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득의 시, 말목에서 -
보한재(保閑齋)는 신숙주(申叔舟 1417-75)의 여러 호(號) 중에 하나이다.
신숙주는 일찍이 성삼문과 함께 어린 단종을 잘 보살펴달라는 문종의 부탁을 받았으나, 그는 돌이켜 수양대군의 거사를 도왔다. 보한재는 난세에 살아남아 그의 재주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조의 찬탈 이후 두 사람의 길은 찢어진 우정처럼 서로 등지고 갈라섰다.
보한재는 그의 능력 그대로 가파르게 출세했다. 그는 같은 정1품(正一品) 관품(官品)이지만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마침내 46세(세조 8년)에 왕 아래 최고위 관직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문과(文科)의 을과(乙科)로 급제한 후 정8품에서 시작하여 23년 만의 경사였다. 그뿐 아니라 55세(성종 2년)에 남들은 한번도 어려운 영의정에 또 다시 오르는 영광까지 안았다.
보한재는 결과적으로 부귀영화의 극치를 누린 셈이다. 이런 모습을 두고, 사람들은 두고두고 주군에 대한 변절과 친구에 대한 배신으로 그를 단죄했다. 녹두 나물을 보고 굳이 “숙주나물”이라 불렀고, 이것을 만두피 속에 가두어넣고 삶아서 씹어 먹었다. 여기에는 선망의 시샘까지 가세되어 있다.
세조가 보한재의 이러한 마음고생을 달랬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세조가 영의정 신숙주와 새로 우의정으로 발탁된 구치관을 술자리에 불렀다고 한다. 오늘 내가 경들에게 물을 터인데 그릇 대답하면 벌을 사양하지 못 할지어다, 하며 세조가 "신정승" 또는 "구정승" 하며 번갈아 부르면서 커다란 잔으로 계속 벌주를 내렸다고 한다.
두 정승은 “新 아닌 申 인지, 舊 아닌 具 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대답하면 둘 다 틀렸다고 벌하고, 둘 다 대답하면 한 사람만 불렀다고 벌을 내렸다. 둘 다 대답하지 않자 임금이 부르는데 신하가 대답하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또 벌주를 내리면서 왕은 즐거워했다고 한다.
삼정승(三政丞)이 권력의 핵이라면, 문형(文衡)은 선비들에게 최고의 명예였다. 이 자리는 바로 대제학(大提學)인데 관품으로는 정2품에 해당되지만, 일단 종신직이었고, 무엇보다 추천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쳐야했기 때문이다. 의정부 7명(정1품 삼정승, 종1품 좌-우찬성, 정2품 좌-우참찬), 6조 판서 6명(정2품), 한성 판윤(정2품) 등 14명이 모여 왕께 품의해야 가능했다.
살아서 받는 봉군(封君)은 가문(家門)의 명예였다. 봉군은 국난(國難) 등을 극복한 공신(功臣)이나 왕가(王家)와의 혼인에 따라 책봉되었는데, 여기에는 왕실(王室)과의 인척(姻戚)이라는 배경과 함께 토지와 재물 등의 하사품이 따라왔다. 또 죽어서 받는 시호(諡號) 역시 가문의 명예였다. 사몰한 충신에게 왕은 주로 문(文) 또는 충(忠) 자(字)를 넣어 공(公)이라 불렀다.
보한재가 생전에 문형과 봉군에 이른 것은 물론이고, 58세에 죽어서 문충(文忠)이란 시호까지 받았다. 그의 네 형제와 여러 아들들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으며, 그들의 후손에서 정승과 문형을 비롯하여 91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고령(高靈) 신씨 문중을 크게 일으켰다고 한다.
보한제는 젊어서 훈민정음 창제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였고, 그밖에 중국어, 몽골어, 여진어, 일본어에 두루 능통하여 어학뿐 아니라 외교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먼저 정치가였으나, 문인으로서도 게으르지 않아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외에 여러 권의 뛰어난 문집을 후세에 남겼다.
나라 불꺼질듯 지키기 어려울 때 명을 받아 자기 한 몸 잊었네, 보한재가 읊은 제갈량의 한 구절이다. 그의 생존은 선왕에 대한 변절이 아니라 구국을 위한 사명이었다. 그는 늙기까지 자기 능력을 충분히 소진함으로써 국정의 인재공황(人才恐慌)을 실질적으로 보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생이 이렇게 그치고 마는가, 임종에 이르러 보한재는 이렇게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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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과거 우리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만들고
발전하게 만들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든
보한재 신숙주처럼 대단한 인재들을 한 시대에
한꺼번에 모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엉뚱한 상상입니다만 엄청난 속도의 발전에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을까요?? ㅎㅎ
나라 발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그런 인재들도 많이 있어야겠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모두 함께 사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저도 한 획을 긋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