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저기 용이 승천하고 있네 - 감은사 삼층석탑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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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용이 승천하고 있네 - 감은사 삼층석탑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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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은사 삼층석탑"

봄비가 내린다. 빗방울이 제법 굵다. 비만 오지 않았다면 마치 강원도 산길 같은 이 추령고개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도 있었으련만. 아니 구름도 쉬어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잠시 내려, 그 누군가의 애타는 그리움처럼 잔주름을 잡고 있는 저 덕동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넋을 놓을 수도 있었으련만.

근데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늘 이 가파른 고개를 힘겹게 넘어서면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동해바다가 막힌 가슴을 확 뚫어주었건만, 오늘은 바다도 쏟아지는 봄비를 피해 수평선을 거두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나 보다. 그래.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길가 곳곳에 피어난 철쭉도 비를 맞으며 붉은 울음을 뚝뚝 떨구고 있다.

"아니, 봄비가 무슨 장맛비 쏟아지듯이 이렇게 계속해서 내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꼽꼽한 기 술 마시기에는 딱 좋은 날씨구먼"
"그래? 그럼 있다가 감포에나 가자. 까짓거 니 말대로 생선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걸치지 뭐"

늘 보아도 감은사터 곁에서 마른 바닥만 내보이던 대종천도 오랫만에 제법 벌건 물줄기를 마구 흔들고 있다. 감은사터에 우뚝 서서 마주보고 서 있는 삼층석탑 둘도 비에 젖어 꺼멓게 울고 있다. 삼층 석탑 머리 꼭대기에는 높이가 3.3m나 된다는 긴 철제 찰주(擦柱)가 피뢰침처럼 뾰쪽하게 서서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길 왼쪽, 마치 고슴도치처럼 웅크린 야트막한 산도 비에 젖어 파르르 떨고 있다.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금새라도 연초록빛 울음을 으앙, 하고 터뜨릴 것만 같다. 그래. 저 산자락을 비집고 드러누운 작은 길이 감은사터로 들어가는 길이다. 어쩔래?우선 감은사터 주차장 곁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목이라도 축인 후에...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아 창건했다는 감은사. 황룡사, 사천왕사 등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호국의 사찰로 명성을 떨쳤다는 감은사. 하지만 그 감은사가 언제, 어떤 이유로 오늘과 같은 절터만 남긴 채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 감은사지 동탑이종찬^^^  
 

감은사의 처음 이름은 진국사(鎭國寺)였다고 한다. 진국사는 무무왕이 당시 동해안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를 막기 위해 짓고 있었던 호국사찰이었다. 하지만 문무왕이 절을 완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신문왕이 진국사를 완공(682년)한다. 그리고 신문왕은 부왕의 호국충정과 나라 사랑의 참뜻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그때부터 진국사를 감은사라고 불렀단다.

감은사는 금당의 섬돌 아래 동쪽으로 굴을 파놓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호국용이 된 문무왕이 언제든지 감은사를 휘돌아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일종의 바닷길인 셈이다. 이는 지금도 감은사지 곁에서 흐르는 대종천이 당시 바다였으며, 또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 깊은 속내를 알 수가 있다.

"어! 저기 용이 승천하고 있네"
"오데?"
"저어기~"
"니 눈에 헛 기 자꾸 보이는 거 보니까 니가 오늘 술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란갑다. 그라고 문무대왕이 나라를 팽개치고 하늘로 승천을 하모 안되지"
"하긴 필부에게 승천하는 용이 보일 리가 없지"
"뭐어? 내가 필부라꼬. 그라모 니는 뭐란 말이고?"

 

 
   
  ^^^▲ 감은사지 석탑경상북도^^^  
 

우산을 받쳐들고 감은사터를 대충 둘러보고 난 뒤 다시 삼층석탑 동탑 앞에 섰을 때 비가 그친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감은사터 주변에 가라앉아 있다. 구두는 벌써 다 젖었고, 어느새 양말까지 축축히 젖어 걸을 때마다 제법 철벅거린다. 기분이 묘하다. 비를 탓하랴? 아니다. 어차피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 아니한가.

동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감은사터 삼층석탑은 신라 신문왕 2년, 서기 682년에 세워진 돌탑이다. 이 탑은 삼국시대 때 세워진 여느 탑과는 그 구조가 다르다고 한다. 삼국시대의 탑은 대체적으로 사찰 하나에 하나씩의 탑을 세웠단다. 그런데 이곳의 탑은 동탑과 서탑이 있는 쌍탑이다.

자료에 의하면 삼국통일 이후에 등장되는 탑이 이 쌍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감은사터에 세워진 이 쌍탑은 삼국통일 이후 쌍탑식 가람제도의 초기 양식을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삼층석탑이 어쩌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쌍탑으로는 처음으로 세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 감은사지 석탑경상북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2호로 지정된 감은사터 삼층석탑은 유홍준씨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뛰어난 건축기법을 간직하고 있는 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탑 전체의 비례가 정립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매우 안정감을 주는 탑이며, 현존하는 국내의 탑 중에서 가장 큰 탑이란다. 또 삼층석탑으로서도 분황사석탑 다음으로 가장 크다.

총 높이가 탑 꼭대기에 우뚝 솟은 찰주의 높이까지 합쳐 13.4m나 되는 삼층석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어떤 웅장한 기운이 꿈틀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파도소리처럼 자꾸만 밀려든다. 이제 와서 어쩌랴. 외세에 의한 반역의 세월이 어찌 그때뿐이었으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조차도 그러하거늘.

"이 탑이 특이한 것은 피뢰침처럼 우뚝 솟은 저 철주야. 철재로 만들어진 저 철주는 다른 탑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거든"
"근데 저 탑을 한번 해체했다며? 그라고 머슨 사리가 나왔다며?"
"1959년 12월에 한번 해체를 했다는데, 그때 서탑에서 왕이 타는 수레 형태의 사리함(보물 제366호)이 발견되었다고 하더만"

그래. 보물 제366호로 지정된 그 사리함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1960년과 1979~80년 사이에 감은사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여 유물을 수습하고 감은사의 전모를 확인했다고 한다. 또 얼마 전에는 서탑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는 신문보도도 있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30일, "감은사터 삼층석탑 서탑에 이끼가 조금씩 끼고 상부가 약간 벌어지고 있어서 곧 보수할 계획"이며 "이로 인해 문화재연구소에서도 정밀한 자료수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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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서울-경주-경주시외터미널-양남 행 버스(1시간 간격, 40분 소요)-감은사 터 입구(40분 소요) 서울-경주-감포방면-양북면 어일리-우회전-929번 지방도-6.5Km지점

 

추가자료 :감은사지 동탑 이종찬
추가자료 :감은사지 서탑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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