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암이 기어나올지도 모르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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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암이 기어나올지도 모르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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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 '초가 까치구멍집'

끝없이 지구촌을 파랗게 출렁이는 봄바다. 저 편 갯바위 곳곳에서 가끔 도깨비불 같은 은빛이 자꾸만 번뜩인다. 대낮인데 웬 도깨비불? 손을 들어 아직은 조금 추운 봄햇살을 가리며 갯바위 쪽을 바라다본다. 그렇다. 은빛으로 빛나는 것은 도깨불이 아니다. 낚시꾼들이 가끔 낚아 올리는 형광등만한 학꽁치가 파다닥거리며 내는 빛이다.

그래. 바다는 오후 내내 끝없이 출렁거리면서 끝없이 변하고 있다. 모래사장 주변의 바다 불빛은 진초록이었다가 이제는 연청색으로 변한다. 하지만 저만치에서 파도를 데불고 밀려오는 바다 물빛은 아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마치 금방이라도 아이 하나가 하늘에서 진청색 물감을 마구 풀어놓고 있는 듯하다.

명사 이십리 백사장 한가운데 언뜻언뜻 눈에 띄는 새우깡 봉지처럼 퍼질고 앉아 바라보는 3월의 고래불. 저쪽에서 또 한쌍의 연인이 팔짱을 낀 채 무언가 속삭이며 금빛 모래사장에 자신들의 발자국을 또박또박 새기고 있다. 저 연인들은 부부 사이일까. 아니면 서로 이루지 못할 사랑을 남몰래 속삭이기 위해 이곳에 왔을까.

 

 
   
  ^^^▲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초가까치집
ⓒ 경상북도^^^
 
 


"저기 저 집들은 뭐지요? 마치 대감과 하인 같네요"
"맞니더. 바로 저 기와집이예, 단종 복위사건으로 유배된 권책이란 분이 머물렀던 집이니더. 그라고 바로 그 옆에 하인처럼 서 있는 저 초가집이 까치구멍집이니더. 저 초가집은 아재비 말마따나 화수루를 수호하기 위해 17세기경에 지은 집이라고 하니더"
"까치구멍집이라니요?"
"마치 까치구멍처럼 생기지 않았어예? 농담이니더. 간단하게 말하모 저 집은 부엌 위로 연기가 빠지도록 지붕에 까치구멍을 내놓은 그런 집이라 그 말이니더"

나도 연인들처럼 고래불의 명사 이십리 모래사장에 내 발자국을 점점이 새겨놓고, 고래불 앞바다에게 안녕, 이란 인사를 했다. 근데 여기는 또 어딘가.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어느 두메산골 속으로라도 날아왔단 말인가. 눈앞에는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은 기와집 한 채와 어린 날 고향집 같은 초가집 한 채가 버섯처럼 덩그러니 솟아나 있다.

고래불에서 마악 벗어나 고래불의 기억들을 미처 정리 할 틈도 없이 이내 옷자락을 잡아끄는 곳이 까치구멍집과 화수루다. 근데 이게 뭔가. 까치구멍집과 화수루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없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이게 뭔가. 무언가 서로 빗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안내판이 까치구멍집과 화수루를 사냥개처럼 막아선다.

 

 
   
  ^^^▲ 금방이라도 권책의 긴 한숨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화수루
ⓒ 경상북도^^^
 
 

안내판은 아무리 보아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큰 돌이나 장독을 세워 안내글을 써놓았더라면. 안내판의 글씨를 읽어보니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호라고 적혀 있다. 그 옆, 기와집 앞에 또 하나 떡 버티고 있는 안내판에는 화수루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라고 소개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6-1번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초가 까치구멍집과 화수루는 한 많은 사연이 깃든 곳이란다. 성삼문 등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꿈꾸던 단종의 외조부인 화산부원군 권자신이, 세조에 의해 단종이 폐위되자, 세조에게 그만 화를 당했단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인 화산부원군 권자신의 종손 오봉(五峯)공 권책이 오지인 이곳으로 유배되어 쓸쓸히 여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까치구멍집은 17세기에 화수루를 수호하기 위해 부속건물로 지어진 집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까치구멍집이 이곳에 지어진 용도는 정확치는 않다. 까치구멍집은 가운데 마루를 두는 겹집으로, 주로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동쪽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초가집이라고 한다.

이 집의 구조는 부엌이 있는 본당에 외양간이 들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대부분의 초가집이 외양간을 앞으로 덧달아 내거나 혹은 옆으로 칸을 넓혀서 들이는 것과는 다른 구조라고 한다. 또 부뚜막 사이의 좁은 벽에는 조명과 난방을 겸한 벽난로까지 설치되어 있다.

"까치구멍집의 특징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잘은 모르니더. 아마도 이곳이 북쪽과 남쪽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보니까 온돌중심의 주거문화와 마루중심의 주거문화가 맞물려 있다고 보면 되니더"
"아하~ 그래서 마루가 있군요"

 

 
   
  ^^^▲ 초가까치구멍집때가 되어도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 경상북도^^^
 
 

지금도 어디선가 권책의 긴 한숨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화수루는 조선 중엽에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1693년 숙종 때 다시 지은 집이란다. 2층으로 지어진 화수루는 정면 5칸과 측면 2칸에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에 맞배지붕을 얹고 있다.

"근데 밤에는 이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와예?"
"어쩐지 으시시 합니다. 금방이라도 도깨비 몇 마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이..."
"도깨비가 아이라 비암이 기어나올지도 모르니더"
"그럴 만도 하겠네요. 일단 나갑시다. 제가 소주 한 잔 사지요"
"그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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