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몸이 얼마나 살 것인데, 한 평생 수행하지 않는가?
몸은 반드시 끝마침이 있으니, 그 다음에는 어찌할꼬?
- 원효의 발심수행장에서 -
큰 남자가 계시는 집, 곧 대웅전(大雄殿)이다. 석존은 실제로 기골이 장대했을지 모른다. 그가 다비(茶毘) 후 사리(舍利)가 8섬 4말이나 수거됐고, 불신(佛身)을 모신 곳을 장육전(丈六殿)이라 부르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석존을 대웅이라 일컬을 때의 이미지는 몸체가 아닌 마음의 큰 스승이다.
석존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 BC 563-483)이며, 히말라야 산맥의 한 작은 언덕에서 태어났다. 그는 29살에 집을 나서 6년간의 수행 끝에 진리를 깨달았다. 그때부터 부처(Buddha 佛陀)라고 호칭되었고, 그가 속한 석가(Sakya 釋迦) 부족의 현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인은 여래(如來)를 선호했는데, 이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석존은 태생이 특권층의 자제였으나 세속의 욕망과 성취를 버렸다. 그리고 무지와 욕망으로 인해 어떻게 고통이 생기는지, 또 이런 쓴 바다(苦海)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는 깨달음에 이른 후 더 이상 존재에 매달리지 않았고,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주변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게 되었다. 이후 45년간 여러 곳을 다니며 그의 진리를 설파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파된 해를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라고 교과서는 전한다. 당시 선진문화를 앞세운 중국을 통하여 한문으로 번역된 불경과 함께 불상이 들어왔다. 375년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지어 고구려 불법(佛法)이 시작되었다. 이어 385년에 백제로, 527년 이차돈의 죽음의 희생으로 신라에 전래되면서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불교가 융성하였다.
당시 우리 민족은 환인-환웅-단군의 삼신(三神)을 모시는 신교(神敎)가 소도(蘇塗)의 형태로 뿌리박고 있었다. 그런데 불교는 한반도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오래된 짝꿍을 만난 듯 바로 민족종교와 융합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병합하여 삼국이 통일되는 난리 통에도 불교는 중국대륙의 근간인 유교와 도교를 제치고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그 이유에 대하여 어떤 힌트를 제공한다.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AD 48년 김해(金海) 지역의 김수로왕(金首露王, 42-199)에게 멀리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 33-189)이 배타고 시집와서 무려 10남 2녀를 낳았다. 맏이 거등(居登)은 199년에 왕위를 계승했고, 둘째 석(錫)과 셋째 명(明)은 모후 성을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출가(出家)하여 황후의 오빠인 인도스님 장유보옥(長遊寶玉) 선사를 따라 가야산 등 여러 곳을 3년간 수행하였다. 그 후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103년 모두 생불(生佛)이 되었다고 한다. 일곱 왕자의 성불(成佛) 소식을 들은 수로왕은 크게 기뻐하여 그곳에 칠불사(七佛寺)를 지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졌던 372년 보다 약 270년이나 앞선 기록이다. 특히 중국을 통한 북방전래설에 반해 바다를 통해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를 받아 들였다는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이채롭다. 그보다 핵심은 허황후와 선사의 한반도까지의 도래가 표류에 의한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결혼을 위한 표적항해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말이 바로 통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사건은 신라 4대왕 석탈해(昔脫解, ?-80)의 등장이다. 석가(昔家)인 그는 바다 건너 먼 곳에서 배타고 나타났는데, 먼저는 가락국 김수로왕과 왕위를 견주다가 신라로 이동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만약 석가모니와 석탈해가 같은 부족 출신이었다면, 석존은 단군과 함께 우리혈통을 지닌 선조 중에 한 분이 된다. 짠!
석존은 왕위에서 탈락한 일곱 왕자들에게 오히려 더 큰 세계로 발심(發心 all-in)하는 길을 개척한 분이었다. 칠불사가 그 해탈(解脫)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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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들에 대해 짭게나마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목을 보고 칠불사에 대해 궁금해서 검색해서
관련한 글들 역시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것도 공부의 연장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곱 왕자들이 성불을 위해 수행한 것처럼
모든 사람을 스승이라 생각하며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겠습니다.
요즘 피곤하단 생각으로 나태해져 가는
제 자신을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