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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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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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손 한번 쥐게 해 주세요"

1964년 12월10일 朴正熙 대통령 내외는 서독의 수도 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함보른 광산으로 출발했다. 朴대통령과 뤼브케 서독 대통령이 한 차에 타고, 陸英修(육영수) 여사는 뤼브케 대통령 부인과 바로 뒤차에 탔다.

양국 頂上을 태운 차량행렬과 경호차량은 거의 반 마일 이상 이어졌다. 오전 10시40분, 朴대통령과뤼브케 대통령이 탄 차가 탄광회사 본관 앞에 도착했다. 朴대통령 내외가 방문한다는 소식에 광부들은 양복 정장, 간호사들은 색동 저고리를 입고 입구 좌우에 줄을 서서 朴正熙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산 樂隊(악대)가 주악을 울리는 가운데 朴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광부, 간호사들과 손을 잡았다.

『근무 중 이상 무!』 『각하, 안녕하십니까!』 광부들 대부분이 軍에 다녀왔기 때문일까? 광부들은 軍紀(군기)가 잔뜩 든 군인들처럼 거수경례를 하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朴대통령도 거수경례로 그들의 인사에 답하고, 악수를 나눴다.

朴대통령보다10m쯤 뒤떨어져서 걷던 陸英修 여사는 간호사들에게 일일이 말을 건넸다. 『가족들에게서는 연락이 잘 옵니까』 『일은 고달프지 않습니까』

陸여사가 세 번째 간호사와 악수를 하면서 『고향이…』라며 말을 건넸다. 아마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陸여사의 입에서 『고향』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간호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신호가 돼서 간호사, 광부 할 것 없이 울기 시작했다. 음악을 연주하던 광산 악대도 꺽꺽거리며 울었다.

벌써 행사장인 강당 중간쯤에 가 있던 朴대통령은 뒤를 돌아보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인 陸여사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주저앉으려 했다. 주위에서 간신히 陸여사를 부축했다.

朴대통령을 따라 강당 안으로 들어갔던 기자들은 이 광경을 취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사진을 찍던 사진기자들은 카메라를 내려 놓고 함께 울었다. 취재기자들도 주저앉아 통곡했다. 독일인 광산회사 사장도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10분 이상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朴대통령 내외는 단상에 올랐다. 광부들로 구성된 樂隊(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朴正熙 대통령의 先唱(선창)으로 시작된 애국가는 뒤로 갈수록 제대로 이어지지를 못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가 후렴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합창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마지막 소절인 『대한 사람 대한으로』에 이르러서는 가사가 들리지 않았다. 함보른 광산회사 테드 호르스트 영업부장이 환영사를 읽었다.

그는 『한 나라 국가원수가 이곳을 찾아 준 이 역사적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광부들의 근면함과 규율을 칭찬했다. 그의 차분한 환영사로 식장의 분위기가 겨우 진정됐다.

朴대통령이 연단으로 올라갔다. 朴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를 푼 다음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받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시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원고를 덮어 버렸다. 朴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흐느낌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朴대통령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강당 안은 눈물바다가 됐다. 朴대통령은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선물로 전했다. 30분 예정으로 함보른 광산에 들렀지만, 강당에서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데만 한 시간 걸렸다.

朴대통령은 곧바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강당 밖으로 나온 朴正熙 대통령 일행은 광부들 숙소를 돌아 봤다. 우리 광부들의 얼굴과 팔·다리 등에는 상처투성이였다. 채탄 작업 중 부러진 드릴이 튀어 오르는 바람에 입은 상처들이었다. 『지하 1000m 아래에서 採炭(채탄) 작업을 하고 나서 갱 위로 올라와 한잔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지만, 한국인 광부들은 그 돈도 아껴 본국으로 송금한다』는 얘기를 朴대통령은 들었다.

광부 대표 유계천씨는 『異國 땅에서 대통령 내외분을 뵈니 친부모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면서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독일에 남아 일할 수 있게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朴대통령 내외가 함보른 광산을 떠나려는데 한국인 광부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갓 막장에서 나와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작업복 차림의 광부들이 많았다.

그들은 朴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각하, 손 한번 쥐게 해 주세요』 朴대통령 일행을 태운 차는 한국인 광부들에게 가로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차 안의 朴대통령은 계속 울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뤼브케 서독 대통령은 『울지 마세요. 우리가 도와줄 테니 울지 마세요』라며 朴대통령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본의 숙소에 도착한 朴대통령 내외는 한국일보의 鄭光謀(정광모·한국소비자연맹 회장) 기자를 방으로 불렀다. 朴대통령과 陸여사는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鄭기자가 『울지 마세요. 저녁에 파티가 있는데 울면 어떻게 합니까』라며 대통령 내외를 위로했다.

그러자 朴대통령 내외는 鄭기자를 붙들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한참만에 눈물을 그친 朴正熙 대통령은 鄭기자에게 두 가지 다짐을 했다. 『기왕에 정해진 동남아 순방만 마치고 나면, 우리 국민들이 밥술깨나 들게 될 때까지는 외국에는 나가지 않겠다』

『우리 국민들이 밥이라도 제대로 먹게 만들어야겠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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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2007-01-14 14:51:53
처음 읽는 글이 아닌데도 "박대통령의 광부,간호사 방문기"를 대 할때는 내눈에 눈물이 끊임없이 솓아져 가슴이 메어짐니다.
[ 우리국민들이 밥술깨나드게 될 때까지는 외국에는 나가지 않겠다]

대통령이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는 " 혁명공약"과 절약하는 검소함이 외화낭비를 않겠다는 지도자의 의지 같아서..............................

민생은 깽판돼도 북쪽만 잘 하면 된다, 걸핏하면 외유로 하루 수십억원
뿌리느데 .................................................................................

나라 빚은 엄청 많아졌다니, 전 전통 때 이젠 채권국이 괬다는 소리듣고...노 대통령하고 무얼 비교하라는지, 상대가 않돼요, 나쁜대통령이라니깐요.

영웅박정희 2007-01-16 05:33:09
박정희 대통령이 어릴 때 그를 등에 업고 다니며
극진히도 돌봐주시던 누님이 딱 한 분 계셨다.

동생이 대통령이 되였을 당시 누님은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어렵게 살아
올케가 되는 육영수 여사에게
좀 도와 달라고 어려운 부탁에 편지를 보냈다.

이를 받은 육 여사는
친인척 담당 비서관에게 이 편지를 건네 주었다.

당시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생이었고
박 대통령의 집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 대통령 모르게 은행에서 대출을 알선해
(일종의 압력이었음) 박 대통령 누님의 아들에게
택시 3대를 사서 운수업으로 먹고살도록
주선을 해 주었으나,

나중에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박 대통령은 大怒해서
친구이기도 했던 담당 비서관을 파면하고
택시를 처분함과 동시에 누님과 조카를 고향으로 내 쫓아 버렸다.

이 조카는,--
"삼촌! 대한민국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습니다."라며
울먹이면서 대들었지만
박 대통령은 단호하게 고향으로 쫓아 버렸다.

누님의 원망을 들은 박 대통령은
"누님 제가 대통령 그만두면 그때 잘 모시겠습니다." 며
냉정하게 누님을 외면했다.

그 후 누님은 할 수 없이 대구에서 우유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대통령인 동생을 원망하면서…….

단 한 분 그것도 자신을 극진히 돌봐 주시던 누님이
어렵게 살고 있는데 대통령이 된 지금 이렇게도
냉정하게 뿌리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총을 들고 혁명을 일으킨 진정 메마른 눈물을 가진
독재자이었기 때문에 감정 없는 그런 인간이었을까.

피를 나눈 혈육의 정까지도 마다하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며
사리사욕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관이 확실한 애국심을 가지고 이 나라 3,000만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탁월한 영웅, 대한민국 역사이래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라..!
후임 지도자들을,......

그 누구 하나 부정부패 비리로 국민들을 실망 주지 않은 지도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직 대통령들의 자식들이
감옥에 가 있음을,…….

박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인척 그 누구도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고 청와대 초청 한번 안 했으며

또, 박 대통령 자녀 중 누구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지도 않았고
단 한푼의 재산도 물려주지 않았으며 특혜도 베풀지 않았다.

인간이 재물에 대한 욕망은 그 끝이 없음이 현실이다.

그러나 재산은 죽은 후 주머니에서 십만 원과 고물시계를
팔에 차고 있었던 것뿐 이였으며
그 이상 발견된 것이 없다.

단군이래 대한민국 지도자 중, 단 한 건에 비리도 없었던
박 대통령 말고 또 그 누가 있었다면 말해 보라.

대통령은커녕 출세했다, 장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제 자식 취직자리 부터 먼저 챙기는 썩어빠진 것 들이
개혁을 외치며 박 대통령을 헐뜯으려 단점만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 어찌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이 어찌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참으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초등학생 불러다 놓고
이같이 설명하며 물어봐라. 대한민국 역사이래
누가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훌륭한 지도자였느냐고,….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인사 운운하는 자들아.--

박 대통령 사후 지난 수십 년 간 그의 정적들이
박 대통령을 깎아내리려 눈에 불을 켜고 비리를
찾아 보려 했으나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를 똑바로 세워야 된다며 친일파 청산이란 명제하에
박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년초 부턴 한일 외교 문건과 문세광 비밀 문건을 공개,
흠집 찾기에 몰두하더니,

화풀이 분풀이 욕구 해소라도 해야겠다고
박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운현각" "충의사" 현판을
뜯어내고 부시고 뽀개고 빠개고 하는 것이란 말이더냐.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좌파들이 박 대통령을 헐뜯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며 매도하려 발버둥치는 것을 보니

혈육의 정까지도 냉정하게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청렴결백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이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

그 누님이 어려웠던 과거 이야기가 생각나서,…….

--촌장--

익명 2007-01-16 11:34:58
폐농비관 농민자살의 비보에 처 조카인 농수산부장관도 파면시킨 박대통령을 노무현이 뭐시라!

1978년 9월,장덕진 농림수산부장관은 신품종 볍씨인 이른바 "노풍벼"를 개발 청와대에 보고했다. 당시 농촌에서 재배했던 일반벼는 단보당 (450kg)과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는(550kg)수확량에 비해 노풍벼는 750kg 생산 할 수 있다는 기적의 볍씨로 알려져 정부가 노풍벼 재배에 행정력을 총 동원하고 농가 권장에 나설 때,

78년 9월 초순 전남의 영산강 유역,농촌 들녁이 황금색으로 변할 무렵 한 농부가 수를 낸 2천평의 논에 (강제권장)기적의 볍씨라는 노풍벼를 재배하고 수확기에 접어 목도열병으로 폐농에 이르자 이를 비관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건이 터졌다.

이 짤막한 농민의 부음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가 청취하는 대남 방송에서 "남조선 박정희 군사 도당은 농민들을 학살하고 있다" 는 뉴스를 박대통령이 직접 들었다는 것과 이날 국무위원 회의가 중단되고 회오리는 장덕진장관이 노풍벼 강제권장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런데도 당시 전남 도지사였던 고건지사는 승승장구로 작금에 대선후보까지 거론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농민들의 피해 보상 대책으로 전 농가에 현금 보상과 수매 부채 이자 경감 등 건국 이후 처음 정부의 실정을 인재(강제권장)로 판단150여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삐삐 2007-02-19 23:20:09
우리가 이런 지도자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런것은 생각하지 않고 왜 그분을 평하 하는지 배고픈 설움이 어떤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런사람들은 북한으로 보내서 배고픈것이 어떤지 체험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민족의 원수 맥아더라고한 강정구교수부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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