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참 힘들었지요?
(61)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참 힘들었지요?
  • 박정수 소설가
  • 승인 2005.10.07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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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손에 끌려 집안으로 들어온 연지는 깜짝 놀랐다. 훈이와 이천 도자기 전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산 꽃병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이걸 어째’ 연지는 깨어진 도자기 조각을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여자는 그릇이나 거울을 깨뜨리면 좋지 않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대 얻어맞는 편이 더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연지는 거실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깨어진 도자기를 들고 울고 있었다. 한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딸마저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술 취한 남편과 싸우기란 싫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된다는 그 생각밖에는 없었다. 연지는 얼마간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났다. 훈이와 부산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듯했다. 싸움 끝이라 하룻밤 지내고 돌아와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떠오르자 가방에 옷가지 몇 개를 집어넣고 딸 방으로 건너갔다.

“나 친구 집에 하룻밤 자고 올게. 냉장고에 만들어 둔 반찬 있어.”

연지가 밖으로 나오는데 딸이 계단까지 내려와 말했다.

“엄마, 조용히 생각해 봐.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엇이 옳고 그른 가를. 나는 엄마의 결정에 무조건 따를 거야. 엄마는 보통 엄마가 아니잖어, 엄마가 원하는 장밋빛 인생을 꼭 그렇게 찾아야 겠어?.”

딸의 말이 귀 너머로 들렸다. 발걸음은 총총 훈이가 살고 있는 동네로 가고 있었다. 연지는 핸드폰으로 훈이를 불러냈다.

“우리 멀리 여행 다녀와요. 지금 그리로 가고 있어요.”

누구보다 좋아하는 것은 훈이였다. 훈이는 벌써부터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은 상태여서 제주도로 가는 시간은 쉽게 바꿀 수 있었다. 비행기가 구름사이로 숨어들자 연지는 훈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여느 때보다 포근한 훈이의 가슴에 장밋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랑해. 너무너무 행복해.”

연지의 입에서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땅은 언제 팔려?”
“곧 팔릴 테지. 팔아 달라고 했으니까.”
“팔리면 내 딸과 같이 있게 해줘. 내 딸이라서 두둔하는 것은 아니고 참 착해. 책임져 줄 수 있지?”

연지의 본심이었다. 아무리 훈이가 좋아도 딸을 아빠에게 주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훈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었다.

“우리 2억 가지고 아파트 전세 얻고 거실에 아름다운 꽃도 장식하고 그리고 내가 피아노 치면 당신은 노래를 부르고. 생각만 해도 말년에 장밋빛 인생 같네.”

연지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고 있어서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다. 국산 피아노일망정 가지고 있는 학생은 반에서 지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예회 때는 피아노 독주도 했다. 친구들은 연지이가 나중에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지의 꿈은 피아노 연주자였다. 그래서 지방대학교 음악교수에게 레슨을 받으며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한 곡은 멘델스존의 소나타였는데 첫 코드가 계명으로 왼손에 ‘도 솔’ 오른손에 ‘솔 도 미'로 되어 있어 양 엄지손가락에 화성법이 가장 적은 비중이 오는 ‘솔’이 중복되고 비중이 큰 아래 근음 ‘도’와 멜로디에 해당하는 윗음 ‘미’는 힘이 없는 새끼손가락에 배열되어 있었다. 연지이가 첫 코드를 치자마자 교수는 소리를 질렀다.

“화성법을 배웠을 텐데 이게 뭐야. ‘솔’은 화성법에서 생략해도 좋을 정도로 비중이 적은 음인데 그 음을 이렇게 크게 들리게 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몹시 꾸중을 들었다. 처음으로 각 음의 화성적인 기능에 눈이 떠진 연지는 그날부터 각 화성의 기능에 따라 손가락마다 다른 비중의 힘을 배열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한 새로운 연습 때문에 연지의 손은 뒤틀리고 스케일에서는 새로운 운동량의 분배에 의해 실수가 연발하였다. 좋아지기는커녕 악화 일로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점점 구렁텅이에 빠지는 자신의 연주를 보며 울었다. 교수의 탄식 섞인 한숨과 연지의 눈물로 가득 메워져서 피아노 연주를 그만 두게 되었다. 시집 올적에 피아노를 가지고 오려고 했지만 집이 좁아 가지고 오지 못했다. 멈추었던 피아노도 다시 치고 싶었다.

비행기는 제주 공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옷차림이 신혼여행이나 가는 듯 했다. 그들은 비행기 제일 뒷좌석에서 부둥켜안고 있었다.

“우리 신혼여행 가는 것 같아.”
“신혼여행이 따로 있나요. 언제나 우리는 신혼생활인걸요.”

연지의 미간에 가까운 눈썹 끝부분이 살짝 올라갈 때는 천사와 같이 아름다웠다.

“그런가. 비행기를 타고 가니 그런 느낌이 들어서.”

두 사람은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행복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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