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탈영병 최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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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탈영병 최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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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에 갖게된 주민등록증

주민등록증 첫 발행시에 제출하는 신분작성서를 받아 든 동사무소 여직원은 고개를 들어 노인을 의아스럽게 쳐다봤다.

작성자란에 박창호(61.가명)란 이름 석자와 날인뿐 나머지는 전부가 공란으로 둔채 서류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왜 딴건 적질 않았어요" 노인은 "아가씨 그게 전부요 뭐 적을게 아무 것도 없어니 그대로 접수해줘요"

35년동안 자신이 사망처리된 줄도 모른채 경찰과 헌병의 추적을 피해 '도망자'로 살아온 사람. 37년전 공군 모부대를 탈영한 그날부터 시작된 모진 형벌의 길을 살아온 노인 탈영병 박창호씨. 탈영병의 공소시효는 7년. 그러니까 박씨나이 30에 죄값은 다 치룬 셈인데도 이후 30년을 검거 망상에 사로잡혀 두더지 인생을 살아온 불쌍한 노인.

박씨가 탈영한 기간 새 가정를 이룬 아버지(86세)는 하루가 멀게 찾아오던 헌병들이 지겨워서 아들을 사망신고 해버렸고 몇달만에 한번씩 야밤 담을 너머 집을 찾아드는 탈영병 아들에게 이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섬지방이 신분을 숨긴채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란 막연한 생각에 제주도로 숨어 들어간 박씨는 이곳에서 대학생시절 익힌 운전기술 덕분에 제주도 기관장들의 차량정비일을 도맡아 했고 18년동안 돈도 좀 모았단다.

은행통장을 만들고 싶어도 자기신분노출이 싫어서 그냥 몸에 지니고 다니며 주색잡기로 다 날렸고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도 피를 흘리며 병원을 도망쳤고 술판싸움에 억울하게 얻어터지고도 살려달라 애원하며 꿇어앉아 빌었단다.

경찰서에 불려가서 신분이 탄로나면 "이 몹쓸 죄인은 평생을 감옥생활을 해야한다"는 절박한 불안감때문에 '천사인양 무쇠덩어리인 척하며'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해 왔다는 얘기다.

어망을 걷어 올려야 하는 어부생활도 나이들어 힘에 부쳐 그만 접고 고향땅을 밟은 그는 한동안은 발품으로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만 온나라의 불경기로 노인은 거지생활로 들어서게 된다.

동창회사무실을 거처로 삼은 박씨는 아침 다섯시면 맨바닥에서 일어나 걸어서 한시간 남짓인 대구역주변으로 향한다. 무료급식소가 아침이면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침겸 점심요기를 끝내면 몇시간이고 걸어서 저녁밥급식소를 찾아 또 다른 한끼를 해결하고 누울 자리로 돌아오면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된다고 했다.

지난 4월 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동창들이 사망처리된 박씨의 신분회복을 위해 법원을 찾게 주선했고 7월에사 제적된 호적을 부활시키는 판결을 받아내어 40년만에 새 주민등록증을 8월달내로 발부받게 된다고 했다.

혈혈단신 혼자 살면서 도망만 다녔으니 주소가 있을 수 없고 무일푼이니 동산, 부동산란에 적을게 무엇이며 총각노인에게 딸린 식구들의 성명이 있을게 무어냐는 얘기다. 그래서 노인은 공무원 아가씨에게 설명하기가 부끄럽기도 복잡하기도 해서 "제발 아무것도 묻지말고 접수시켜주소" 라며 통사정했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 주민등록증이 발부되면 노인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어 매월 2,3십만원을 국가로 부터 받게 된다는 것이다. 노인은 이 돈을 몇달 모아서 제주도를 갈적에 주민등록증을 정정당당히 내밀어 승선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전번 자기 기사를 본지를 통해 읽었다는 박씨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장발장'인가요? 소설속의 그는 17년인가 18년인가를 감옥생활하고 나와서는 신분을 숨기고도 돈도 벌고 명예도 얻어 시장까지 올라간 호사스런 인물 이던데요"

"그런데 나는 이게 뭔가요. 37년을 두더지로 살면서 결국에는 거지가 된 불쌍한 인생 아닌가요"
실패한 자기얘기를 어디다 광고말아 달라고 신신부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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