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광복 이후 사회상 변화 엄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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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광복 이후 사회상 변화 엄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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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12,928배 늘어, 화폐가치 65년 1만원 지난해 351원

 
   
  ^^^▲ 지표로 알아본 사회 각 부문 변화상^^^  
 

제 61주년 8.15를 맞이해 통계청은 해방 이후 2005년까지의 각종 통계를 14일 발표했다.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우리들의 노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 무역 국제수지, 외환 : 1948년 우리나라 수출액은 2천2백만 달러였으나 2005년도 수출액은 2천844억 2천만 달러로 당시에 비해 무려 12,928배나 늘어났다.

1960년 수출상품 구조는 1차 산품이 45.4%, 경공업 제품 45.4%로 노동 집약적저가 상품이 주류를 이뤘으나, 점진적으로 중화학 제품이 증가해 2005년도 총 수출액 중 89.6%가 자동차, 반도체, 선박, IT제품 등 중화학 제품이었으며, 그 중 IT제품 비중이 2000년 39.5%, 지난해에는 32.4%를 차지, 첨단산업 제품 수출 국가로 한국이 변모했다. 이로써 세계 교역의 변두리 국가에서 중심국가로 위치가 변화 됐다.

수출품목수는 1960년 712개에서 2005년 8,486개로 12배, 수입품목수는 1,439개 품목에서 10,014개로 7배 증가했으며, 수출 대상국은 59개국에서 227개국, 수입상대국은 50개국에서 222개국으로 증가,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와 교역을 하고 있게 됐다..

또,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에 수출 0.03%, 수입 0.27%가 지난해에는 수출비중은 2.8%로 90배, 수입비중은 2.4%로 9배 높아져 세계 10위권의 교역 중심국으로 부상됐다.

▲ 국토면적 : 우리나라 국토면적은 1949년 9만3,634㎢가 간척사업 등을 통해 국토면적이 확장돼 지난해 에는 9만9,646㎢로 6.4% 증가했으며, 그 중 농경지면적은 1960년대 후반까지 증가했으나 점차 감소해 현재는 1950년대 수준으로 줄었다. 또 대지면적은 2,533㎢로 전체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1960년 1,205㎢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 인구 변화 : 총인구는 1949년 2,018만9천명 1967년에 3천만, 1984년에 4천만을 넘어섰으며, 2005년에는 4,829만4천명으로 1949년에 비해 약 2.4배가 증가됐고, 65세 이상 노년인구비율은 1955년 3.3%에서 2005년 9.1%로 3배 가까이 높아진 반면, 유소년은 41.2%에서 19.1%로 절반이하로 떨어져 고령화 및 저출산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취업자 중 여성 비율 증가 :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가 뚜렷해졌다. 여성의 취업자 구성비는 1963년 34.8%가 2005년 41.7%로 6.9%p 증가한 반면 남성은 65.2%에서 58.3%로 6.9%p 감소되는 등 여성 활동이 두드려졌다.

또, 1963년에 농림어업 63.0%, 광공업부문 8.7%,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 28.3%로 후진 농업국 형태의 취업구조에서 2005년에는 7.9%, 18.6%, 73.5%로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업 비중이 크게 높아져 불과 30~40년 만에 선진국 형태의 취업구조로 변했다.

▲ 화폐가치 크게 하락 : 1965년에 비해 소비자물가는 28.5배, 생산자 물가는 16.6배 상승했으며,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965년 당시 1만원의 화폐가치는 2005년 현재 소비자물가로는 351원, 생산자물가로는 601원으로 하락됐다. 상품가치로 환산할 경우 1965년 당시 1만원 가치의 상품을 2005년 소비자물가 기준의 상품가치로 환산하면 약 28만원 가치의 상품에 해당된다.

▲ 제조업체수 변화 : 제조업체수는 1955년 8,600개에서 2004년 11만3,300개로 13.2배 증가됐으며, 종사자수는 1955년 22만1천명에서 2004년 279만8천명으로 약 50년간 12.7배로 증가했다. 특히 조립금속제품, 기계 및 장비제조업 종사자는 1955년 1만9천명에서 2004년 147만8천명으로 78배나 증가됐다.

또, 섬유ㆍ의복 및 가죽제품제조업 종사자는 1955년 9만3천명에서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증가했으나, 1980~90년대 이후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급속히 커지면서 점차 감소해 2004년 32만1천명으로 3.4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 에너지 도입량및 액수 변화 : 1964년 원유도입량은 약 584만 배럴, 원유도입 비용은 1,300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중화학공업 등 에너지 과소비적 산업구조와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 등으로 원유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2004년에는 도입량 8억2,579만 배럴, 도입비용은 약 299억 달러로 각각 142배, 2,298배로 증가했다. 에너지도입단가는 1964년 배럴당 2.2달러였으나 2004년 36.2달러로 상승 경제성장의 크나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전력생산 : 총발전량은 1948년 694기가와트시(GWh)에서 2005년 36만4,639GWh로 525배 증가했고,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05년 6,883킬로와트시(KWh)로 1960년 46KWh에 비해 150배 증가했다.

종류별로 보면 1948년에는 수력이 34.9%, 화력이 23.8%였으나, 2005년 현재 수력 1.4%, 화력 58.3%, 원자력 40.3%로 화력과 원자력이 주된 발전 형태로 변모했고, 원자력 발전소는 1978년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현재 울진원전6호기까지 총 20기의 원전이 가동되며 14만6,800GWh를 생산하여 총발전량의 40.3%를 차지하며 점차 비중이 증대되고 있다.

▲ 주택 보급률 : 주택보급률은 1965년 81.3%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 감소, 1990년대 이후 수도권 신도시 건설 등 아파트 건축이 크게 늘면서 점차 증가하여 현재는 주택보급률 100% 이상을 달성했다. 1980년 이전까지는 단독주택 건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아파트 건설이 주를 이루면서 2004년 현재 주택건설의 87.3%를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 자가용 보유대수 : 자동차 등록 대수는 1955년 1만8천여 대였다. 그 중 승용차는 7천여 대에 불과했으나, 1990년대 후반기에 1천만대 시대를 열었으며, 2005년에는 1,500만대 시대에 진입했다. 또, 자가용은 1970년에는 100가구당 1대 가량 보유했으나, 2005년에는 10가구 중 9가구이상이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자가용 1,460만대 중 승용차는 1,080만대로 73.9%를 차지했다.

▲ 항공 여객 운송 : 항공여객 운송은 1966년에 국내선은 19만 명, 국제선은 13만 명이었으나, 2004년 국내선은 1,889만 명, 국제선은 2,693만 명으로 각각 98배, 206배로 증가했다.
▲ 해운 화물 운송 : 1966년~2004년 해운화물 운송량은 국내선은 230만 톤에서 1억1,560만 톤으로, 국제선은 840만 톤에서 7억4,360만 톤으로 각각 50배와 88배 증가했다.

▲ 전화, 이동 전화 서비스 : 1949년 유선전화 가입자는 천 명당 겨우 2명 정도였으나, 2004년에는 2명당 1명이 가입하였고, 특히 2000년대부터는 무선이동전화가 일반화되어 2004년 이동전화 가입자는 천 명당 758명으로 성인이면 대부분 셀 폰이나 PCS폰을 휴대하고 있다.

▲ 인터넷 : 인터넷서비스는 1982년 서울대학교와 구미의 KIET(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전신)간의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을 시작으로 1994년 상용화 이후 전사회적 정보화혁명을 타고 인터넷 이용자와 시장규모가 급격히 증가했고, 1999년에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되어 2004년 현재 천 명당 235명이 가입됐다.

▲ 학력 수준 : 1947년에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가 95.0%, 대졸이상은 0.6%에 불과했다. 2005년 현재는 초등학교 졸업이하는 19.1%, 중졸 11.2%, 고졸 38.3%, 대졸이상이 31.4%로 국민들의 학력수준이 크게 높아졌으며, 여성의 학력 구성비는 1947년 초등학교 졸업이하가 97.9%, 대졸이상은 0.1%였으나, 2005년 현재 여성의 25.4%가 대학 이상 졸업자로서 여성의 능력과 사회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 GDP대비 연구개발 투자 : 1967년 GDP대비 연구개발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0.38%(48억원)에 불과했다. 2004년에는 GDP대비 2.85%(22조1,853억 원)로 1967년 투자비(比)의 7.5배로 늘어났고, 연구개발비 부담은 1967년에 정부가 87.0%를 부담했으나, 점차 민간 부담이 증가해 1980년에는 정부와 민간이 거의 반반을 부담하게 됐으며, 2004년에는 정부가 24.5%, 민간기업이 75.0%분담하여 연구개발투자가 민간기업 위주로 바뀌었다.

▲ 보건 :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 병ㆍ의원수는 1953년 4,306개에서 2004년 47,378개로 11배 규모로 늘어났으며, 의사수는 6,000여명에서 10만7,000여명으로 18배 정도 증가했고, 의사 1인당 인구수는 1953년 3,347명에서 2004년 468명으로 약 1/7로 감소하여 의료서비스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 신체발달 : 1965년 17세 남자의 신장은 163.7cm, 여자는 156.9cm이었는데 2004년 남자는 173.6cm, 여자는 161.1cm로 각각 9.9cm, 4.2cm 커졌으며, 체중은 남자 54.3kg, 여자 51.0kg에서 남자 68.1kg, 여자55.8kg으로 각각 13.8kg, 4.8kg이 증가했다.

▲ 해외여행자수 : 1960년 8천여 명에 불과하였으나 2005년 950여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외국인 입국자의 약 2배 규모이다. 해외여행으로 소비하는 1인당 금액은 1960년 582달러에서 2005년 1,612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으며, 외국인 1인이 국내에서 소비하는 1,093달러의 1.5배를 쓰고 있어 생각해 볼 문제이다. 국제간 여행수지는 1973년~1990년까지 다소 흑자를 기록했으나 1991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05년에는 100억달러 가까이 적자를 기록했다.

▲ 자연재해 및 화재 : 풍수해의 피해는 1958년 사망자 161명 피해액 263억 원으로 해마다 피해규모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힌 태풍은 1959년 영동과 영호남을 덮친 “사라호”로 사망ㆍ실종 849명, 이재민 37만여 명이었다.

1958년 화재발생건수 1,547건, 사망 112명, 2005년에는 32,340건에 사망 505명으로 발생건수는 21배, 사망자 수는 4.5배로 증가했으며, 광복이후 최대의 피해를 낸 화재는 1971년 12월 25일 발생한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로 사망 163명, 부상 63명 등 226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산불 발생은 1953년 225건에 2,748ha의 임야를 태웠으며, 2004년에는 544건에 1,588ha의 임야가 소실됐으며, 광복이후 최대의 산불은 1999년 4월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로 임야 30,000여ha, 주택 70채, 가축 335마리 등 큰 피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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