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착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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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와 착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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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기사나 르포 등을 쓸때 시간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

세상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실수(失手)와 착각(錯覺)을 하며 살아간다. 특히 언론계에 있는 분들은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훨씬 실수와 착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마 기자가 기사나 르포 등을 쓸 적에 시간의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각 신문을 보면 하루가 머다 하고 정정기사(訂正記事)를 내보낸다. 내가 쓰는 신문칼럼에서도 그런 실수와 착각을 저질렀고, 그 칼럼이 나가고 난 뒤에 바로잡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정기사는 단순한 실수와 단순한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 예사이다. 어느 누가 고의적으로, 일부러 실수나 착각을 하겠는가. 실수는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르거나 또는 그 잘못이다.

착각은 실제와도 다른 데도 실제처럼 깨닫거나 생각함이다. 그러기에 글을 쓰고 짓는다는 것은 살얼음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꼴이다.

얼마 전 내가 썼던 <칼럼>은 분명 착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독자들한테서 힐책이 날아왔다.

「내일 지구가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네덜란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을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 것처럼 해놓았으니, 시퍼렇게 지식으로 야무지게 무장한 독자들한테서 지적당하고 힐책당한 것은 당연하다.

그 말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진리에 가까운 말인데 내가 잠깐 허허벌판을 헤맸던지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스>와 <소>는 발음으로 분명히 비슷한데 한글자모 <ㅅ>으로 시작되는 이름이라 그만 잠깐 착각을 일으켰고, 교정보는 과정에서 그것 하나를 잡아내지 못했다. 하기야 교열기자란 독수리 눈이 되어 맞춤법 틀린 것을 찾아내고 바로잡는 것이 임무이지 글 내용 및 표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 만약 채용 고시였더라면 흩어져 있는 모이를 정확하게 찍어내는 닭처럼 금방 찍어 냈을 텐데, 긴장을 멀리 보내고 잠깐 해이된 상태여서인지 세심하고 날카로운 나 역시도 못 잡아냈다. 대개 자기가 쓴 글은 오자 찾아내기가 힘들다고들 하는데 그런 징크스가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동인지에서 작품 청탁을 받고 며칠간 밤을 새며 에세이 「담배에 대한 소고(小考)」를 썼는데 흔히 인용하는 <운명아 비키어라. 내가 간다.>의 격언을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라고 자신 있게 써놓았던 것이다. 가필을 수십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원고 청탁 마감이 임박해서야 그 원고도 훌훌 날려 보냈는데 어느 날카로운 독자가 편지를 보내 왔던 것이다.

비수처럼 날아와 여린 가슴에 꽂힌 지적대로 찾아보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파랑새」의 작가 메테르링크였다. 정신이 번쩍 났다. 평소 칼럼 등을 쓸 적에 안 틀리게 정확하게 한다는 것이, 그만 인용을 할 적에ㅔ 이런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또 언젠가는 수박, 딸기 등을 과일로 알고 소개했으나 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생물 상식은 엉터리였고, 그것은 과일류가 아니라 채소류였다.

과일류란 다년생의 유실수에서 따낼 수 있는 사과, 감, 복숭아 등을 이르며, 통상 여름 과일로 알고 있는 수박, 참외, 딸기, 토마토 등은 줄기에 열리는 채소류로 일년초에서 재배되어 수확되는 열매, 즉 열매채소류에 속했다.

이밖에도 그런 실수와 착각을 떠올리면 붉으레 얼굴이 달아오른다. 내가 농담을 좋아하고 유머와 해학을 즐기다 보니까 아주 좋은 분위기를 얘기할 적에 <화기애애>하다고 해야 되는데, 그만 거드름을 피우면서 <화기애매>한 분위기라고 유머를 깔았다.

말은 농담이 가능하지만 기록으로 남기는 글은 두루뭉실이 통하지 않아 자음<ㅇ>과 <ㅁ>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어네스트 훼밍웨이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노인과 바다>에서 스펜서 트레이시가 주연을 했는데, 어느 신문사 논설 주간이 안소니 퀸이 산디아고 노인 어부 역할을 했다고 칼럼을 썼다. 나와 친분이 있는 분이기에 그 영화 주연 배우가 스펜서 트레이시가 아니냐고 아는 체를 하며 지적을 했더니, 그 논설 주간은 실실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실실 웃는 폼이 나를 놀리는 비웃음이었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갈 텐데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듯했다.

나는 그 후에 만든 안소니 퀸이 주연한 그 영화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미안해서, 아니 미안을 농담으로 <쌀집 안>이라는 곳이라는데 나는 그곳에서 고개 숙이고 자조(自嘲)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실수와 착각은 어떤 경우에 엄청난 피해를 주기도 하고 곤혹스럽게 하며, 남을 무시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현대인들은, 그리고 언론이나 문학에 종사하는 분들은 각별히 주의하고, 확실하지 않으면 자료를 찾아보고 확신이 섰을 때 쓰는 것이 기본 예의일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 기록해 놓으면 그것이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겠기에 말이다.

역시 저지른 실수와 헷갈렸던 착각을, 일상생활에서의 좋은 스승이라 생각하면서 자기 생활과 자기 계발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을 방치하고 바로잡지 못하면 진실이 왜곡되고 그 소중한 자취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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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2006-04-01 22:50:40
너나 많이 하세여~ 우째 이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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