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호국사상과 孝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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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호국사상과 孝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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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민족의 역사에 이조 창업공신인 정도전(鄭道傳)만큼 불교를 비난하는 글을 써 반포하고 불교를 망치려고 위로는 왕과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 까지 고의적으로 선동한 정치인은 없었다.

당시 고려를 망하게 하고 이성계를 이조(李朝)의 태조로 옹립하는 데 쌍벽을 이루는 지대한 공을 세운 지식인은 무학대사와 정도전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조는 불교를 배척하는 유교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불교는 “무군무부지교(無君無父之敎)”라 주장하고 증오하였다. 정도전은 불교를 배척하기 위해 배불론(排佛論) 등 여러편의 글을 써 나라에 반포하였다. 그는 불교에 호국사상과 부모에 대한 효사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애써 무시해버렸다.

불교의 효사상은 먼저 부처님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주장과 근거의 예화로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은 배속의 아기를 낳기 위해 그 시절 전통으로 먼 곳의 친정집으로 가는 도중 산기를 느끼고 시녀들이 임시 변통으로 쳐놓은 장막에서 훗날 부처가 되는 정반왕의 큰 아들 싯다르타를 낳았다. 전생의 인연법에 의해 마야부인은 아들을 낳은 지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다. 당시 전통에 따라 이모가 어머니 대행으로 태자를 돌봐주었다. 태자인 싯다르타는 자라면서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을 낳은 생모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 날로부터 태자는 “왜 어머니는 죽어야 했을까? 어머니는 어디로 가신 것일까? 다시 만날 수는 없는 것인가? 사람은 왜 죽고 마는 것인가? ” 태자는 자신이 태어나다가 어머니가 죽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 하였다. 태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부터 어머니를 그리워 하였고, 생노병사를 벗어날 수 있는 가르침을 구하였다. 마침내 태자는 왕궁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없다는 판단아래 출가 수행자가 될 것을 결심하였고, 어느 날 깊은 밤에 왕궁을 탈출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난행고행(難行苦行)의 6년 세월을 보내던 태자는 니련선하의 강가에 있는 보리수 나무 아래 정좌하여 새벽에 뜬 명성(明星)을 보고 우주의 대도를 깨달았다. 부처님이 된 후 제일먼저 실행한 것은 죽은 어머니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를 신통력으로 찾아보니 도리천(忉利天)이라는 별의 국토에 있다는 것을 알고 도리천에 단숨에 가서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 예배하고 어머니에게 자신이 깨달은 우주의 진리를 설명해주었다는 경문(經文)은 효사상(孝思想)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조선조(朝鮮朝) 불가에서도 효사상은 있었다. 근거로 임진왜란 때,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조선팔도에 의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西山大師)도 과거 준비를 하는 유생시절 홀연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호곡속에 애도하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찾았다가 어머니의 영혼을 천도한 후 승려가 되었다.

그 후 서산대사와 스믈 셋의 나이차가 있는 제자인 사명대사도 소년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김천 직지사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당시 율곡 선생도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홀연 세상을 떠나니 인생의 허무함과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나, 당시 금강산에 주석하는 학문이 깊은 노승이 율곡에게 승려가 요익중생(饒益衆生)하듯 속세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환속하였다.

당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율곡선생, 지리산에 은거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남명(南冥) 조식 선생은 불원천리 찾아 왕래한 도반(道伴)이요, 선후배들이었다. 나는 부지기수(不知其數)의 예화의 근거가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며, 결론은 불교는 정도전의 주장대로 효사상이 없는 종교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또한 정도전은 불교는 “군왕을 섬기지 않는 종교(無君)”라고 맹비난을 하였는 데 분석하면 정도전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근거는 임진왜란 때 전국의 의승병들이 나라를 구히고, 임금을 구하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2만이 넘는 승병들이 죽어갔다. 여타 관군과 속세의 의병들은 전공을 기리는 비석과 사당(祠堂)을 세우고 작위를 받았지만, 당시 승려들은 호국을 위해 전장터에서 싸웠지만 불교에서 볼 때에는 불살생계(不殺生戒)를 파한 것이라며 의승병들은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이름을 애써 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또 불교의 효사상으로 존경받는 조선중기의 고승(1562년∼1633(명종∼인조11년) 진묵대사(震黙大師)가 있다. 진묵대사는 홀어머니에 어머니 생전에 효도를 다하고, 어머니의 영혼천도를 할 때, 효심이 충만한 49제 제문(祭文)을 지어 바친 것으로 유명한 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문(祭文)

胎中十月之恩을 何以報也리요
열달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요

膝下三年之養을 未能忘矣로소이다
슬하에서 삼년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가 없습니다.

萬歲上에 更加萬歲라도 子之心은 猶爲嫌焉이온데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 하여도 자식의 마음에는 부족한데

百年內에 未萬百年이오니 母之壽가 何其短也오리까
백년 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하시었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 짧습니까

單瓢路上에 行乞一僧은 旣云已矣거니와
한 표주박을 들고 노상에서 걸식하는 이 중은 이미 말할것도 없거니와

橫釵閨中에 未婚小妹가 寧不哀哉오니까
비녀를 꽂고 아직 출가하지 못한 누이동생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上壇了 下壇罷하니 僧尋各房이옵고
상단불공과 하단의 재가 끝나니 승려는 각기 방으로 찾아가고

前山疊하고 後山重한데 魂歸何處오니까
앞산 뒷산 첩첩산중인데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로 가시었습니까.

嗚呼哀哉로다
아! 슬프기만 합니다!

끝으로 나는 거듭 주장하거니와 불교는 나라의 왕에 대한 충성도 없고, 부모에 대한 효도도 없다는 정도전의 주장은 허튼소리이고, 불교를 말살하려는 음모가 엿보인다 하겠다. 이성계를 왕이 되게 한 큰 도움을 준 무학대사는 공을 이루면 물러난다(功遂身退)의 정신으로 어느 날 홀연히 산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성계의 둘째부인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고 재상중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력하다가 이성계의 첫째 부인의 아들 이방원의 군사에 체포되어 이방원의 장검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깊은 산속 고봉정상에 앉아 무학대사는 권세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며 앙천대소(仰天大笑) 했다는 전설이 있다. 내가 논평하기에는 무학대사는 한고조를 제위에 오르자 종남산의 사슴을 타고 다닌다는 노신선을 찾아 유유히 떠나간 장량(張良)과 같은 반열이라고 나는 논평한다. 따라서 불교는 무군무부지교(無君無父之敎)라는 주장은 요언(妖言)일 뿐이다. 불교를 믿는 신앙인은 호국사상과 호법사상과 효사상이 어느 종교인보다 투철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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