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여자는 문밖을 나가면 안돼
(60) 여자는 문밖을 나가면 안돼
  • 박정수 소설가
  • 승인 2005.10.07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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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남편은 밤 1시가 넘어서야 들어왔다. 여는 때 같으면 늦게 들어간다고 전화라도 하였지만 술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걸음도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혼자서는 집에도 찾아오지 못할 정도였다.

“야! 남편을 뭐로 보는 거야! 다른 집 여자들 봐. 당신같이 남편을 X으로 보는가?”

연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시작부터가 벼르고 들어온 듯했다.

“당신 말이야. 직장 다니네 하고 만나는 놈이 누구야. 그 새끼 누구냐고?”

연지는 그제야 남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더 이상은 참지 않을 모양이었다.

“왜 내 말이 틀렸어. 누구냐고 물었다.”
“그래. 와이셔츠에 립스틱 묻혀 주는 여자는 누구야.”
“내 애인.”
“남자는 여자를 가져도 죄가 안 되고 여자는 죄가 돼?”
“남자와 여자는 틀려. 여자란 말이야. 문밖을 나가면 안 돼.”
“그럼 집안에 앉혀놓고 먹이면 될 것 아니야.”

연지가 방으로 가면 남편은 방으로 따라오고 부엌으로 가면 부엌으로 따라 다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 이혼해. 이렇게는 당신과 살 수 없어.”
“이혼 좋아 하네. 누구 좋으라고?”
“내가 살아야겠어.”
“잘 났다. 잘났다고.”

남편은 곧 방으로 가서 방바닥에 한일자로 들어 누웠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지 않을수록 석호를 생각하는 마음은 깊어갔다. 딸 방이 은신처가 되어버린 연지는,

“눈으로 봤지. 정말 내가 못살아.”

연지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자 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엄마의 책임도 있어. 아빠가 저러지 않도록 해봐.”
“그래, 모두 엄마 탓이다. 아빠랑 잘 살아봐.”

연지는 딸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훈이에게 전화를 하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자기 어디야?”
“응, 메일 했었어.”
“당일치기로 가면 안 될까?”
“비행기 타고 부산 갔으면 좋겠다.”

연지는 아직 한 번도 비행기를 탄 적이 없다. 결혼 한 후, 제주도 신혼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시어머니가 온양온천에 가면 되지 무슨 제주도냐며 아들을 보고 야단치는 바람에 가지도 못했다. 완전히 가정의 포로가 되어버린 지나였다. 결혼하자마자 덜컹 아이가 생겨 아기를 낳자마자 남편수발, 아이수발에 매달렸고, 아이가 둘이 되면서 집안에만 묶여 살아온 20년. 이제 아이들의 학비에 보탬이라도 될까 문밖을 나온 지 5년이 됐다.

“나도 비행기 타고 싶어. 당신과라면 어디든 가고 싶어. 딸애가 수능시험 끝나고 갔으면 좋겠어.”

연지는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알았어. 우리 그때까지는 모든 게 해결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이혼했어.”
“정말?”
“그렇다니까. 일요일 첫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마지막 비행기 타고 오자.”

훈이의 제안을 연지는 받아드렸다. 훈이의 생각으로는 이번 기회에 연지의 확실한 뜻을 듣고 싶었다. 연지이가 이혼을 하지 않으면 땅을 판 돈으로 서울을 벗어나 시골로 내려가려고 마음먹었다.
연지는 한동안 옥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내려오지 않자 딸이 걱정이 되어선지 옥상으로 올라왔다.

“여기 있었구나!”

딸은 옆으로 바싹 다가와서 말했다.

“왜 왔니. 엄마가 머리 아파 바람 좀 쐬려 왔는데.”
“빨리 내려가 봐. 아빠가 그릇을 집어 던지고 야단이야.”

딸은 겁에 질려 있었다.

“옛날 버릇 또 재생이다. 부수든가 말든가. 돈 잘 버니 다시 사면되지.”
“무서워 죽겠어.”
“몰라. 그 인간 한평생 나 못 잡아먹어 야단이야.”

연지는 누구보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부르다가 대답하지 않으면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는 습관이 있었다. 아마도 목이 말라 부르다가 대답을 하지 않자 발작이 된 것이라고 짐작했다. 당장이라도 자식들만 없으면 집어던지고 석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너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엄마랑 나가자. 알았지.”

연지는 딸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말했다.

“엄마, 이혼은 불행의 끝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결혼이 불행의 끝, 행복의 시작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혼도 불행의 끝, 행복의 시작이 아니야. 엄마가 결혼에 그늘이 있었던 것처럼 이혼에도 그늘이 있을 수 있어. 어쩌면 결혼의 그늘에 비할 수 없는 짙은 그늘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 그늘이 우리에게 미칠 수도 있어. 아빠의 미운 점도 있지만 고운 점도 있잖아.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딸은 어른스레 말했다. ‘많이 컸구나. 그래서 빌어먹어도 자식을 공부 시키려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연지는 이혼 당하기 전에 이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어쩌면 딸을 위해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고 결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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