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아져 여유로운 공간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의암호를 찾았다. 구름 한점 없는 호수 면에 낮은 산들이 알록달록하게 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나무들의 화려한 변신을 보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부끄러움은 무엇인지, 이 떳떳하지 못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호수 곁에 말없이 서있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잠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환경호르몬’, ‘환경의 역습’ 등 연일 매스컴에서 경종을 울리는 환경에 대한 문제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들의 모습은 과녁을 옆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의 모습을 닮아 있다. 자신은 과녁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활시위를 떠난 빠른 화살의 움직임을 그동안 자연의 인내로 가까스로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육체적 혜택이 과연 정량화 될 수 있을까? 방짜유기와 같은 불편함에서 편안함을 찾은 조상들의 지혜에 숙연해지는 것은 내 자신이 그만큼 자연과 멀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자연이 주는 혜택에 대한 인간의 보답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호수에 부딪히는 해질녘의 눈부신 햇살에 색동옷 차려 입은 나무들이 더욱 흥겹게 화답을 한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작은 눈과 마음에 다 담아가지 못하는 아쉬움과 우리를 지켜주는 고마움을, 아무런 불평 없이 비탈에 서있는 작은 나무에게 전하며 의암호를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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