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고 후배 놈을 데리고 나오려는 순간 아줌마 목소리가 발길을 잡았다.
“아저씨 그런데요.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두고 가면 도둑이 들어오면 어쩌죠. 이왕 늦었으니 제가 소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차도 가지고 왔고 너무 늦었습니다. 다음에 한잔하러 올께요.”
“제 성의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아저씨가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니 한잔 대접하겠다는 겁니다.”
참 미치고 환장하겠더구만. 마음에 혼란이 일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후배 놈이 한 말씀 거들었다.
“형님 어차피 이래된 것 한잔 하고 갑시다.”
세상에 다른 사람 다 이겨도 술 취한 놈 못 이긴다고 결국 무거운 궁뎅이를 그만 의자에 붙이고 말았다.
소주 한 병에 계란말이 하나 김치 하나가 탁자를 장식했다. 딱 한잔만 하고 간다는 것이 어째 그놈의 정 때문에 한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잔, 그러다 3병을 마시고 말았다.
사실 시간에 늦어서 그렇지 기분은 좋았다. 유리 한 장 때문에 원수 같은 욕설을 퍼붓던 둘은 나의 화술에 앙금을 풀고 금세 볼떼기를 비비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 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술이건만 새벽녘에 이렇게 술 한잔 한다는 것도 나름대로는 운치가 있는 듯 했다.(비 주당들은 미친놈이라고 말할 것으로 사료됨).
이 즈음, 집에서 휴대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전갈이었다. 파출소에 차를 두고 후배 놈을 이끌고 택시를 타고 집을 향했다. 중간에 후배 놈을 내려주고 집에 도착하니 시간은 새벽 4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자초지종을 말하기도 전에 나는 에고 에고였다. 후배 놈 구출하러 간다는 사람이 차도 버리고 술 냄새를 풍기고 왔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후배 놈 하나 구출해주려다 마누라 한테 정초부터 점수를 잃었으니 내 이놈 조만간 만나면 내 5만원 받으리다. 결국 나는 라이언 일병을 구하고 마누라에게 왕 바가지를 한대 얻어맞았다.(고소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많겠죠. 그러나 주당 마음은 주당이 안답니다.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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