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흑백사진으로 살아있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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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흑백사진으로 살아있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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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이름> 흑백사진

 
   
  ^^^▲ 전우와 함께이종찬
ⓒ 아버님 군대시절 ^^^
 
 

"오늘 산소에 나무 좀 심을라고 농장에 갔더만 나무가 하나도 없어. 지난 주에만 해도 동이감나무 묘목이 제법 있었는데..."
"아니, 그렇게 나무가 없어요?"
"단감나무하고 매실나무 같은 것만 잔뜩 있더라니깐"
"내년에는 아예 1-2주 전에 미리 사 두어야 하겠네요"
"동이감나무도 좋지만 잣나무도 괜찮아요"

지난 일요일, 한식날에는 형제들과 함께 창원 동읍 석산리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갔다. 형님의 계획으로는 한식날에 맞추어 한창 돋아나는 쑥과 잡풀도 제거하고, 그 참에 과실수 몇 그루도 심으려고 했던 것 같았다. 우리가 어릴적 많이 따먹었던, 굵직한 감이 달리는 그 동이감나무(둥시)를 말이다.

나 역시 기왕 부모님 산소 주변에 나무를 심으려면 요즈음 흔한 그런 나무보다는 우리 형제들의 어릴 적 추억이 담겨 있는 동이감나무와 같은 그런 나무가 훨씬 정겨울 것만 같았다. 그랬다. 지금 부모님의 모습은 비록 볼록한 무덤으로 이렇게 남아 있지만 우리들 기억 속의 부모님은 늘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아니한가.

주남저수지가 바라다 보이는 어머니 산소, 아니, 이제는 지난 해 가을에 돌아가신 아버지마저 어머니 곁에 나란히 묻혔으니, 이제는 부모님 산소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입버릇처럼 어머니 산소라고 부르고 있으니,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그 고지로 탈환할 때에는 정말 죽은 목숨이었다카이. 산 위에서 수류탄이 돌멩이 굴러 내려오듯이 줄줄이 내려오는데, 정말 겁나데. 그라이 우짤끼고. 급한 김에 수류탄을 발로 차다가 다리가 날라가기도 하고, 손으로 집어 던지다가 손목이 날라가기도 하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카이"

 

 
   
  ^^^▲ 육군군의학교 시절세째줄 오른쪽 두 번째가 아버지
ⓒ 이종찬^^^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아버지의 전쟁이야기... 그래. 그 전쟁이 얼마나 몸서리 칠 정도였으면, 술잔만 기울이면 으레 전쟁이야기로 시작해서 전쟁이야기로 마무리 하셨을까. 또 오죽했으면 치매가 걸린 상태에서도 가끔 장농 뒤에 숨어 있다가 누가 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라고 하셨을까.

하지만 이제는 그 무거운 이승의 전쟁을 훌훌 벗어던지고 대자연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무덤에서도 어김없이 돋아나는 쑥과 잡풀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흐르는 세월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아버지의 허벅지에 박힌 그 총알보다 더 빠른 세월이 무상하기만 하다.

"어머니보다 꼭 11년을 더 사셨구먼"
"11년을 더 사셨으면 뭘해.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에 5년 정도는 밤낮 술로 보내셨고, 그 이후에는 치매에 걸리고 말았으니,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긴, 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게다가 창원공단으로 인해 지을 농사도 없어졌지, 고향집마저도 헐렸지, 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용술이 아재마저도 먼저 돌아가셨지, 전쟁에 대한 휴유증은 그대로 남아 있지..."

 

 
   
  ^^^▲ 한국전쟁 당시의 부모님
ⓒ 이종찬^^^
 
 

그랬다. 아버지의 전쟁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 참담한 전쟁터에서 겨우 살아나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 앞에는 또다른 전쟁, 당장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내야 하는 삶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보면 그 당시를 겪어낸 이 땅의 아버지들은 죽는 그날까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다가 가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 전쟁이 아버지 세대에서 끝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전쟁은 아버지 세대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께서 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그 전쟁이 아버지의 바램처럼 그렇게 끝나지 않고, 오늘도 우리나라의 반대편에서 처절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형님! 생각난 김에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정리 좀 합시다"
"사진이 제대로 남아 있을란가 모르것다"
"지난 번 설날에 보니까, 6.25 때 찍은 사진이 제법 있던데요. 근데 그 전쟁 와중에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아버지께서 의무하사였으니까 가능했겠지"

그날, 나는 형님댁으로 가서 앨범을 몽땅 다 꺼내놓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찾았다. 하지만 우리가 어릴 적 보았던 그 사진들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국전쟁 와중에 찍은 아버지 사진이 몇 장 있었다. 물론 어머니의 처녀시절 사진도 서너 장 찾아냈다.

명함 반토막 만한 크기의 흑백사진 속에 계시는 아버지는 지금의 우리 형제들보다 훨씬 젊은 나이였다. 여기저기 구겨지고, 빛이 바래지기는 했지만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이 몇 장 남아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몰랐다. 그 중 어떤 사진은 한때 흑백사진을 칼라로 만들 수 있다며 거리에서 팔던 그 물감이 칠해진 사진도 있었다.

"이제 이 사진들을 스캔 받아놓으면 더 이상 바래지는 일은 없겠지? 그리고 컴퓨터가 없어지지 않는 한 영구히 보관될 거 아냐?"
"그래도 원본은 잘 보관해 놓아야 되겠지요"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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