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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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처에 돌아온 광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격한 감정이 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 정말로 앞이 캄캄했다. 자기 일도 어려운데 조카의 일 때문에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연성에 대한 생각들이 그를 괴롭혔다.

악어를 죽이자는 생각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 깊은 생각으로 빠져들어 갔다. 아무 것도 생각할 것이 없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죄와 벌>의 주인공인 ‘라스콜리니꼬프’처럼 하면 된다. 그자의 생각이 정말로 옳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그자도 나처럼 가난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정의 편에 서지, 그게 광호 마음에 들었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문제가 안 된다. 아무튼 그자는 정의 편에 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옳고 그른 것은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라스콜리니꼬프처럼 악어를 죽이면 되는 거다.

그 자가 말한 인간 본성문제도 옳다. 순자가 말한 성악설도 맞다. 철학은 어려워서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라스콜리니꼬프’에게는 철학적, 형이상학적인 사고가 있다고 했다. 아무튼 지식인들 흉내를 내고 어렵게 이야기해야 먹히는 세상이다. 그래야 근사해 보인다. 그자가 삶을 죽였는데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이라고 하니 따질 필요가 없다.

이성과 감성은 늘 충돌하려고 한다. 이성이란 폭발하면 감성이 억제하고 감성이 충돌하면 이성이 억제하면 된다. 나는 차가운 인간이다. 절대로 폭발하지 못한다. 하지만 악어는 죽여야 한다는 감성이 이성을 짓누르고 있다. 내 이성은 별개 없다.

처음부터 나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냥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악어를 죽이면 된다. 더 생각한 것이 없다. 지식인은 이성과 감성을 상호 견제하며 잘도 살고 잘난 체 하지만 나는 그런 지성도 없고 문화인도 아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나를 천치이고 야만인이라고 했다.

결과론도 마찬가지다. 이성과 감성을 억제하지 못해서 윤리 선생님을 이미 죽였다.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자수도 안하며 도망을 다니다. 그런데 악어를 하나 더 죽인다고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냥 ‘라스콜리니꼬프’처럼 하면 된다.

‘선과 악’이라는 것도 자기의 가치 기준이다. 내가 ‘선’이라고 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악’이라고 보면 그것은 ‘악’이다. 힘이 있는 자의 말이 언제나 옳고 힘이 없는 자는 언제나 그르다. 그게 ‘선과 악’의 정의다.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죄 값으로 감옥에 갔었다. 모든 것은 힘이 있는 자의 편이다. 정의 역시 그러하다. 라‘스콜리니꼬프’의 경우를 보아도 그러해 보인다.

‘신과 인간’ 관계도 그러하다. 언제나 인간은 신에게 숨죽이고 살아야 하며 져야한다. 그것을 부정하면 바보가 된다. “네가 어떻게 신을 이겨, 바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한다. ‘라스콜리니꼬프’도 부활하려는 생각이 들기 전에는 신을 ‘망각’했다.

그렇다면 ‘망각’은 좋은 것이다. 괴로우면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이 없다. 살인은 죄가 되고 신을 배반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신이 인간을 언제나 이기는 것으로 그것을 반증한다. <세인>에 나오는 주인공은 늘 이긴다. 그게 권선징악이다. 신을 부정하면 그러한 권선징악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고, 그 한번이 부활을 하지 못하게 한다. 아무나 부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을 부정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근사해 보이지만 그것을 부정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그런데 광호는 그것을 모르고 부정한다.

광호는 종교적, 철학적,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해 늘 부정하고 웃기는 말장난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쓰라고 한 감상문을 쓰지 않은 이유가 그거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에 변화가 왔다. ‘라스콜리니꼬프’처럼 변해가고 있고 그를 신봉하는 것도 그러하다. 아무튼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 악어는 죽어야 마땅하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베니스의 상인> 흉내를 내는가 말이다. 돈을 못 갚으면 자기의 살을 1파운드 떼어 주기로 했다. 판사가 살려줬다. “피를 흘리지 말고 단지 1파운드만 떼어 가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로 고리대금업자는 오히려 전 재산을 잃었다. 그게 명판결이고 정답이다. 악어도 그것을 흉내 내고 있다면 누가 명판결을 할 것인가가 문제다.

약어는 ‘살’이 아니라 ‘신장’을 떼어 가겠다고 했다. 신장으로도 꾸어준 돈에 대한 원금과 고리의 이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구도 있다. 두 눈을 파내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또 다른 것을 팔면 된다.

악어는 사람의 신체가 땅이나 증권보다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담보로 잡았다. 그런 놈들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현대판 <베니스의 상인>이다. 그놈을 죽여서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그것을 ‘라스콜리니꼬프’처럼 내가 해야 한다.

악어가 무참하게 죽으면 다른 자들도 그런 일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자를 죽이는 것은 정의가 되고 사회악을 제거하는 일이 된다. 그렇다. 악어는 죽어야 마땅할 자다. 그자를 죽이는 것은 결코 조카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자는 죽어야 사회가 바로 선다. 그렇다면 망설일 것이 없다. 그 자를 죽이자. 그런 생각에 이르자 광호는 이제 악어를 죽이는 일이 정당한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점점 ‘라스콜리니꼬프’를 흉내 내려고 했다.

악어를 왜 죽여야 하는지가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렵다. 걱정할 것이 없다. ‘의외성’과 ‘우연성’이 도울 것이다. 그냥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우연성’은 용기를 준다.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고 미워하다가 우연히 죽어 가기도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우연성’은 어디든지 있고 모든 것에 잠재한다. ‘우연성’이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기 임의로 되는 것이 없다. 이 세상에 ‘확실성’은 없다.

‘불확실성’이 또 다른 ‘우연성’을 만들어서 어떤 다른 형이상학을 만들거나 인간을 몰락하게 만든다. 광호는 이제 ‘라스콜리니꼬프’의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를 흉내 내며 그의 사상을 믿으려고 했다.

그는 이제 정상인들이 보면 미쳤지만 그게 사실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죽여도 그것은 확실성에 의한 것이 아니고 ‘우연성’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단지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다.

‘용기’가 있어야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보면 ‘우연성과 용기,’ 그것이 살인을 하는 모체라고 보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상규를 돕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되고 그것이 가족을 돕는 일이라는 역설을 만들어 냈다.

‘우연성의 살인’은 다른 사람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고 넓게 보면 나와도 관계가 없다. 그렇다. ‘라스콜리니꼬프’처럼 내가 살인을 해도 상규나 가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그가 한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광호의 생각은 점점 더 불확실한 우연성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라는 결론에 빠졌다. 악어는 베니스의 상인처럼 사람의 몸을 잘라서 파는 인간이다. 그는 죽어서 마땅하다.

그에 비하면 고리대금업자는 아무 것도 아니고 너무 선량하다. 그런데 그 노파는 죽었다. 현대판 베니스 상인은 죽어 마땅하다. 광호가 죽였던 선생님도 우연성에 의해서 죽었다. <죄와 벌>을 읽고 독후감을 쓰지 않는 것도 아주 잘한 일이다. 어린 나이에 그것을 미리 알았던 것에 스스로 탄복했다. 명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만들어진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네는 잘 몰라서 그래, 좋은 작품은 일정한 설계도가 있어야 하지,”
“설계도요, 그것보다는 우연성이 우선합니다.”
우연성은 요행을 말하는 것이고 요행은 엉뚱한 공상을 만들어서 결국은 파멸에 이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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