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고 책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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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유고 산문집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 나와

 
   
  ^^^▲ 이문구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표지
ⓒ 바다출판사^^^
 
 

"내가 바란 것은 다만 얼마 동안이라도 '당대 제일의 문장' 소리나 한번 들어보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수룩한 희망이기도 하고 외람된 희망이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리 시건방진 수작만은 아니란 생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당대'라는 오만무례 앞에 '얼마 동안'이라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25일, 지병인 위암이 악화되어 예순셋의 아까운 나이로 이 세상을 짚신짝 던지듯이 훌쩍 던져버린 작가 이문구의 유고 산문집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가 바다출판사에서 나왔다. 유고 산문집? 그렇다면 그 내용은 불을 보듯이 뻔한 게 아닌가. 투병과정에서의 괴로움과 생명에 대한 집착 같은 그런 내용이 아닌가 그 말이다.

그래. 그동안 대체적으로 '유고' 란 단어가 붙은 책들은 주로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고 이 책을 펼치다가는 이내 당혹감에 빠진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이문구가 3년 전부터 산문집을 내자는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서 잠시 외출을 나와 정리한 원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 세상을 떠나기 1주일 전에 말이다. 그래. 당시 이문구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세상과의 부채를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온 흔적들을 다시 한번 자신의 눈으로 훑어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 남에게 빚지기를 싫어했던 그의 성품처럼.

이처럼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에는 죽음의 그림자라든가, 투병 중의 괴로움이라든가, 삶에 대한 집착이나 회한 같은 그런 내용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에 대한 이문구 다운 관조와 이문구 다운 꼼꼼한 문체가 산문 곳곳에서 금방 낚아올린 싱싱한 잉어처럼 파닥거린다.

이 책은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작가가 여러 잡지에 발표한 글들이 가지런하게 묶여있다. 제1부 삶에 대한 회고가 담긴 '지상의 마지막 불목하니', 제2부 문단판 이야기를 다룬 '결혼식장에 간 동리선생', 제3부 사회에 대한 세태풍자가 담긴 '고개들어 세상보니', 제4부 토속어에 대한 사랑이 담긴 ''꼭한'사내 "똑한'여인' 등 모두 44편의 산문이 그것.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 산문들 중에서 단 한편도 투병생활에 대한 그런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왜일까. 시인 천상병의 말처럼 이 세상에 소풍을 왔다가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이제 기로에 서 있는 자신, 그 시들어가는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그도 아니면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서였을까.

<매월당 김시습>을 쓸 때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스스로 필부라고 털어놓는다. 당시 고향인 충남 보령의 서재에서 <매월당 김시습>을 쓰고 있을 때, 벌떼가 날아들어 작가의 사랑방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이를 본 양봉가가 "옛날부터 집에 벌이 들어오면 논 서 마지기를 사주고 나간다"고 했단다.

이후 <매월당 김시습>이 20만부 이상 팔려나가자 작가는 그때 그 벌떼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책이 나가면 더 나가기를 바라는 푼수는 아니다. 그러나 업에 대하여 호감이 갔던 것을 보면 역시 갈데 없는 필부다'라며 작가 스스로도 이 세상의 현실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또 작가가 평생동안 문학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로 모셨던 작가 김동리와 시인 서정주에 대한 이야기도 눈에 띈다. 한때 이문구는 자신의 스승인 김동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나중에 선생님처럼은 안 살아'라고. 남들과 오랜 시간을 소비하면서까지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했던 김동리의 성격 때문이다. 또한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이 오면 김동리는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단다.

이문구가 진보적인 잡지 <실천문학> 대표를 지낼 때의 이야기도 재미 있다. 작가는 1985년 '친일문학작품선집'에 서정주의 글을 실은 뒤 한동안 서정주의 노여움을 지레 짐작하고 일부러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공석에서 이문구를 만난 서정주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왜 요새 잘 보이지 않느냐. 어서 속 고쳐가지고 오너라. 아아, 우리는 어이튼 한잔 해야 허그든" 이라고. 이에 대해 이문구는 서정주의 '어이튼 한잔 해야'라는 말에서 하해지택(河海之澤)을 느꼈다고 한다. 하해지택? 하해지택은 물과 바다보다 더 넓고 큰 은혜라는 그런 뜻이다.

이 외에도 농민단체나 상가, 환갑 등에 초대되었다가 불만 떼주고 왔다는 이야기, 까치가 농작물을 해친다고 까치둥지 씨마르는 줄 모르고 박멸운동을 펼친다는 이야기, 모닝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넣어주던 1970년대 다방의 풍경 등과 더불어 토속어에 대한 작가의 짙은 사랑이 담긴 글들이, '얼마동안' 당대 제일의 문장가에 의해서 새롭게 되살아난다.

 

 
   
  ^^^▲ 작가 이문구
ⓒ 한국소설가협회^^^
 
 

작가 이문구는?
- 당대 최고의 문장가

작가 이문구 선생은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아버지와 형들을 잃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15세 때에 가장이 되었다. 1959년에 중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서울로 올라와 막노동과 행상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966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 '다갈라 불망비' '백결'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 풍진 세상을><해벽><관촌수필><우리동네><유자소전><장한몽><매월당 김시습>등 주옥 같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국창작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펜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 받았다. 2003년 2월 24일에는 지병인 위암이 악화되어 63세의 아까운 나이로 이 세상을 등졌다.

이문구의 작품세계는 산업화로 해체되어가는 농촌의 실상과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착을 해학과 풍자를 곁들인 개성적 문체로 그려내, 농민소설의 표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문단에서는 그의 바람처럼 '얼마동안'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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