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조상에게 살려 달라고 매일 빌었다. 달밤에는 소리 없이 일어나 우물가로 갔다. 정갈한 청수를 떠놓고 빌었다. 조상의 노여움을 달래는 할머니의 작은 소리는 마치 풀벌레가 이슬을 먹는 소리를 냈다.
채패 판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더 큰 이야기가 들려 왔다. 어머니는 노름꾼의 바람잡이가 된 아들을 찾아 부지런히 읍내로 찾아 다녔다. 형은 노름꾼들의 나쁜 손버릇을 배웠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과 술과 여자와 거친 주먹 꾼 들이 내쉬는 숨소리를 들었다.
오염된 공기가 전이되어 한 통속으로 숨을 쉬었다. 형은 늘 바람과 공기가 되어 엄마를 찾아 왔다. 유치장을 찾아가는 어머니는 앞을 보지 않고 땅만 보고 걸었다. 아들이 난폭해졌지만 늘 어린아이로 생각했다.
할머니는 매일 마시는 물을 장독대 위에 떠놓고 빌었다. 무당은 할머니를 채근했고 할머니는 어머니를 채근해서 굿판을 버리려고 했다. 살풀이를 해야 손자가 액땜을 한다고 말했다. 무당은 여기저기 휘장을 둘러놓고 북을 치며 굿을 벌였다. 상에는 돼지 머리가 아가리를 하품하듯 벌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치마를 걷어올리고는 속옷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내서 돼지 아가리에다 물렸다. 할머니가 돈을 놓을 때마다 징 소리는 커졌다. 고무같이 투명해 보이는 돼지의 두 귀는 무엇을 듣고 있다는 듯 두 눈을 감고 있었으며 그 형상은 마치 세상을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당의 주술 소리와 징 소리는 묘한 조화를 이루며 바람소리와 함께 멀리 퍼져 나갔다. 구경 나온 사람들과 이미 굿을 마친 사람들은 한쪽에서 멀쩡한 옷가지를 태웠다. 어린 나는 그 것을 무척 이상하게 보았다. 멀쩡한 옷을 태우며 액땜을 한다고 했다.
왜 옷을 태우는데 액땜이 되는 지도 이상했지만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타다 남은 재가 바람에 따라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내려 않았다. 타고남은 화학 섬유의 재 덩어리가 머리에 내려 않을 때마다 섬뜩했다.
무당이 주술을 외워서 나에게 돌아와 귀신이 머리에 붙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그러한 재 덩이는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나의 머리는 물론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매캐한 연기 역시 사람들의 목을 아프게 하고 기분 나쁘게 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했다.
상위에는 돼지 머리도 있었지만 떡시루와 쌀이 수북히 채워진 말 통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오색실이 얼기설기 엉켜있었다. 백설기와 과일, 미나리와 술병이 놓여 있었고 부적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속옷에서 지폐를 꺼내 부적 위와 돼지 머리 위에다 돈을 또다시 놓았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빌고 또 빌며 대주가 잘 되게 해 달라고 무당처럼 무슨 말인지 주술을 외웠다. 그리고 가끔가다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수도 없이 했다.
어디에서 그러한 힘이 나는지 할머니는 매일 팔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면서 굿을 하는 날이면 힘이 살아났다. 그 때마다 어머니를 닦달했다.
예수쟁이 어머니가 문제가 되어 일이 잘 안 된다고 하며 어머니를 나무라셨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몸둘 바를 모르고 어떻게 든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 것이 잘 안되었다.
무당은 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어머니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된다고 했다. 대주가 나쁘게 되는 것도 어머니 때문이라고 부추겼다. 할머니는 그 것을 믿었다. 그래서 늘 어머니를 어떻게든 굿판에 데리고 나오려고 애를 썼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하나님만이 존재한 다는 것을 믿으려는 사람처럼 행동해서 할머니와 대조를 이루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침묵과 무언의 기도를 하곤 했다. 늘 굿판으로 가려는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돼지 머리에 복채를 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한번도 복채를 직접 놓지 않았다. 복채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 주기는 했지만 직접 돈을 상위에다 놓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는 무당이 벌리는 굿판에만 오면 신명이 났고 무당은 복채가 나오지 않으면 신명을 내지 않았다. 박수 역시 마찬가지로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며 마지못해 장단을 치고 있는 듯 보였다.
북과 징을 동시에 치며 추임새를 하지만 신명을 내지 않게 되면 할머니는 눈치를 챈 듯 다시 속옷을 걷어올리고 돈을 꺼내 놓았다. 돈이 없으면 다시 어머니를 닦달했다.
그렇게 돈을 놓고 나면 북소리와 징 소리, 무당의 주술 소리가 커지면서 신명을 냈다.
"얼 씨고, 죽었던 귀신이 다시 살아오는구나,
얼 시구, 그래 대주에게 좋은 일이 있단 말이지,
그래 얼 시구, 좋다."
돈을 놓을 때마다 주술 소리가 높아졌다.
사례에 걸린 듯 무당은 침을 땅바닥에 퉤 소리가 나게 뱉으며 입에는 게거품을 내듯 무엇인지 알지 못 하는 주술을 외워 댔다. 그리고 눈을 하늘로 높이 올려 뜨고 무엇인지 더 큰 소리로 주술을 외웠다.
그때마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감아 버리곤 했다. 다시는 굿판에 따라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할머니는 늘 어머니와 나를 앞장 세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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