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메루치회 묵으로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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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메루치회 묵으로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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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 “멸치마을”

 
   
  ^^^▲ 그물에 걸린 멸치털기
ⓒ 기장군^^^
 
 

봄비가 쏟아지는 바닷가에 가 보았는가. 가서 봄비에 온몸을 흠뻑 적신 채 아우성치며 울고 있는 바다를 보았는가.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은지 가슴을 탕탕 치며 뭍으로 뭍으로 달겨드는 파도. 그 파도의 어깻죽지를 감싸안고 열심히 달래고 있는 작은 섬. 봄비에 온몸을 흠뻑 적신 채 파르르 떨고 있는 고깃배…

봄비가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진종일 울고 있는 그녀를 보았는가. 그리고 그녀가 쓰고 있는 까아만 우산 위로 그녀의 눈물처럼 동그란 물방울을 굴리며 수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는가. 그 까만 우산 속에 까만 옷을 차려입은 그녀가 힘없이 우산을 떨구는 모습을 보았는가.

지난 주말부터 일주일 내내 봄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웬지 마음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때 문득 입김이 하얗게 서린 창에서 빗방울을 타고 마치 실루엣처럼 떠오르는 그녀. 내가 이십여 년 전에 어느 바닷가에서 바라본 그녀. 비를 맞고 있는 뒷모습이 한없이 슬프게만 보이던 그녀.

"아재들! 오데 가능교? 싱싱한 며루치회 묵을라모 퍼뜩 이리로 오이소"
"얼마씩 해요?"
"이거 전부 만 원만 주이소"
"이걸 그냥 사면 우리가 어떻게 해요?"
"걱정 마이소. 다 알아서 무치(무쳐) 줍니더. 그라고 소주는 꼬옥 저기 저 집에 가서 사이소"

꼬옥, 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싱싱한 멸치회를 건네주던 난전의 그 할머니. 그래. 작년 이맘 때에는 대변항으로 가는 길이 막혀 혼땜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을 참아내며 도착한 대변항에는 어부들이 마악 털어내고 있는 멸치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 내장을 제거한 멸치
ⓒ 기장군^^^
 
 

대변항 왼쪽으로는 멸치회를 비롯한 멸치찌게, 멸치튀김 등 재료가 모두 멸치인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마치 누가 누가 더 맛있나, 하며 내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길 오른쪽 대변항 주변에는 멸치젓갈과 마른 멸치, 오징어, 문어 등 각종 생선을 파는 난전들이 말 그대로 난장판을 이루고 있다.

한순간도 눈을 한 곳에 고정할 수가 없다. 대변항 전체가 비릿한 생선내음과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로 가득하다. 곳곳이 사람이요, 곳곳이 멸치와 생선들 세상이다. 그렇게 조금 지나가다 보면 어디선가 독특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찌 들어보면 노랫소리 같기도 했고, 귀 기울여 다시 들어보면 시조를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 그 소리는 다름 아닌 멸치를 터는 어부들이 내는 가락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악 바다에서 돌아온 어부들이 그물에 매달린 멸치를 터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긴 숨바꼭질 하듯이 아파트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곳이 아니면 멸치 터는 모습을 어찌 볼 수가 있겠는가.

"골다공증에는 이 메루치가 최곤기라"
"그라이 메루치로 칼슘의 왕이라 안카나. 그라고 헹님도 소주만 홀짝홀짝 마시지 말고 한 점 찍어 보소. 며루치 회캉 술로 묵으모 술이 안 취한다카이"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대변이야?"
"큰 해변이란 그런 뜻 아이겠능교. 하긴 처음 듣는 사람은 그 이상한(?) 생각부터 날끼거마는. 에헤! 헹님도. 메루치회는 그래 묵는 기 아이라카이요. 요렇게 젓가락으로 푸욱 집어서 한입 가득 집어넣어야 지 맛이 난다카이"

 

 
   
  ^^^▲ 멸치 그물 손질
ⓒ 기장군^^^
 
 

기장멸치는 어른 손가락 크기 만한 왕멸치로 전국유자망 멸치 어획량의 70%를 차지하는 이 지역 대표적 특산물이다. 특히 3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 잡히는 봄멸치는 다른 철에 잡히는 멸치에 비해 지방질이 풍부하고 살이 몹시 연한 탓에 멸치회나 구이, 찌개, 젓갈 등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다.

"입맛 떨어진 봄철에는 이 멸치젓갈이 최고지예. 특히 속이 빨간 이 육젓에다 매운 고추도 송송 썰어넣고, 마늘도 콩콩 찧어넣고, 고춧가루로 넣은 뒤 한번 묵어보라니까예?"
"그라이 밥도둑이라 안 카능교"
"얼마죠?"
"오천 원부터 아저씨 입맛대로 다 있어예"

※올해 멸치회(2인 기준)의 가격은 횟집에서는 2만5천원선. 하지만 인근 활어센터에 가면 1만5천원선에 살 수가 있으며, 양도 더 많다고 한다.(양념장 별도)

 

 
   
  ^^^▲ 봄노을이 아름다운 기장 앞바다
ⓒ 기장군^^^
 
 

멸치회 맛있게 먹는 법

멸치는 그물에 걸리는 순간 대부분 죽어버리기 때문에 살아있는 멸치로 회를 만들어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혹 멸치회를 양념에 버무리지 않고 각종 야채와 양념장을 마련, 일반 회를 먹듯이 먹기도 한다.

하지만 멸치회의 진미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비빔회다. 생멸치를 손질할 때 막거리나 소주를 붓기도 하는데 이는 멸치의 살을 단단하게 하고 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장멸치는 워낙 싱싱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생략해도 된단다.

생멸치를 집으로 가져가서 먹을 경우 아래의 요령에 따라 먹으면 훨씬 맛있는 멸치회를 즐길 수 있다.

1. 싱싱한 생멸치를 구한다.
2. 생멸치의 가시를 발라내고 깨끗하게 손질한다. 손질한 멸치는 소주나 막걸리에 씻는다.
3. 양념장은 고추장, 물엿, 설탕, 식초를 적당량 넣어서 만든다. 이때 양파를 간 즙이나 레몬즙을 약간 넣으면 멸치의 비린내가 사라진다.
4. 사과와 당근, 양배추를 채썰고, 미나리는 잎을 제거하고 줄기를 다듬어 놓는다.
5. 손질한 멸치와 각종 야채에 양념장을 붓고 살짝 버무린 뒤 통깨를 예쁘게 뿌린다. 이때 너무 세게 버무리면 멸치의 살점이 부서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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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yu 2003-05-10 21:53:58
어릴적 어머님은 회먹고 남은것은 바로 묽은 튀김반죽을 하시고 아버님 안주용으로 남기셧어요. 40년전 제가 국민학교5년 다닐때 서울이사와서 얼마안된걸로 기억함 정말 맛 잇엇어요 먹고 살기 힘들때 였는데 지금은 이를 맛 보기가 더 힘드네요.

기자님팬 2003-05-11 16:13:58
이종찬 기자님의 기사를 읽으면 언제나 마음이 푸근해 집니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님도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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