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 문승현, '오월의 노래' 중에서 -
민주화의 봄. 쿠데타와 학살 그리고 저항.. 한국의 80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어느새 '5월광주'는 우리의 정신적 고향이 되어 있었다. 혁명광주는 언제나 우리들 가슴 속에서 신열을 앓고 있었으며 살아 숨뛰는 맥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망월동. 해마다 우리는 때론 그들 모르게, 때론 최루탄과 함께 찾아 갔었다. 핏빛 진달래와 함께 찾아온 반도의 5월은 언제나 그렇게 우리에게 윈죄의 무게를 더해주었고 눈물과 분노 그리고 투쟁과 운동이 거기에는 늘 함께 있었다.
돌이켜보면 84년 이후 전국의 대학가가 온통 들끓기 시작하고 캠퍼스가 몸살을 앓으면서 드디어 '광주'가 우리 앞에 신열을 토해내며 그 나신을 드러냈다. 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5월 대학가의 해오름식은 이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캠퍼스는 단 하루도 영일이 없었다.
그렇게 광주는 우리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으며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멍에였다. 어느 누구도 광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직 광주만이 우리들의 영감과 사상적 전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여정은 거칠었고 힘겨웠으며 이따금 몸져 누웠다.
96년 5월. 망월묘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방송3사 합동 실황 중계방송이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너무나 낯설었고 조금씩 타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행사가 되어가고 형식이 되어가는 광주는 이미 우리곁에서 비켜 서 있었다. 그렇게 광주는 우리들에게 심한 흉터를 남기며 불구가 되고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 이제 광주를 떠나는거야... 이미 광주는 한 시대의 몫을 충분히 지켜왔어.
그래, 광주는 제 갈길을 가고 있는거야... 다만 우리가 헤매고 있는거지.
이제 광주를 떠나 보내자... 나머진 살아 남은 우리들의 몫인거야... "
우리가 일어났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고 땅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서녘 하늘에 붉게 물든 노을은 구름에게 몸을 휘감기며 또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몸부림을 칠 때마다 피가 뚝뚝 강물로 흘러내리고 있었고 붉게 물든 강물은 어머니의 저녁사랑 같았다. 그렇게 슬픈 저녁 노을은 처음이었다.
황혼녘 광주를 떠나면서 우린 신동엽의 시를 절규하듯 소리높이 외쳤다.
내 일생을 시로 한 번 장식해봤으면...
내 일생을 사랑으로 한 번 채워봤으면...
내 일생을 혁명으로 한 번 불질러봤으면...
"평화와 통일의 한 세상으로... "
어제 오전 5.18묘역에서는 추모제가 열렸다. 저녁에는 도청 앞에서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야제가 열렸다. 그리고 오늘 오전 노무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5.18민중항쟁 23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80년대를 경험하며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그 이상이 공유되고 계승되어졌던 5월광주. 그러나 항쟁 23돌을 맞은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신의 세례를 받으며 광주를 자기 성찰과 반성의 탯줄로 이어가고 있는지를 떠올리면 금방이라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각 대학 캠퍼스에서는 연일 축제마당이 펼쳐지고 있지만 '5월대동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죄인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심판하여 단죄해야 한다. 그리하여 항쟁의 주체들을 진정한 역사의 주인으로 세우기 위한 한풀이를 준비해야 한다.
항쟁의 피해자는 결코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광주시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하여 "5.18정신을 계승하여 개혁과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대통령의 기념사만으로, 행사와 형식만으로 광주는 끝내 잠들 수 없으며 그 상처 또한 영영 아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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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뉴스타운에서 이렇든 백옥같은 글을 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십시나. 건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