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더위 먹었다. 잉꼬부부(33)
스크롤 이동 상태바
집사람이 더위 먹었다. 잉꼬부부(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은 '버터'가 아닌 된장아줌마

아침 7시 20분 “따르릉” 탁상시계소리에 기상한다. 옆, 저팔계 남편은 아직도 꿈나라. 된장아줌마의 하루가 시작되는 거다. 이 쯤에서 일어나야 8시 반까지 딸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 졸린 눈으로 주방으로 향한다. 콘플레이크, 저지방우유... 대강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된장아줌마는 황신혜 같은 몸매를 위해 일반우유는 마시지 않는다. 맛이 없더라도 저지방 우유를 마셔줘야 한다. 남편, 딸아이는 맛없다고 맨 날 투덜대지만... 식사가 끝나면 남편과 딸아이는 집을 나선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로 돌리고 그 동안에 칫솔을 문다.

얼굴에 물을 묻히고 피부 샵서 구입한 수제 클린징폼으로 거품을 낸다. 군데군데 주름은 보이지만 보톡스 탓에 피부는 제법 탱탱, “내가 봐도 난 우아해” 꼼꼼하게 거품을 내주고 충분히 씻고 톡톡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제거해야 한다. 본격적인 메이크업을 시작한다.

“나는 미시여서 짙은 화장은 안 할 거야” 그레이스하고 화사하게 마무리 한다. 오늘따라 좀 어려보이는 것 같다. 랑콤 마스카라로 눈썹 올리느라 좀 늦었다. 옷장을 열고 남편카드로 그은 루이뷔통 멀티스피디30을 꺼내 거울에 모습을 비춰본다. 시슬리 향수를 귀밑에 뿌린 다음, 지난주에 구입한 마놀로블라닉 구두를 발에 끼고 자동차 키를 왼손에 들고 현관문을 잠근다. 몇 걸음 움직이다 뒤 돌아서 다시 확인한다.

된장 아줌마의 한가한 백화점쇼핑 출발모습이지만 딴엔 우아한 미시족의 몸짓으로 알고 있다. 신호대기하면서 화장은 잘 됐나 꼭 체크한다. 자외선이 강하니까 샤넬 선글라스는 꼭 써줘야 한다. 운전하면서 선글라스와 장갑을 하지 않는 것은 된장 아줌마 스스로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백미러에 비친 얼굴을 볼 때마다 신호대기시간은 항상 빨리 지나간다.

예상보다 늦게 백화점에 도착했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럭셔리하고 우아해서 마치 파리지엔이 된 듯 착각한다. 동네 아줌마들이 아직 뵈질 않는다. 저지방 아침식사 한 된장아줌마는 출출해지기 시작한다. 핸드폰을 꺼내 큰소리로 통화하고 너 댓이 곧 만나 수다 떨며 발걸음을 옮긴다.

근처 와코루 매장 직원에게 레이스가 새끈한 상하세트 가격을 묻는다.

“23만원입니다. 손님”

“생각보다 디자인이 별루네...”

“자기에겐 딱이야”

주로 요딴 멘트로 쇼핑을 한다. 높은 하이힐 굽으로 두어 시간을 보냈으니 발바닥이 따갑다. 밥을 먹어야 한다. 된장아줌마들 끼리 쇼핑이후 공통되는 선택의 시간이다.

'뭘 먹을까...'

푸트코트 따위에서 밥 먹는 일은 없다. 그 시끄럽고 좁은 곳에서 먹고 있는 서민에게 한심한 눈길을 던지며 백화점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또 다른 된장 아줌마가 눈에 띈다.

“뭐 좋은 것 사셨어요?”

“오늘은 뭐 별로에요. 지배인한테 부탁해 논게 아직 도착....”

산 것은 없지만 뭐가 있는 척은 해줘야 하는 거다. 지난달은 남편의 월급 반을 쇼핑으로 날려버려 오늘은 그냥 아이쇼핑이지만 그냥 뽐내 보는 거다. 셋이 걸친 것을 합치면 승용차 한대 값이다. 요따위 짓거리를 알 리 없는 남편들 참 불쌍하다.

음식을 주문한다. 살 찔 걸 걱정하면서도 오늘의 코스요리는 된장 아줌마의 입맛에 딱 이다. 자신의 교양과 위치에 어울리는 음식이라 생각하면서 잘도 쳐 먹는다. 쳐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어제 드라마 내용이야기, 아니면 남자이야기다.

주로 비와 송일국, 다이엘 헤니를 좋아한다느니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모두 다니엘 품에서 낮잠이라도 들고 싶다고 깔깔거린다. 데니스 오를 다이엘 헤니라고 우기기도 한다.

“아파트 값이 떨어져서 큰일이야, 옆 동 임대아파트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돈 얘기가 시작된다. 된장아줌마들 열 받은 목소리는 맨 끝 테이블에 까지 들린다. 32평에 사는 그녀들은 29평 사람들까지 싸잡아 무시한다. 그러면서도 아파트에서 배회하는 길 잃은 고양이들이 불쌍하다고 골 빈 소리를 해댄다. 샤넬 콤팩트를 꺼내 이 쑤시니 오후 4시다. 수다 떨다 보면 시간은 총알이다.

귀가 할 시간이 된 거다.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비엠다블 아줌마는 좋은 안주감이다. 부러움 반, 시 셈 반으로 그녀를 욕한다. 오너가 아니라 운전사인줄 알았다느니, 얼굴 전체를 성형한 것이라느니 그 딴 걸 트집 잡는다. 언젠가는 ‘비’같은 섹시한 운전사를 곁에 둘 것이라는 망상도 하면서 순간 차를 바꿔주지 않는 남편을 원망도 해본다. 아줌마들과 헤어지고 운전을 한다. 버튼을 눌러 음악을 듣는다. 주로 듣는 것은 뽕짝이지만 여럿 있을 때는 팝송이다. 팝송은 인격이요, 교양이다.

아파트 단지로 향한다. 된장 아줌마는 ‘비’같이 섹시한 몸매의 운전기사가 차문을 열어주고 어깨를 감싸며 배웅해주는 상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거울을 보니 보톡스 끼가 조금 빠져나간 것 같아 이번 주 안으로 압구정 성형외과에 꼭 다시 가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금방이라도 황신혜 옆모습이 남의 일이 아닐 것만 같아 행복해한다.

어느새 된장아줌마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다.

퇴근한 남편,

우편함에서 가져온 카드대금청구서, 각종고지서 꾸러미를 힘없이 펼치며 고개를 떨군다.

“여보~ 혜경이 과외비 지난 달 치는 선생님한테 해결해 줬소?”

순간, 멋진 ‘다니엘 헤이’도 섹스가이 ‘비’도 없었고 폭염에 지친 남편이 있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