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영동지방으로 1950년 7월 26일 길게 늘어선 한국의 피난민 행렬. 같은 날 영동지방에서 12.8km 떨러진 노근리에서는 수백 명의 양민들이 미군의 총격에 의해 살해됐다. 무쵸 대사의 서한 발견으로 노근리 학살 사건은 미국의 정책의 하나로 밝혀졌다. ⓒ AP ^^^ | ||
이 서한은 이른바 무쵸(John J Muccio)서한으로, 당시 무쵸 주한 미 대사는 딘 러스크(Dean Rusk)국무부 차관보에게 보낸 서한에서 “만일에 피난민들이 미군의 방어선 북쪽에서 나타날 경우 경고사격을 하되, 계속 방어선으로 접근해올 경우에는 총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서한은 한국 파견 미군이 1950년 ‘노근리’에서 피난민들에 대한 대량 사살의 증거를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이며, 그러한 정책이 미 행정부 고위층에 보고됐다고 <에이피통신>이 전했다. 또, 서한은 이런 방침이 제 7 기병연대가 노근리에서 학살을 하기 전날 밤인 1950년 7월 25일 한국에서 고위급이 참석한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당시 노근리 철교 및 터널에서 학살당한 피난민들의 수는 주장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미군 측은 100명에서 수백 명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한국의 생존자들은 약 400명이며, 주로 여성과 어린이들이라고 증언하고, 그 이후에도 유사한 학살 사건이 벌어져 수백 명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생존자들은 증언했다.
노근리 학살사건은 미 국방부가 1999년 16개월간 조사활동을 하는 중 에이피(AP)통신은 이를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크게 알려졌으며 이로 AP는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3일간 지속됐던 노근리 총격사건은 고의적인 사살이 아니라 “불행한 비극”이라며 발뺌을 했었다. 미 국방부는 피난민들이 가족들, 짐 꾸러미, 동물 등과 함께 적군(북한군)을 숨겨 미군 방어선으로 접근하자 미군들이 공포에 떤 나머지 총격을 가한 것이지 명령은 없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한편, 무쵸 대사는 이 서한을 작성하게 된 배경으로 미국의 치명적인 전술로 인해 “미국 내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무쵸 대사의 서한은 1982년 비밀문서에 해제됐으며, 이 문서는 미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샤르 콘웨이-란쯔가 발견 책으로 발간했으며, 이번에 추가로 발견한 문건으로 미 국방부의 노근리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또한, 1999-2001년 미 국방부 조사 자료 연구자들은 무쵸 서한을 포함한 마이크로필름 조사했으나, 아직도 300페이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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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학살을 정책으로 해놓고 딴소리하는 거 보니
한심할뿐 아니라 한국 비참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