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의 좌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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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의 좌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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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산업혁명과 엔지니어링 어프로치 - ⑥

 
   
  ^^^▲ 조국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농업식량안보를 위해 노력하신 박정희 대통령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인건비 상승과 환율인상의 악순환 고리

노임이 올라간다는 것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수출이 잘 안 된다는 뜻이다. 해결방법은 환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 환율을 올리면 그 즉시 수입품 값 즉 수입원료, 수입자재 및 부품 값, 기름 값, 전기 값 등이 오를 수밖에 없고, 이런 물건값이 오르면 국내 모든 제품 값이 일제히 오르게 된다.

환율인상분 만큼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덩달아 뛰어 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인플레 심리인데 우리나라는 특히 심하다. 그래서 결국에는 인건비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노임인상이 환율인상을 일으키고, 환율인상이 인건비를 올린다는 뜻이다(<아래 도표 참조>).

 

 
   
  ^^^^^^▲ 조국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농업식량안보를 위해 노력하신 박정희 대통령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환율조정으로 노임의 국제경쟁력을 강화

우선 환율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해 왔으나 1949년에 복수환율제도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는 공정환율과 일반환율이라는 두 가지 환율이 있게 됐다. 당시 미화 1달러당 공정환율은 450환, 일반환율은 900환이었다.

미국의 원조자금은 특별히 싸게 450환으로 환산했기 때문에 두 배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55년 8월 8일에 단일공정환율제로 바꾸었다. 500 : 1이었다.

1960년 2월 23일의 환율인상으로 1달러당 65원이 되었다.(註: 62년 6월 10일에 10환을 1원으로 하는 통화개혁이 단행되었다. 이하 통화개혁 후의 원화를 기준으로 환율조정을 설명하기로 한다).

61년에는 1월 1일에 100원으로 인상했고 한달 후인 2월 2일에는 130원으로 인상됐는데, 환율을 대폭 인상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노임은 60년에는 월 40.00달러였던 것이 61년에는 21.85달러로 낮아졌다(註: 1960년도 제조업 월당(月當) 급여액은 2,600원, 환율 65원으로 계산하면 2,600원÷65원=40.00 $. 1961년 월당 급여액은 2,840원, 환율 130원으로 계산한 월당 급여액은 21.85 $).

그런데 달러 환율을 인상하니 수입품의 가격도 올라가고 덩달아 물가도 치솟았다. 우리나라의 노임은 노무자의 최저생활비 정도밖에 안되었으니 노임도 뒤따라 올라갔다. 물가가 올라가면 노임도 올려 주어야 하고 노임이 올라가면 물가는 또 올라가는 악순환이 계속됐던 것이다. 노임은 62년에는 23.00달러, 63년에는 25.46달러로 계속 상승했다(註: <도표 5-9> 참조).

노임이 올라간다는 것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수출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되니, 그 해결방법은 또 다시 환율조정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1963년 외화보유고가 바닥이 나자, 정부는 수출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해 일대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1964년 5월 4일 우리나라의 환율을 국제경쟁가격 수준으로 인상해서 우리나라의 노임을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했던 것이다.

미화 1달러당 130원에서 255원으로 약 두 배로 껑충 올려놓았으니, 가히 혁명적인 조치였다. 이 해의 평균 월당 급여액은 4,010원이었으니, 그 해 연말의 환율 255원으로 계산하면 15.73달러로 뚝 떨어진 것이다. 이 노임은 우리나라로서는 최저치의 노임이 된다. 이때부터 비로소 우리나라는 달러로 환산해서 국제적으로 최저임금 국가가 된 것이다.

1964년은 우리나라에서 하반기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그 해 1억 달러 수출을 돌파하는 해였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환율을 대폭 인상해서 국제 경쟁력 있는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한 점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사항을 <도표 5-9>로 설명한다. <도표 5-9>는 노임의 변동추세이다.

 

 
   
  ^^^^^^^^^▲ 조국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농업식량안보를 위해 노력하신 박정희 대통령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위의 보라색 선 1)은 원화로 표시된 연평균 월간 급여액을 제1차 5개년계획 작성의 기준년도인 1960년 환율(65원/1달러)로 환산한 선인데, 우리나라 노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환율을 (65원/1달러)로 고정시켰더라면 64년도의 월간 급여액은 61.69달러, 65년도는 72달러라는 엄청난 액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환율을 계속 인상했는데, 그 결과 달러로 환산한 월간 급여액은 밑의 선으로 표시된 금액으로 조종돼 나갔던 것이다. 환율을 인상하지 않았던들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은 전혀 없었을 것이며, 수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노임의 국제비교

1965년 이후 우리나라의 노임 수준을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과 비교해 본다.

 

 
   
  ^^^^^^^^^^^^▲ 조국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농업식량안보를 위해 노력하신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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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 5-10>은 각국별 제조업 종사자의 시간당 노임표이다.

66년도를 보면 일본의 노임이 제일 높아서 56센트이고 그 다음이 필리핀으로 22센트이다. 태국이 20센트, 대만이 19센트이고 우리나라의 노임은 10센트이다. 우리나라의 노임에 비해 일본이 5.6배, 필리핀이 2.2배, 태국이 2배, 대만이 1.9배 높다. 우리나라의 노임이 무척 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인력의 국제경쟁력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이들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조업에 뒤져 있었고 수출에 있어서도 후발국이어서, 이들과 경쟁하자면 싼 노임으로 대적하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임이 저렴한 시대는 곧 끝이 났다.

정부는 1964년 5월에 환율을 획기적으로 인상, 달러당 255원으로 정하고 실세에 의한 변동환율제를 채택했으나 환율은 계속 인상해서 1965년 6월 30일에는 270원까지 올라갔다.

정부(장기영 부총리)는 환율을 270원선에서 고정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 결과 1965년 말에는 270.36원 1966년 말에는 270.36원, 1967년 말에는 268.12원으로 억제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노임은 <도표 5-10>에서 보는바와 같이 1966년도의 시간당 10센트에서 1967년도에는 12센트로 상승, 1년 사이에 20%나 상승했다. 같은 해 일본은 12.5%, 필리핀이 4.5%, 태국이 5%, 대만은 10.5%가 올라갔으니 우리나라의 노임 인상률이 두드러지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상태로 노임이 올라가서는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1968년에는 환율 270원 고수정책을 중지하고 ―1968년 말 기준― 281.10원으로 4.8% 인상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환율인상으로는 효력이 없었다.

1968년도의 연평균 노임은 12센트에서 15센트로 올라갔다. 무려 25%의 상승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 후 계속돼 나갔다.

우리나라의 환율은 1969년 말에는 303.70원으로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시간당 노임은 15센트에서 18.5센트로 23.3%가 인상했다. 1970년에는 환율을 315.90원으로 인상했으나, 노임은 22.5센트로 21.6%나 상승했다.

환율을 매해 대폭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로 환산한 노임이 이처럼 급격히 올라갔으니, 원화로 지급되는 임금이 얼마나 급격히 높아졌는가를 추측할 수 있다. 진정 노임 인플레의 시대였던 것이다.

 

 
   
     
 

다음에는 물가(쌀값 포함), 노임, 환율이 안정되어 있는 대만, 일본 등의 사정을 알아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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