등은 아직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어떤 글은 내가 읽기에는 참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런 글은 읽는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글을 쓰다보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글도 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런 글들이 반응이 좋은 경우가 많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만 쓰려면...” 이라는 선배의 지적이 다시 귓가를 맴돈다. 그래도, 이젠 예전보단 조금은 글쓰기가 수월해졌다. 나 스스로가 예전에 비해 글을 쓰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내 감정을 나 스스로가 조금씩 객관화하는 능력이 생겨가게 된 것은 아마도 나이 때문일 것이다. 당시 선배의 지적을 받으며, 읽기 쉬운 글을 쓰려고 무진 노력을 할 때도 되지 않던 것이 이젠 조금은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래. 글은 자신의 인생을 반영하는 것이다. 차츰 나이가 들어가는 내 삶이, 그토록 어려운 글만 쓰고 싶었던 내 마음을 스스로 다스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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