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의 산업혁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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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의 산업혁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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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산업국가 건설 계획 (下)

 
   
  ^^^▲ 박정희 대통령 1966년 상공부 초도순시 모습이 회의에서 석유화학공업 추진 결정이 내려졌다.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
 
 

공업입국 계획도 (I)

상공부 공업제1국(화학 및 섬유, 중소기업 등을 담당, 국장 오원철)은 제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에 석유화학을 건설키로 계획을 수립, 장관의 재가를 맡았다(1965년).

그리고는 경제기획원과 교섭을 했는데 그 반응은 신통치가 않았다. 경제기획원의 주장은 종합제철건설은 朴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인데 종합제철과 석유화학건설을 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에 둘 다 수행하기에는 국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견해였다. 그리고는 석유화학은 추진 안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공부는 朴 대통령에게 직소하기로 작전을 세우고 그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이럴 때 朴 대통령은 1966년 1월 18일 연두교서에서, 1970년대를 바라보는 장기 구상을 발표하면서 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에 공업화를 이룩하겠다, 즉 공업구조를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서 「석유화학건설에 대한 브리핑을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생각했다.

연두교서가 끝나면 朴 대통령은 3부 요인과 함께 각 부서를 「초도순시」한다.
각 부서에서는 장관이 과거 1년간의 업적과 당해 년도에 대한 계획을 보고한다. 그 다음에는 각 국장이 소관업무에 대해서 과거 1년간의 실적과 당해 연도의 계획을 브리핑하게 된다. 국장으로서는 국가원수에 대해 직접 설명하게 되니 이 기회가 대통령으로부터 인물 및 능력심사를 받는 자리가 된다. 그러니 각 국장은 보고서 작성 그리고 예행연습에 연말 연초를 초 긴장속에 지나게 된다.

나는 朴 대통령의 초도순시 때 석유화학건설에 대한 브리핑을 하기로 결심. 준비를 했다. <도표 3-8>은 당일 브리핑한 도표이다.

 

 
   
  ^^^ⓒ www.ceoi.org^^^  
 

1. 이 계획은(<도표 3-8> 참조)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외국의 원조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그 목적으로 돼있다. 우선 경제개발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수입대체산업을 건설해서 외화절약을 한다.

국내수요 중 시멘트공장 등 외자규모가 크지 않는 것은 1962~63년에 착공했다. 비료공장 등은 차관교섭이 순조롭지 못해 1965년경에야 착수한다. 다만 정유공장은 긴급사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보유한 외화로 맨 먼저 착수했다.

가. 제1차 5개년 계획 전반기에는 시멘트 등의 공장건설로 29,114千달러의 외화 절약

나. 제1차 5개년 계획 후반기에는 비료 등의 공장건설로 49,363千 달러의 외화 절약

2. 1964년 중반부터 시작된 「수출제일주의·공업입국」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되서 1971년에는 경공업 수출이 2억 4,894만 달러에 달할 것임. 이를 위해서는 필요한 원료 및 원자재를 수입하게 되는데 이중 합성섬유, 합성수지 등을 국산화한다면 2,400만 달러의 외화 절약이 가능함.

3. 합성섬유 및 합성수지 등을 국산화하기 위해서는 외국으로부터 화공약품이 소요되는데 이러한 약품은 석유화학 공장에서 공급이 가능하다. 석유화학공장은 국내의 기존정유공장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만 공급 받으면 원료문제는 해결 가능함. 석유화학공업의 외화 절약액은 약 8,000만 달러에 이를 것임.

- 브리핑의 결론 부분은 다음과 같다.

"외화 절약은 8천만 달러라고 썼습니다만, 이것은 1971년을 기준으로 한 숫자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늘어가고 공업이 커짐에 따라 이 액수는 늘어만 갑니다.

석유화학의 원료는 정유공장에서 나옵니다. 다른 원료는 거의 필요치 않습니다. 즉 석유화학은 외화가득률이 높은 산업입니다. 건설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 단점일 뿐입니다. 그래서 선진국, 특히 일본에서는 앞을 다투어 증설을 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이 없으면, 우리나라는 막대한 외화를 써가며 수입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애써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를 원료 수입하는 데 거의 다 써버리게 됩니다. 고생은 수출하는 우리나라가 하고, 단물은 일본 등 석유화학공업국이 가져가게 됩니다.

더욱이 그 석유화학제품을 수입하고자 할 때 파는 쪽의 위세는 대단합니다. 값은 달라는 대로 다 주어야 하고, 자기나라가 쓰고 남아야 팔아 줍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공업은 일본의 하청공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공업적으로 독립국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공업적으로 자주독립을 하기 위해서 제2차 5개년 계획에 석유화학을 꼭 포함시켜 주실 것을 건의 올리는 바입니다."

이런 요지의 브리핑이었다. 설명이 끝난 후에도 朴 대통령은 한참동안 도면을 응시하고 있다가 "상공장관! 석유화학 추진기구를 발족시켜 계획을 짜도록 하시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석유화학 추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장기영 부총리도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석유화학이 제2차 5개년 계획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작성된 석유화학공업 계획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국내수요를 국산화해서 외화절약을 하겠다는 것이지 수출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못했다.

 

 
   
  ^^^▲ 한미 상공장관 회의당시 상공부 광공전 차관보 오원철, 스탠스 장관(좌) 김동조 주미대사, 이낙선 상공장관, 오원철 상공부 광공전 차관보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
 
 

공업입국 장기계획 (II)

나는 1968년 4월 기획관리실장이 되었고 1970년 1월 광공전(鑛工電) 차관보가 됐다. 광업, 공업, 전기 및 특허, 표준, 계량, 공업연구소, 광업연구소를 관장하며 이들 분야에 대해 장관을 보좌하는 참모가 됐다. 이렇게 되니 나는 자연히 좀 높은 견지에서 산업을 보아야 했고 장기적인 입장에서 판단해야 했다. 산업의 본질을 생각해야 했고 우리나라 전체와 외국사정도 고려해야 했다. 즉 나의 관점은 전술적 입장에 전략적 입장이 가미되어야 했던 것이다.

때는 경화학공업 시대의 전성기이다(경화학 공업이란 경공업과 화학공업을 합친 공업, 중화학공업은 중공업과 화학공업을 합친 공업). 그런데 나는 이제 중공업분야와 산업기술분야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경화학 공업 분야는 이미 기초가 마련되었으니, 새로운 전략목표를 중공업쪽으로 바꿔야 했다.

나는 우리나라 공업 전체의 장기개발 모형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다음 <도표 3-9>이다(이 표는 1969년 말∼1970년 초에 만들어졌다).

계획작성 기준은

1) 朴 대통령의 1966년도 연두교서중의 「조국 근대화의 3단계 작업」을 참작, 제4차 5개년계획의 목표연도인 1981년까지를 기획기간으로 잡았다.

2) 1967년도의 연두교서에서 제2차 5개년 계획의 출범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장기적인 시정방침을 내놓았는데 이를 장기계획에 포함시켰다.

가. 제 2차 5개년계획의 출범

「제2차 5개년계획은 제1차 5개년계획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공업화를 서두르고 경제자립을 촉진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국민생활의 기본 수요를 충족시켜 우리 생활을 안정시키고, 철강, 석유화학, 기계공업 등을 육성하여 공업구조의 급속한 개선을 이룩하자는 것입니다.(중략)
한 마디로 제2차 5개년계획은 우리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는 동시에, 모든 면에서 질적 개선을 단행하여 경제 각 분야간의 균형, 사회 각 계층간의 소득상의 균형, 도시와 농촌간의 지역발전상의 균형 등 우리 경제의 <균형발전>을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나. 중화학공업의 중점 육성

「정부는 제2차 5개년계획의 투자 순위에 따라 제철, 기계, 야금, 정유, 석유화학, 자동차공업 등 기간산업 건설을 적극 추진할 것이며, 전자공업과 도자기 공업의 발전에도 힘쓸 것입니다.」

다. 과학기술의 진흥

「우리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과학기술의 진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합니다. 정부는 성장하는 경제의 선도를 위하여 과학기술 5개년 계획을 세워 과학기술의 진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www.ceoi.org^^^  
 

이 계획을 보면 공업입국 장기계획(I)보다 많이 발전된 것을 알 수 있다. 요점만 설명한다.

1. 우선 경화학 공업뿐만 아니라, 중공업까지 공업 전체가 포함되었다. 기술문제도 대두되었다. 계획기간은 10년 이상을 잡았다. 즉 1981년까지를 내다보려고 애쓴 흔적이 있다.

2. 1차 5개년 계획기간은 이미 설명했던 장기계획(I)과 같다. 다만 "수출제일주의"라는 국가시책이 명시되고 날짜는 1964년이다. 1965년에 가서는 "공업입국"이라는 시책이 나온다. 로스토우 교수가 말한 "Take off" 선언도 1965년에 나왔다. 우리나라 경제가 Take off 했다는 로스토우 교수의 말에 무척이나 감명을 받았고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영문으로 된 자료를 보면 수출공업 전환이 (Impact of light industries on export)로 번역되어 있다. 소위 임팩트 폴리시라는 용어가 이미 쓰여지고 있다.

3. 2차 5개년 계획기간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가. 우선 1967년부터 "품질 고급화"문제가 나온다. 싸구려 제품으로는 수출에 한계가 온 것이다. 소위 "제값 받기 운동"의 개시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기술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했다. 1967년부터 "품질향상"과 "기술혁신" 운동이 개시된다. 그러나 국내기술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않자, 1969년부터 "외국기술 도입" 문제가 제기되었다.

나. 수출이 늘어가고 품목이 다양해지고 수출 대상국가가 늘어남에 따라 외국상품과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즉"국제경쟁력 강화문제", "생산성 향상", "품질 관리", "고급품 생산" 등의 문제가 나왔다. 특히 전자제품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고 도자기, 화학제품도 나온다. 진일보한 것이다. 1968년 후반기의 일들이다.

다. 기계공업 육성 문제가 1969년부터 대두된다. 아직은 기계제품을 수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우선 외국에서 수입하던 기계와 장치의 일부라도 국산화하기 시작하자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철강수요가 증가하여 제철소도 건설할 수 있는 수요가 발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철강재의 수출은 아직은 요원하다고 생각할 때였으므로 제철공업에서 나오는 철강재는 전부 국내 기계공업에 공급한다는 화살표가 분명히 명시되어있다. 제철공업의 출발은 1970년으로 보았다(실제로는 1969년 12월 3일, 일본과 기본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70년 4월 1일, 정비공장이 착공되었다).

라. 과학기술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했다. 과학기술처가 새로 발족했고 KIST가 설립되었다.

마. 공장은 대도시에만 집중시켜서는 안되겠다는 안도 나왔다. "공업의 지방분산"이 추진 중이었다.

4. 3차 5개년계획 기간 내에 공업구조를 개편해 버리겠다는 안이다.

가. 3차 5개년계획 기간의 각 사업 내용은 좀 조급하게 취급된 것 같다. 3차 5개년계획 기간 내에 공업구조를 개편해 버리겠다는 안이다. 1975~1976년을 "공업의 성숙기"라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학공업 비율이 50% 이상이 되면 공업 국가이다(인쇄물에는 60%로 나와 있다. 誤字이다). 이때 나는 우리나라의 경공업(즉 경공업 수출)이 70년대에 가서도 그렇게까지 고도성장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공업의 증가추세를 좀 적게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약 10년 동안 중화학공업, 특히 석유화학과 종합제철, 전자공업, 기계공업(조선 및 자동차공업 포함) 등을 전략산업화하고 밀고 나가면 곧 중화학공업 비율이 50%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실제로는 1977년 말에 가서야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의 비율이 똑같이 50 : 50 으로 되어 우리나라도 중화학 공업 국가가 되었다.

나. 기술혁신 문제가 다시 대두되는데, 국내에 연구소를 많이 지어서 기술혁신을 해결하겠다는 안이다.

다. 웬만한 기계 및 장치는 국산화하고 기계제품 수출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5. 제4차 5개년 계획기간에 대해서는 암시(暗示)만이 나와 있다. 공업구조가 완성되었으니 두뇌 개발쪽으로 가자는 안이다. 공장까지도 수출하자는 뜻이 있어 시스템 엔지니어링 개발문제도 나왔다(註: 拙著 한국형 경제건설 3권 p.184~185 참조).

(註: 이 그림은 韓美 상공장관 회의 때 갖고 갔다. 1971년 9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회의로 한국측은 이낙선 장관이고 미국측은 스탠스(Stans) 장관이었다. 이 그림은 칼라로 인쇄했다. 제목은 공업입국 장기계획(II), 영문으로는 "Basic Design on Korea's Industrial Development in 1970's" 이다. 한미 상공 장관회의 때 가지고 가려고 영문으로 번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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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입국 장기계획 (III)

공업입국장기계획(III)은 1972년에 작성됐는데 1973년부터 발진하는 중화학공업 건설계획이다. 도표만 소개하고 설명은 「제14장 80년대의 미래상」에서 하기로 한다.

 

 
   
     
 

공업입국 장기계획 (IV)

공업입국 장기계획(IV)은 1977년에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고, 70년대 말까지 중화학 공업의 기초를 마련한 다음 - 1980년부터 시작해서 약 10년간 - 우리나라 산업 전체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수립된 계획이다.

아래의 첨부자료(기사 하단에 있는 '공업입국장기계획' 이미지 파일 참조)에 있는 도표는 1978년에 작성됐다. <도표 3-11>의 설명은 「제17장 2000년대의 미래상」에서 하기로 한다.

[계속]

 

추가자료 :공업입국장기계획 www.ce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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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호 2006-05-19 15:33:07
친구에서 뉴스타운에 좋은 내용의 기사가 많다고 소개받고 방문해보니 다른 인터넷 뉴스채널하곤 많은 차별화 되어 있네요.
시민기자로 가입햇어 활동을 좀 해볼까 좋은 내용 많이 보고 갑니다.
수고들 많이 하세요.

김일선수 2006-05-19 18:02:57
기자가 취재하는 동안에 김일 선생은 김민씨에게 특별한 주문을 했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자신을 특별한 우대를 해준 박정희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버전으로만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또 가수는 고복수, 황금심씨부부 노래들만 듣고 싶어 하며 편안하고 즐거워 했다.

우리는 그를 ‘박치기 왕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일 선생은 “나를 영웅이라고 불러줘 고마우나 나는 지금도 나보다 더 영웅이신 박정희 대통령님이 계신다.”며 “처음으로 자신을 영웅 대접 해 주신 박정희 대통령이야 말로 이 시대가 낳은 진짜 영웅 이시다”고 말하면서 이내 눈시울을 불 겼다.

그는 또 머리맡에 박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의 결혼사진을 놓아 둘 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대한 존경심은 대단해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도 “박 대통령의 자재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면서 “국내 프로 레슬링의 몰락을 아쉬워하면서 만약 박정희 대통령께서 살아 계셨다면 이렇게까지 레슬링이 인기가 없는 스포츠 였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주용만 2006-05-19 18:22:00
밤낮없이 일하신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은 오직 박정희 한분이다.

경제야 2006-05-19 19:54:04
요즘도 이렇게 경제성장시키고 그랬슴 벌서 국민소득 한 4만불은 되었을것.

경제야!! 2006-05-19 21:05:10
경제야!
경제야!
어디 갔느냐?

빨리 국립묘지가서 박정희 대통령 모시고 오너라!!
지금 상태라면 너는 곧 죽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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