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엄마는 한국인, 자식은 이방인 취급받는 고려인4세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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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엄마는 한국인, 자식은 이방인 취급받는 고려인4세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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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는 한국에 있는데, 자식인 나만 해외로 강제추방을 당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주 황당하고 서글프기 짝이 없다. 같은 혈육을 가진 한 가족인데 누구는 한국인, 누구는 외국인 취급을 받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고려인4세가 그렇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에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를 뜻한다. 조선 말기 연해주로 떠나 정착한 고려인들은 러일전쟁 당시 스탈린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의하여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화물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겨 쳐졌고 그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많은 고려인들이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남았다. 황량한 황무지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며 황무지를 개간했다.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강한 생명력으로 힘든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후손을 낳아 그 정체성을 간직해왔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고려인4세는 황당한 현실을 맞이한다. 힘들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뿌리를 찾아 조국에 돌아온 고려인4세를 우리나라는 외국인 취급한다. 부모인 고려인 3세까지만 동포로 인정이 되어 고려인4세인 자식은 만19세가 되면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모습은 흡사 과거 고려인들이 영문도 모른 체 억울하게 강제이주 당하던 모습과 유사하다.

낯선 땅에서 한국인의 핏줄을 이어오며 자라온 고려인4세를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고려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정책에 있다. 1992년에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에 따르면 고려인3세까지만 재외동포의 지위를 얻어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고려인4세부터는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이 된다. 고려인 동포의 합법적인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다는 ‘고려인특별법' 역시 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러시아 및 구소련에 이주하였거나 그 친족으로 해당지역에 거주중인 자를 고려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고려인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런 혜택을 못 받는다.

이는 결국 고려인에 대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으로 다가온다. 고려인4세는 만19세가 되면 부모와 함께 한국에 살기 위해서 단기방문 비자(C-8)를 적용하여 3개월 마다 원치 않는 출국과 재입국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외국인 취급을 받으니 보육지원도 없고 부족한 한국어 능력으로 인해 제대로 된 취업도 할 수 없는 그들에게는 3개월마다 드는 비싼 항공료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더 이상 외모로 차별받지 않는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한국은 그들을 다문화만도 못한 대우로 차별하는 꼴이 돼버렸다. 현재 저출산 시대로 이민, 다문화도 받아들이는 환경에서 우리 고유의 핏줄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고려인들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부족하다. 서툰 한국어 실력에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쯤으로 생각하거나 재미동포, 재일동포는 알아도 고려인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가슴속에 조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 정체성을 이어왔으며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의 고려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이런 그들에게 우리는 ‘외국인’이라는 이름으로 그 단단한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다.

우리는 과거 엄동설한에 살아남기 위하여 고생했던 고려인들의 마음을 녹여주어야 한다. 그들은 외국인이 아니다. 우리 동포다. 다시 돌아온 그들이 따뜻한 조국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위해 ‘고려인3세까지만’ 이라는 잘못된 ‘재외동포법’을 개정하고 외국인이 아닌 우리나라의 한 국민으로서 조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보육·의료 및 교육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그들의 민족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려인들에 대한 차별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낯선 땅에서 강제이주 당했던 역사의 아픔을 우리 조국에서 다시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던 조국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자 그들을 진정한 우리 동포로 맞이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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