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장의 목회자’ 안호원 목사
[인터뷰] ‘현장의 목회자’ 안호원 목사
  • 이승일 기자
  • 승인 2018.05.01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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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복음 전한다

▲ 안호원 목사의 지역사회 사랑은 남다르다. ⓒ뉴스타운

안호원 목사가 아버지들의 노래 모임인 아버지 합창단 공연에서 중후한 목소리를 뽐냈다.

지난 4월 19일 저녁 ‘영등포문화원 아버지 합창단 제9회 정기공연이 관객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등포 구민회관 아트홀에서 열렸다.

1년 동안 갈고 닦은 아버지들의 중후한 목소리를 담은 합창의 선율이 짙어가는 4월 밤 “산에서 희망을 노래하다”가 울려 퍼졌다.

특히 이번 합창공연에는 베이스파트장이기도 한 안호원 목사(성지교회)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가 2부에 영상으로 펼쳐지면서 관객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경희대학교 총 동문목회자회 회장이기도 한 안호원 목사는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패널, 교수, 영등포예술인총 연합회 수석부이사장 등을 두루두루 섭렵하며, 여의도 봄꽃 축제, 남이섬 음악제, 단오제, 청담대 국화 축제, 대한은퇴자협회 축제, 고양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초청 ‘아듀 2015 라스트 콘서트 협연, 춘희 오페라 출연 등 40회 이상 초청공연에 출연했다.

영등포문화원 아버지합창단 단원은 5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45명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절반이 기독교인이다.

2013년에 입단한 안 목사는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모여서 세파에 찌들고 지친 목을 감성으로 축인다는 게 각박한 삶에 얼마나 시원한 청량감을 주는지 모른다” 며 “일단은 우리에게 목표와 목적이 있으니 희망이 생겼잖아요. 우리는 음악을 하는 전공자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아버지 합창단의 합창이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메아리로 울려 퍼져 이 사회가 따뜻한 사랑의 열기로 훈훈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고 밝히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합창 이외도 안 목사는 소외 계층 등 불우이웃과 개척교회에 무료 배식 등 사회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최근 수도권 7개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에 쌀(40K),가래떡, 소고기 등 일용품을 각각 전달했다. 이외에도 관내 어려운 이웃과 경비원을 찾아 명절 선물 및 격려금을 전달하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안 목사는 모텔청소를 하면서 재원을 마련, 이 같은 봉사활동을 48년째 하고 있다. 왜 목사가 모텔 청소원이 되어야만 했을까? 왜 자신도 어렵게 살면서 개척교회 후원에 앞장을 서야만 했을까? 성지교회 안호원 목사의 삶은 그랬다.

공무원이었던, 인권운동가였던, 언론인이었던 안호원 목사는 자신 스스로를 내려놓고 늘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 자신은 18년, 6년 이상 된 헤져서 꿰맨 구두를 신으면서도 개척교회 목사들에게는 구두를 사주기도 한다. 안 목사의 구두는 거의 3만 원대의 군용 구두다.

또 혼자서는 1000원짜리 ‘사발면’으로 때우는 때가 많다. 이유는 남을 돕는 일을 하다 보니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호원 목사가 모텔 청소를 하면서 얻은 수익으로 개척교회를 도운 일은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어쩌면 목사라는 직분을 가졌기에 더욱 하기 힘든 일이었음에도 안 목사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목사라는 직분은 높고 낮음의 직분이 아니라 세상 속에 뛰어들어 믿지 않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힘들고 지쳐서 누군가 등을 두드려 줘야 할 곳에 있는 사람까지도 어우르는 자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자기 스스로도 여유롭지 않지만, 늘 그들과 함께 해왔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목회자가 하는 일이죠. 목회자이니 교회 안에서 설교만 하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 그 자체 역시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 안의 목회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회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안 목사는 매주 목요일이면 영등포 사거리에 있는 장애자센터에 가서 밥을 퍼주는 봉사활동을 한다. 더불어 독거노인들이나 중증장애인 가정에도 방문해서 직접 청소도 해주고, 냉장고나 세탁기 등을 교체해주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매년 관내 어르신들을 초청, 식사를 대접하며 위안 공연도 하고 있다. 장애인들이나 노숙자들, 그리고 독거노인들에게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지만 안 목사의 첫 번째 목적은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먹고, 함께 마시며, 함께 웃고, 함께 운다. 주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나누는 사랑을 느끼게 한다. 그런 안 목사에게 그들은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경계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세상도 싫고, 교회도 싫고, 목사도 싫다고 하던 사람들이 스스로 예수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믿음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것이 안 목사가 지향하는 복음의 전파다. 그런데 그런 안 목사의 모습을 기이히 여기는 사람이 많다. 목사가 그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우리는 것을 보면 ‘목사가?’라는 의문점을 보이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안 목사에게는 이런 일들은 별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절대 가식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춥고 배고픈데, 돈도 없는데, 그런 그들에게 복음만을 전한다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은 높이에 앉아서 막걸리 한잔을 기우리며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함께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물론 이상한 눈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에게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만 뿌리가 깊으면 그 나무는 뽑히지 않습니다. 뿌리가 튼튼하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라고 말 합니다. 따라서 내 중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겉모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중심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이 모든 것들이 안 목사가 언론인 시절 인권 운동을 하면서 통달한 ‘소통의 길’이다. 안 목사 스스로도 생활고로 덕소에 있는 생산직 공장에서(공돌이)근무한 적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갔는데, 그곳에서 생산직 노동자가 인격적인 대우를 못 받고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는 모습을 체험했고 그것이 늘 안타까웠던 안 목사는 노동운동에 가담했고, 결국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아픔도 겪었다.

또 전두환 정권시기에는 언론노조 부위원장을 맡는 등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안 목사는 ‘소통’이라는 방향을 배웠다. 가난하다고, 힘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갔다.

그만큼 안호원 목사는 사회참여에 열심이다. 48년 이상을 이런 마음으로 묵묵히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는데, 특이한 것은 안 목사 스스로 노동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손을 벌리려 하지도 않고, 모텔 청소 등 자신이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안 목사가 자신의 손으로 번 돈을 갖고 다른 이들을 돕는 가장 큰 이유는 ‘섬김’이라는 단어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목회자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제발 말로만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다.

목회자는 직책의 구분일 뿐 상위 직책이 아닐 뿐 더러 섬기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몸서 체험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앞에서 말한 ‘모텔 청소 노동’ 역시 평소 알고 지내던 개척교회를 돕기 위함이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개척교회를 돕고 있다. 90년대 중반에는 3년 동안 필리핀 선교 지를 도우며 공원에 놀이기구(철봉 등 5개)를 설치해주기도 하고, 우즈베키스탄 교회에 의류를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본인 스스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안 목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준 것을 전달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겸손에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안 목사 역시 지난 2013년 성지교회를 개척한 목회자다. ‘성지교회(聖地敎會)’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거룩한 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안호원 목사는 ‘이 세상 거룩한 땅이 아닌 곳이 어디 있는가?’라며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안호원 목사는 다재다능한 면을 보였다. 미술 전공을 하다가 팔을 다쳐 1년 6개월 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엽서를 통해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시를 쓰게 됐고, 우연한 기회에 ‘병자삼인’ 등의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4월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춘희’라는 오페라에 단역(합창단)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등포 지역의 아버지 합창단에서도 활동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이밖에도 매주 목요일엔 장애자단체에서 급식봉사를 한다.

목회상담학박사이자 명예 교육학박사, 사회학박사, 문학박사이기도 한 안호원 목사는 30여 년 간 YTN 등 일간지(의학전문대기자)전문지 등에서 언론인으로 활동을 했다. 안호원 목사는 70세가 된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쉼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본인의 사명임을 잊은 적이 단 한시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사회 속에 뛰어들어 예수의 삶을 몸으로 전하고 있는 안호원 목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또 느끼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를 지낸 안호원 목사는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4학년 재학 중인 만학의 학구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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