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과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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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과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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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걸고넘어지는 것은 대략 3가지다. 

황장엽과 9살짜리 특수군과 600명이다. 그 동안 나를 믿어주던 사람들도 이 3가지 중 하나에 걸리면 꼬리를 내린다. 우익들 중 꼬리를 내리는 사람들은 내가 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600명이라는 숫자는 1995년 7월 18일 민-군 검찰이 공동으로 수사하여 발표한 ‘5.18관련사건수사결과’ 제92~93쪽 9개 줄에 표시돼 있다”

600명이라는 숫자는 검찰보고서와 군상황일지에 나타나 있는 숫자다. 5월 21일 09시에 아시아자동차공장을 습격하여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탈취한 병력이 600명인 것으로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

이 600명은 광수의 숫자가 아니다. 이렇게 혼돈 하는 사람들은 5.18연구가 1) 문헌연구와 2) 영상연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문헌연구는 지만원이 주도했고, 영상연구는 노숙자담요가 주도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다.

600명이라는 숫자는 검찰수사결과에 나타나 있는 숫자이지, 영상분석의 결과가 아니다. 영상분석은 이 600명 이외에 남녀노소 아녀자들로 구성된 또 다른 900명 정도의 대규모 게릴라집단이 왔음을 발굴해 냈다.

여기에서 외워야 할 문장이 있다. “600명이라는 숫자는 1995년 7월 18일 민-군 검찰이 공동으로 수사하여 발표한 ‘5.18관련사건수사결과’ 제92~93쪽 9개 줄에 표시돼 있다”

9살짜리 특수군? 게릴라라는 남녀노소 아녀자들이 부대구성의 필수요소

6.25때, 특히 미군이 많이 당한 것이 아녀자들과 노인 아이들로부터 속은 것이다. 공산군대는 늘 어린아이들과 아녀자들을 이용하여 테러를 가하고 그들을 앞장세운 상태에서 뒤에서 포복해 전진했다. 노근리 학살(?)도 민간인들에 늘 당했던 어린 미군병사들의 반작용이었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은 어린아이와 노인들로부터 참으로 많이 당했다. 여아가 애교를 부리며 다가와 안아주었더니 수류탄을 윗주머니에 넣고 달아났다. 누구의 눈에나 범상해 보이는 군병들이 의심받지 않고 광주거리를 활보하려면 위장수단으로 이들과 함께 다녀야 한다.

황장엽이 더 학자인가 지만원이 더 학자인가?

황장엽은 귀순자가 아니라 끝까지 망명자 신분을 고수했다. 황장엽이 연로한 학자였는데 어떻게 광주에 와서 그 무거운 M16 유탄발사기를 들고 정보부 프락치로 의심되는 광주장년들을 체포해 살해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황장엽은 1923년생이다. 5.18 때 57세였다. 그와 함께 광주에 온 리을설은 1921년생, 황장엽보다 2살 더 많다. 그와 함께 온 김중린도 1923년생 황장엽과 동갑이다. 김중린은 황장엽보다 더 지체가 높았다. 당시 현역 통전부장 즉 북한의 현역 CIA부장이었다. 그들보다 더 실세였던 장성택과 김경희가 내려왔고, 김일성 4촌 여동생인 김정숙까지도 넘어왔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확실한 조직이다.

정략적으로 부풀려진 황장엽 이미지

황장엽은 첫째, 주체사상 철학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둘째 김영삼 패들의 공로를 크게 만들려는 정치공작 목적으로 필요이상 부풀려졌다. 나는 그가 쓴 책도 읽어보았고, 그의 요청으로 여러 번 독대하여 만나보았다. 그러나 그는 내 눈에 크게 보이지 않았다.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요설들로 이루이졌다. 북한에서 통하는 주체사상의 공식명칭은 “사람중심철학”이다. 그런데 황장엽은 남한에서 “인간중심철학”으로 살짝 포장만 바꾸어 부나비 같은 인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강의를 했다. “사람중심”을 “인간중심”으로 살짝 바꿔놓고 남한에서도 “집단민주주의”를 강론했던 것이다. 

“집단민주주의”는 곧 '전체주의'라는 말이다. 개인의 권익은 집단의 권익을 위해 희생돼야 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뿌리 없는 부초처럼 떠다닐까?

마지막으로 지만원과 황장엽 중 누구의 학문이 더 높고 누구의 것이 더 확실하고 어려운 것인가? 황장엽, 강만길, 리영희 등 인문학을 했다는 사람들, 내가 펴는 논리 앞에는 늘 승복했다. 

나는 베트남전에서 44개월 게릴라와 정글전을 했다. 나는 군인신분으로 경영학 석사와 응용수학 박사학위를 땄고, 군인신분으로 수학공식들과 수학정리들을 발명했다. 57세에는 관악산을 넘어 다녔고 철봉에서 배치기를 했었다. 남한에서도 57세의 나이로 대학총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펄펄 나는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 매우 많을 것이다.

황장엽 기록은 김대중이 없앴고, 박승원 기록은 이병호가 숨겼다?

바로 어제(2월 27일) 우리 열성회원님이 1997년 황장엽을 조사한 국정원간부에 접근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가지를 알아냈다.

1) 1997년 황장엽이 자기 입으로 김덕홍, 리을설, 김중린과 함께 광주에 왔었다고 스스로 불었다. 이 기록은 김대중이 인멸했다.

2) 제37광수 박승원(북한 상장 3성)이 2015.6월에 넘어왔는데 그 역시 광주에 왔었다고 했다. 일부 국정원간부들이 ‘도원결의’를 하여 세상을 뒤집겠다며 이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려 했는데, 이병호가 빨갱이들이 무섭다며 꼬리를 내렸다.

진실은 이렇게 드러나고 있다. 지만원이 이런 연구를 끈질기게 하지 않으면 그 누가 이런 정보를 캐내려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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