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사무실은 상도동에 위치해 있으나 연습은 주로 어린이회관 연극교실을 이용했다. 현재 그 상도동 사무실은 문구점이 들어서 있었고 단장님도 이사를 여러번 다니는 형편이었다.
6개월 만에 연락을 하고 찾아뵈었는데 한 지붕아래서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인터넷신문을 통해 받는 원고료는 인형극 공연으로 받은 액수와 같았으나 공연활동을 하면서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극단이 해체되면서 수입은 절반가량 축소 된 셈이었다.
새해 들어 혹시나 한 생각은 역시나 가 되었다.
인형극을 하면서 그것을 기사로 올리기도 했으며 공연 활동 중 초등학생들의 호텔 생일잔치를 기사화 하기도 했다.
극심한 불황으로 끝내 극단은 해체된 이후 절망이 극을 넘었고 우울한 연말을 맞으며 인터넷신문에 글을 쓰고 있던 무렵이었다.
이즈음 교회청년부 결혼식이 연거푸 있었는데 12월에만 3주 연속 결혼식이 있었고 빈번한 축의금 전달은 고사하고 축하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로 그때의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터넷신문 시민기자로 글을 쓰면서 받는 원고료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었다.
적성에 맞지 않았거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그만 둔 것이 아닌 한창 잘 나가던 나의 인형극 생활이 끝났으니 그 절망감은 상상을 넘어 공상을 초월한 정도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누구 말대로 기존의 대형극단에 스카웃 되려나 하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해 타 극단을 기웃거리던 중 이전에 찾아가던 광주 극단을 가 보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극단의 사정을 살펴보았는데 해체는 커녕 그때보다 더 부흥되어있었다.
공연 외에도 활동분야가 상당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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