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아름다운 것은 죽기 마련이다
(65) 아름다운 것은 죽기 마련이다
  • 박정수 소설가
  • 승인 2005.10.07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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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없앤다고 하더니 아직도 있나?’

“잠잠해질 때까지 안 만나는 게 어때?”
“주말에 우리 여행가. 끊을게.”

연지는 핸드폰을 접고 슈퍼에서 김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오자 남편은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석호와 통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해? 오해 좋아하네. 앞으로는 절대 그런 전화 하지 마시오. 두 번 다시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는 죽을 줄 아시오.”

남편은 훈이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경고를 주고는 연지가 들어오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연지는 이러다가는 남편에게 꼬투리이라도 잡힐 것 같아 쏘아붙였다.

“지금 누구한테 전화한 거죠?”
“당신은 알 필요가 없어.”

석천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연지 역시 싸움이 오래 갈 것이라는 판단에서인지 밥상만 차려두고 먹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딸 방으로 건너가서 들어 누웠다. 연지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생각해도 좀처럼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은 죽기 마련이다. 바둑에서 꽃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죽는다. 오공도화(五空稻花)나 매화육공(梅花六空)은 가운데 치중하면 죽는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죽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사랑도, 아름다운 사람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도 가운데 일침을 가하면 죽듯이 훈이와의 아름다운 사랑에 남편이란 침이 죽게 하는구나, 하고 훈이의 말이 떠올랐다.

20년 이상 도적맞은 결혼생활, 어쩌다 자식이 생겨 마지못해 살아온 20년, 하루하루를 속고 살아온 지난날이 서글프기도 했다.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는데 행복은 아주 멀리 있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눈자위를 타고 내렸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나가는 기분이었다.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훈이의 태도가 걱정이었다. 어서 날이 밝으면 훈이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진짜 훈이가 나를 사랑하는 걸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도 안 되는 훈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좀처럼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딸 정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학원 과외수업을 받고 들어오는 딸은 자기 방에 엄마가 누워 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또 싸움했어?”
“싸움은 ?”

연지의 대답은 간단했다.

“밥 먹어야지?”
“라면 먹었어. 그런데 엄마, 무슨 고민 있어?”

정희는 엄마의 옆에 다가앉으며 말했다.

“고민은?”
“아무래도 엄마는 이상해? 쉽게 말하면 사랑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어렵게 말하면 문학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보이니? 나는 그걸 생각했단다.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도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어야 행복할 것 같아. 언젠가 나에게 말했지? 옆구리가 시리다고. 아직 넌 학생이잖아. 그래서 나처럼 혼전 임신이나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거던.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애. 특히 여자는 행복을 바라며 하루를 살고, 행복을 먹고 사는지도 모른단다.”

정희는 새삼스런 엄마의 말에 ‘와, 멋지다’ 하고 환성을 질렀다. 연지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벽을 바라보고 돌아누웠다. 오빠 집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시집온 지 20년이 넘었건만 이처럼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밥을 대충 해놓고 어느 때와 다름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이어서인지 수원으로 가는 전철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친정이 가까이 있을 때만 하더라도 한 달에 한번은 꼭 문안을 갔었지만 서울로 오고부터는 일 년에 한 두 번 밖에 가질 못했다. 그것도 생일이나 명절이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칠순이 넘은 엄마는 아무 기별도 없이 쳐들어온 딸을 이상스레 생각했던지 물었다.

“별일은 없니? 양 서방은 잘 있고?”
“응, 엄마는 아픈 데가 없어?”

연지는 말꼬리를 얼른 돌렸다.

“왜 없겠니. 기계를 너무 오래 써서인지 아프지 않는 데가 한군데도 없구나. 요즈음 목욕탕도 귀찮아 가질 않는단다.”

연지는 무슨 생각을 했던지 엄마를 부둥켜 세우고 밖으로 데리고 나와 의자에 앉히고는 대야에 물을 담아 엄마의 발을 담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보는 발이었다. 엄마의 발바닥은 시멘트바닥처럼 단단히 굳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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