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장한 시민군 옆으로 수많은 수류탄이 보인다. | ||
70년 유신선포로 정부가 프레스카드제를 통해 언론의 자율정화를 위해 시행된 제도를 가리켜 운동권들은 당시의 기자들을 유신 언론인으로 지칭하고 그들은 우리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
반공 방첩의 표어가 새겨진 벽시계가 24일 새벽 3시를 알려준다.
정소령이 건네준 모포 한장을 들고 긴 나무 의자에 누웠다.
24일 아침 진압작전을 앞두고 문득 월남 퀴논 지역에서 산화한 36명의 전우들의 모습이 주마등 처럼 떠 오른다.
전사자 명단 에서 발견한 김상병은 고향 친구이자 군 입영 전에 같은 직장을 다녔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읍내 극장에서 영사 기술을 배우고 나는 선전실 에서 간판을 그리는 조수 생활을 했던 유일한 고향 친구의 이름 석자를 전사자 명단 에서 발견했다.
안돼! 안돼!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리자 쥐었던 칼빈 소총을 움켜 잡는 순간 꿈 속에서 깨어 났다. 비몽 사몽간에 지른 소리에 당번병이 달려와 나를 깨운다. 벽 시계가 아침 8시를 알린다. 새벽녁 잠시 눈을 부쳤는데 어느덧 3시간 동안 악몽에 시달린 모양 이다. 대대장 실 주변이 너무 조용 했다.
당번병이 대대장과 현역병16명이 출동 했다고 알려 준다, 그가 출동 하면서 당번병과 함께 부대에 남은 방위병과 예비군 들의 안전을 당부 하고 만일의 사태에 부대를 철수하라는 당부를 하고 출동했다는 것이다. 16명의 병력으로 진압작전에 나섰다는 소식에 심장이 멈추듯 전신이 떨려온다.
저들은 줄잡아 1천 여명의 병력으로 추정되고있어 1당 100의 작전 이다. 부대 전인원 60명이 출동 하기로 다짐 했는데 대대장은 나를 포함 피신온 휴가 장병과 방위병,예비군들을 남겨두고 16명의 현역들과 출동한 모양이다.
꿈 속에서 들었던 총성이 현실 임을 알고 온몸이 쭈볏 해진다, 직전에 울린 총성이 앰16 총성 이기에 우리 현역들의 신변이 염려 되었다. 나는 당번병 에게 부대 잔류 병력의 안전을 맡기고 부대앞 정문을 향해 돌진했다.
서른 일곱의 나이를 잊은체 마구 뛰어 단숨에 부락 어구 송전 철탑에 도달하니 논두렁 사이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저는 475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마사태 당시에는 부산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시위에 참여했으며 그 후 대학교를 졸업을 하고 군에서는 공수부대를 지원해서 광주사태 당시 광주 진압부대였던 3공수특전단에서 장교로 팀장 근무를 했었지요.
물론 제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도 어느 기간, 어느 지역, 어떤 한정된 상황이나 사항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와 상황도 그 당시 그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여러사람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아이로니하게도 제가 근무했던 공수부대 대대는 부마사태 당시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 주둔을 하며 계엄군 임무를 수행했더군요.
그러다보니 고참 중사와 상사들은 저희 대학의 매점 아가씨들과 이발소 아저씨 들도 잘 알고 있더군요. 학교앞의 책방 주인아저씨, 식당 아줌마들 까지도 모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어떻게 자신들과 지냈는지도 얘기를 했어요.
4년동안 그학교를 젝 다녔으니 금방 알 수가 있었죠. 그중 한 하사관(중사)는 철수한 그때까지도 그아가씨와 가끔 편지를 주소 받는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민간인과 친했었다는 얘기죠.
광주사태 당시 그들은 부산 마산 사태의 진압경험이 있다는 것으로 인해 7공수와 11공수가 실패한 진압 임무를 넘겨받아 광주에서 전남 도청 등을 접수했었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전 두환 정권의 보도 통제 아래에서 일방적으로 전 두환 정권에게 유리하게끔 보도되었던 행태를 지금의 언론에서 이제와서 또 다시 새로운 김 대중 정권에 아부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어요. (글쎄요... 왜곡이란 표현이 지나치다면 한 쪽의 얘기만을 계속 보도하고 있다고 변경하죠!)
전두환 정권 당시 일방적으로 보도를 했던 것 처럼(그게 자의건 타의건 간에...)지금은 공수부대나 그밖의 진압군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부치고 있어요!
당시 공수부대에 있으면서 모든 걸 보고 듣고 경험했다는 현직목사도 어느 한 면만 보고 듣고 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마치 계엄군, 진압군들의 전체 대표인양 방송매체에 나와서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5-17 전후해서 TV에상당히 많이 나오시더군요)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분은 상황별, 시간대별, 지역별로 발생했던 것을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쏟아놓을 만큼 지식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한 진실을 얘기할 용기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좀 심하게 얘기하면 지금의 386 국회의원들과 기성 정치인들처럼 다음 번 국회의원 자리 공천을 노리는지도 모르죠! (이 얘기가 심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어제 오늘의 사건들을 보십시오.(517 NHK, 문 장관, 장원 대변인)어느 누구 믿을만한 지도자나 위정자들이 있는지...
그 당시 왜 공수부대원들이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쏠 수 밖에 없었는지?!
광주 시민들... 그들은 순수하게 시종일관 비폭력, 비무장 시위를 했었는지?!
당시의 공수부대의 군기는 어떠했는지?(지금이나 그때나 최강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공수부대가 일방적으로 광주시민들을 때리고 죽이고 해치우기 위해서 내려갔다면 왜 그렇게 훈련이 잘되고 잔인했다는 공수부대원들이 6-25 전쟁 당시의 겁많고 의심많은 미군들처럼 미소를 띠고 다리 밑으로 유인을 해서 한꺼번에 몰살을 하지 않았는지?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의 대부분 남자들이 군대를 다녀왔는데 군대에서는 아무런 명령이나 기강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찌르고 죽이고 할 수가 있답니까?
그것도 전국 8도의 장정들이 다모여 있고 별자리부터 이등병까지 편제 되어 있는 군대조직에서 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방송에서 많이 나오는 진압봉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한 것이 전부였지요.
그것도 진압 초기에는 횡대로 열중쉬어만 하고 있었던 것을 점차 시위가 난폭해지고 차량을 이용한 습격이나 돌진이 자주 발생하자 자위의 일환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공수부대원들을 대변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광주항쟁을 폄하하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어느 한 쪽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짓거리를 다시 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광주의 원혼을 달래려고 누군가를 죽이려면 용감하게 나서서 그 당시의 괴수인 전 두환, 노태우, 정호영 등등 하나회 골수들을 사형시켜야 하고 당시의 장관 주영복이를 비롯한 정부 관리들을 처형해야합니다.
그들을 다 풀어주고 사면시켜 놓고서는 이제와서 무슨 짓거리를 합니까?
그게 화해이고 용서입니까? 단지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것이지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고...
70 -80년대 우리나라의 시위에 참가해 본 사람들은 느낄 것입니다.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