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에피소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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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에피소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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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그래도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

청국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는 술을 좋아한다.

소규모 격주간 잡지사 편집국에 장으로 있는 나는 성이 천씨라 천국장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사람들은 발음을 잘못해 발 꼬랑내 처럼 냄새 지독한 청국장 청국장 한다. 천국장은 냄새 때문에 청국장을 싫어한다.

어쨌든 그런 청국장은 평소에는 술을 잘 안 마신다.

어쩌다 한번 마시면 폭주를 한다.

그러다가 연짱 마시는 경우도 있고 한 달도 좋다 두 달도 좋다 술을 안 마실 때도 있다.

그런데 어제 저녁 퇴근 무렵에 영업이사가 사업부 김부장과 청국장을 역삼동 어느 삼겹살 집으로 불러냈다.

날씨도 그렇고 광고수주도 잘 된 기분이라 한잔 사겠다는 부름이었다.

바깥은 겨울을 두자락 깔고 있는 2월중순이었다.

진눈깨비가 질척질척 내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잔 걸치고 싶은 그런 저녁 날씨에 셋이서 소수 여섯 병을 마시고 김부장 따라 종로 3가에서 2차 청국장이 3차 해서 셋은 깔라 되어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에 헤어졌다.

집 방향이 틀려 각자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갔고 청국장은 택시를 잡으려다 버릇처럼 종3 지하철 역내로 들어섰다.

계단을 내려서자 전철이 들어왔다. 허둥거리며 차를 보고 뛰었다.

차문만 열리면 저돌적이어야 하는 통근경쟁 30년은 습관이었고 버릇이었다.

한 아름 상추쌈을 입안 가득 우겨 넣듯이 이 차를 놓치면 출근이 늦는다는 생각은 죽기 아니면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튕기어 나오는 사람들을 밀고 차안으로 들어서야만 하는 러시아워의 통근경쟁은 치열한 전투다. 같이 죽자는 싸움이다.

청국장은 이런 전장에서의 30년 노장이다. 명장이 아니고 노장이다.

청국장은 그렇게 습관적으로 버릇처럼 차안으로 들어 선 것이다.

통나물 시루처럼 사람들로 꽉 찬 차안만 보다가 한산한 차안을 보며 자리에 앉는 청국장은 허전한 기분까지 들었다. 이상해 보였다. 전철 같지가 않았다. 낯설었다.

대중교통이라면 그래도 사람들이 북적대야 차 같은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런 청국장은 뻑뻑해지는 눈꺼풀을 추켜 뜨려고 안간힘을 썼다. 꺼벅꺼벅 댔다.

청국장은 언제부터인가 앉으면 자는 버릇이 생겼고 내릴 장소에서 정확히 눈을 뜨는 습관도 있었다. 결코 실수한 일이 없었다. 버릇과 습관은 정확했다.

그런데 청국장은 지금 낯선 어둠속에서 진눈깨비를 맞으며 두리번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내리는 바람에 얼결에 따라 내렸던 것이다.

역무원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역무원은 부곡이라고 했다.

부곡은 수원 다 와서 있는 역이다.

인천행 차인 줄 알고 졸았던 방심이 실수를 부른 것이다. 지금 떠난 차가 막차로 다른 차는 없다고 했다.

역사를 나온 청국장은 어둠 속에 버려진 미아가 되고 말았다.

주머니에서는 백원짜리 동전 셋 닢이 나왔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삼백원 들고 여관 찾아 갈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비상금이 있다 해도 갈데없는 어둠뿐이었다.

택시라도 오면 일단 타고 집에 가서 차비를 주겠다는 심산으로 눈속의 어둠을 두리번대며 택시 오기만을 기다렸다.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어 눈발은 제법 굵어졌다.

취기는 완전 가시었고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낭패가 있을까? 만취되어 이런 날 길가에 쓰러져 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누구는 취중에 여기자 몸 만졌다고 지금 곤욕을 치루고 있지 않은가.

눈발이 휘날리는 사이로 라이트 불빛이 출렁이며 오고 있었다.

불쌍한 청국장은 택시라는 것에 반가워하며 인천을 가자고 했다.

그러나 기사는 안간다며 매정하게 어둠속으로 가버렸다.

아,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무심한 눈은 점점 더 오는 것 같았고 갈 곳 없는 청국장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미친놈처럼 허우적이다 블록 담에 의지한 포장마차를 발견하고 문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잠금장치도 없었다.

눈발을 피할 수 있어 안도하며 어두운 안을 살펴봤다.

아무것도 없이 빈 탁자 세 개와 의자 몇 개 뿐이었는데 연탄 난로 하나가 복판에 있었다. 어그적거리며 가 보았다.

뚜껑없는 난로는 허옇게 다 타버린 연탄을 품고 있었고 그래도 거기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하는 수 없었다. 궁상맞고 처량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꺼져가는 연탄난로를 끌어안듯이 하고 앉아 조는 꼬락서니를 누가 봤다면 정말 가관이라고 했을 것이다. 청국장이 생각하기에도 그러니 말이다.

낯선 곳에서의 처량함이란 청국장처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정말 한심하고 처량했다. 집사람이 이런 몰골을 보았다면 난 정말 죽었다고 복창을 열 번은 해야 할 것이다.

첫차는 새벽 5시 10분에 있다는 역무원의 말을 상기하며 조는둥 마는둥 하는 시간은 닟선 곳에서도 낯설지 않게 흘러갔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같이 집에 온 나는 환영 받을 리 없었다.

외박했다는 오해로 새벽 기온보다 더 차가운 눈총을 받으며 도망할 수 있는 장소는 이불 속 밖에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퀘세라 세라.

1.4후퇴때 폭격이 심해 피난길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어 본적이 있었다.

솜이불은 포탄도 막아준다고 했었다.

집에서 6시30분에 나와 7시 전철을 타야만이 8시 30분에 사무실을 들어선다.

그런데 내가 전철을 탄 시간은 8시였다.

조급한 마음처럼 갈수록 사람들은 많아졌고 문 앞쪽에 있던 나는 밀려드는 사람들로 어느새 중간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손잡이에 매달려 벌벌 떨리는 팔에 의지하고 있었다.

164센티의 작은 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바닥에서 5센티가량 떠 있었다.

공중에 떠있는 셈이었고 물위에 부평초처럼 밀리는대로 밀려 다녔다.

여기저기서 씩씩대며 끙끙대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풍선이라도 있으면 터져 버리고 말 그런 콩나물 시루였다.

어느 역에서는 사람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야야, 그만 좀 타라. 사람 터져 죽겠다!”

비명에 가까운 남자의 절규였다. 남자가 저러니 여자들은 어떨까?

전철통근은 정말 힘든 경쟁이다. 남들 자고 있는 새벽에 나와 시간에 쫓겨 많은 사람들 틈에서 역겨운 입냄새에 짜증스럽게 시달리며 직장에 들어서면 파김치다. 그래도 이력이 붙고 경력이 있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 붙쳐 대지만 초짜들은 나처럼 중간으로 밀려 내릴 때 내리지 못하고 발을 동동구르며 찔찔 울기도 한다. 이 전쟁은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은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싸움이다.

전철이 가다 서면서 방송이 나온다. 구로역에서 전기 사고가 있어 5분간 정차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웅성이면서 비좁은 자리를 잡아가며 출근시간이 늦는다는 웅성이 지나면 이상한 정적이 흐른다. 터질것 같이 숨막히는 정적이다.

차가 움직이다 또 서면서 앞 차가 출발하지 않아 차간 거리 때문에 잠시 정차한다니까 이번에는 짜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비비꼬며 휴대폰을 꺼내들고 전철이 연착돼 늦는다는 전화를 해댔다. 시간이 9시를 훨씬 넘고 있어 청국장도 전화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직장생활 30여년동안 이렇게 늦어 본 일이 없는 청국장은 신입사원처럼 불안했다. 전철은 조금 가다 다시 서며 이유를 방송했다. 비난이 이는 가운데에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전화를 꺼내들었다. 어떻게 보면 코미디같이 보였다. 슬랩스틱 코미디 같아 재미있어 보였다.

출근시간에 2~30분의 연착은 굉장한 시간차다. 차가 간신히 어느 역에 도착하자 연착으로 기다렸던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콩나물 시루에 물을 쏟아붓듯 밀고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돼지 목을 따도 소용없다. 나도 죽을 맛이다.

터질듯한 사람들로 차문은 몇 번이나 닫혔다 열렸다 했다. 퉁겨나간 사람들은 대가리만 감추는 꿩과는 반대로 엉덩이만 차안으로 밀어넣고 쑤셔댔다.

실갱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왠 아주머니가 소리를 꽤 질렸다.

“밀지 말어요. 내 젓 터져!” 순간 물 끼얹진듯 조용했다.

간신히 문을 닫고 출발하던 전철이 사람들을 속구듯이 몇 번을 가다 갑자기 서곤했다. 그럴적마다 사람들은 요동을 쳤고 얼굴들이 시뻘게 갖고 씩씩댔다.

다음 역에서도 내리는 사람은 없고 밀고 타는 사람들로 꺽꺽댔다.

“제발 밀지 좀 말아요, 젓 터진단 말요!” 또 한번 신경질적으로 사람들 틈에서 일었다. 이번에도 일시적인 정적이 일면서 서로 마주 봤다. ???

젓이 터진다구? 젖? 젓? ???? 이때 전철이 갑자기 출발을 했다.

사람들이 반대 방향으로 중심이 쏠렸다. 많은 사람들의 신음과 함께 이번에는 왠 사내가 소리 쳤다.

“아줌마, 이게 뭐예요?”

“이잉! 젓이 터졌잖아. 이를 어째, 새우젓 봉지가 터졌어!“

긴장해 있던 사람들이 와- 하고 웃었다.

“웃지 말아욧! 남은 속상한데 뭐가 우습다고 웃는거야!”

와-하고 웃던 웃음들이 일시에 멎었다.

역시 남자들은 여자가 무섭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건 여자다.

왜냐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하는 위인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기는 남자 위에 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이다.

전철 문이 열려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자빠질듯 하면서 쏟아져 나갔다.

그리고는 언제 시달렸냐는 듯 바쁘게 제 갈 길로 가 버렸다.

산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변화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그래도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링컨은 말했다.

그래 살자.

처자식이 있다는 것이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떠한 재미난 일들이 전철 안에서 일어날까 사뭇 기대가 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철은 이렇게 우리 서민의 애환을 차안에서 잉태해 차 밖으로 출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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