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강(錢塘江) 조수소리를 들으며 죽으리라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전당강(錢塘江) 조수소리를 들으며 죽으리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모든 인간은 전지전능한다는 유일신(唯一神) 조차 어찌 해볼 수 없는 개인만의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사례 근거는 인류사에 부지기수(不知其數)이지만, 나는 여기서 수호지(水滸誌) 등장인물 가운데 노지심(魯智深)이라는 호걸적 승려의 사례를 들어 얘기 해본다. 노지심의 스승인 지진장로는 작별하고 떠나가는 제자 노지심에게 게문(偈文)을 주었는데, 게문의 끝귀절에는 ""너는 전당강(錢塘江) 조수소리를 들으며 죽으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노지심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기 전에는 송나라의 위주(渭州)고을에 있는 '경략부'소속의 군관(軍官)이었다. 직위는 제할(提轄), 속명은 노달(魯達)이었다.

수호지에 노지심의 인물묘사를 보면, 노달은 거인으로서 둥그런 얼굴에 코는 주먹만큼 크고 귀는 부채만큼 크게 생겼는데, 입은 넓죽한 것이 위엄 있게 쭉 찢어졌으며, 키는 여덟자나 되고, 허리는 서너 아름 되어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 천부적인 천하장사였고 무예가 출중했다.

노달은 남달리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었는데, 성격이 불같이 급해서 제지가 되지 않았다. 노달은 우연히 길을 걷다가 18∼19세 정도의 김취련(金翠蓮))이라는 처녀와 아버지가 위주의 장원교(壯元橋) 다리 쪽에서 고깃간을 경영하면서 깡패 짓을 일삼는 자칭 진관서(鎭關西)라는 별호는 쓰는 정도(鄭屠)라는 자로부터 길에서 모진 구타를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김취련은 슬피 울면서 행인인 노달에게 구원을 호소했다. 노달을 향한 김취련 부녀가 받은 봉변을 당하는 속사정에 의하면, 진관서는 타향에서 가난의 고통을 받는 김취련 부녀에게 취련이가 자신의 첩이 되어 준다면 돈 삼천관(三千貫)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의지할 곳 없는 타향에서 당장 호구지책이 막막한 부녀는 진관서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한다. 진관서는 약속한 돈을 주기 앞서 김취련부녀를 윽박질러 영수증을 먼저 받고 취련을 첩으로 삼아 강간을 하고, 약속한 돈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관서의 음모인지, 진관서 본부인의 음모인지, 진관서 부부의 짜고 치는 사기인지 , 석 달도 못되어 김취련 부녀는 진관서 본부인으로부터 구타를 당하며 길에 내쫓겼다. 길에서 슬피 울고 있는 김취련 부녀에게 진관서는 그동안 숙식비와 돈은 내주지 않고 먼저 받은 영수증을 내밀며 주지않은 돈 삼천관을 내놓으라고 때리고 협박하며 영수증을 근거로 김취련이를 창녀촌(娼女村)에 팔아 먹으려 한다는 김취련의 속사정을 들은 노달은 불같이 노했다.

노달은 진관서에게 비인간적인 깡패짓을 꾸짖었다. 깡패인 진관서가 노달의 호통에 호락호락 고개를 숙일 위인이 아니다. 진관서는 독기 품은 눈으로 오른손에 고기 칼을 들고 왼손으로는 노달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고기에 칼질하듯 하려 들었다. 노달은 전광석화처럼 발로 진관서의 뱃대기를 걷어차고 이어서 주먹으로 힘껏 진관서의 정수리를 내리치니 진관서의 대갈통은 피투성이가 되더니 죽고 말았다. 노달이 진관서의 시신을 흔들며, "제발, 일어나 주게." 애걸복걸했지만, 진관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정의감이 충만한 노달은 졸지에 살인 군관이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노달은 살인자라는 체포령을 받게 되고, 군관의 옷을 벗어 던지고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다. 노달은 급기야 오대산(五臺山)의 문수원(文殊院)에 출가하여 삭발하고 노행자(魯行者)가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당시 문수원의 주지는 깨달아 득도(得道)했다는 명성이 높은 지진장로(智眞長老)였다. 훗날 지진장로는 법당에서 부처님을 대신하여 노달에게 수계의식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법명을 주었다. "영혼의 광채 한번 빛나니, 가치가 천금이로다. 불법(佛法)은 광대무변하니, 법명을 지심(智深)이라 한다." 지진장로는 냉철한 지혜없이 성급히 행동하여 사고를 치는 노달의 성품을 통찰하여 깊은 지혜로써 언행하라는 뜻으로 지심(智深)이라는 법명을 내린 것이다.

지진장로는 노지심에게 간절히 계언(戒言)을 주었다.

"지심아, 네 아무리 무부(武夫) 출신일지라도 불문에 들어온 바에야 계(戒)를 지켜야 한다.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음행하지 말고, 술마시지 말고, 망언을 해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여 계를 지키겠습니다."

노지심은 처음 4∼5개월은 계행을 지켰지만, 그러나 다년간 익혀온 속세의 습(習)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노지심은 남몰래 사찰을 빠져나가 마을 주점을 찾아 술을 두주불사(斗酒不辭)로 마셨고, 대취하여 산문을 부수고, 술을 마신 것을 꾸짖는 승려를 폭행하고, 힘으로 정자를 무너 뜨리고, 급기야는 산문(山門)을 지키는 금강신장상(金剛神將像)까지 때려 부셨다. 한 손에는 술병을 들어 목에 붓고, 다른 손에는 구운 돼지 다리를 씹어 먹으면서 행패를 부리는 노지심을 문수원의 대중 승려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술취한 노지심과 대중들과 치고 박는 난투극(亂鬪劇)이 벌어졌다. 힘이 장사인 노지심을 보통 승려들이 제압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노지심의 힘에 열세로 얻어맞던 대중들은 황급히 지진장로에 몰려가 고변했다. 지진장로는 수차 노지심을 두호했으나 더이상 두호할 수가 없었다. 지진장로는 노지심이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가 열냥의 노잣돈과 편지 한통과 노지심이 장차 맞이할 예언의 게언(偈言) 넉 줄을 적어 주면서 말했다.

"지심아, 너는 오늘 여기를 떠나야 하겠다. 너의 상습적인 주폭(酒暴)은 더 이상 이곳 문수보살의 도량으로서는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편지는 나의 사형인 동경(東京) 대상국사(大相國寺)주지 지청선사(智淸禪師)에게 올려라. 너를 돌봐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 게언(偈言)은 네가 종신토록 기억해야 하는 계문(戒文)이니 절대 잊지 말아라. 알겠느냐?"

노지심은 스승인 지진장로가 준 적어준 게언 즉 문자예언을 당시는 깨달을 수가 없었다. 노지심은 게언을 적은 종이를 소중히 봉투에 담아 걸망에 담고서 뜨거운 눈물속에 스승인 지진장로를 작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지심이 받은 게언은 다음과 같다.

숲을 만나 일어나고,

遇林而起

산을 만나 부하고,

遇山而富

고을을 만나 옮기고,

遇州而遷

강을 만나 멈추어라.

遇江而止

그 후, 노지심은 전생의 인연따라 양산박에 들어가 108호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가 마침내 조정에 귀순했다. 노지심은 전장터를 누비면서 송나라에 큰공을 세워 황제로부터 특사를 받고 정장(正將)의 신분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노지심은 방납(方臘)의 난을 평정한 개선장군의 한 사람으로 항주의 육화사(六和寺)에서 머물게 되었다. 노지심이 밤에 잠을 청하는데, 별안간 육화사 근처인 전당강(錢塘江)에서 조수(潮水) 소리가 우뢰소리 처럼 크게 귀에 들려왔다. 그는 함곡관(函谷關)의 서쪽 관서(關西)출신이기 때문에 이곳 절강(浙江)지방의 조수소리 즉 조신(潮信)을 알지 못했다.

조신소리에 놀란 노지심을 보고 육화사의 승려들이 말했다.

"전당가의 조신소리는 하루에 두 차례 낮과 밤에 밀려오는데 시간을 어기는 일이 없습니다."

노지심은 승려의 말을 듣고 문득 예전에 받은 지진장노의 예언의 게언이 떠올랐다. 그는 게언을 깊이 생각하다가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이 손뼉을 치고 대소하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 사부님 지진장로께서 내게 전날 게언을 주셨지. "강을 만나 강의 조수소리를 들으며 원적(圓寂)한다'했으니 이 무슨 뜻인고? 여러 대사님들, 원적(圓寂)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한 노승이 일어나 합장하고 인사하며 말했다.

"출가한 승려로서 아직까지 그런 것 쯤 모른단 말씀이오? 불문에서 원적이라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지요."

노지심은 이 소리를 듣고는 지진장로의 게언의 끝 귀절인 우강이지(遇江而止)의 뜻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깨끗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승복으로 갈아입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선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천명에 순응하여 호흡을 멈추었다. 그의 선상 밑에는 다음과 같은 노지심의 사세(辭世)의 글이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한평생 착한 일을 못하고, 살인과 방화만 했고나. 땅 위에 얽혔던 업보의 쇠사슬 끊어지고, 한 가닥 남은 인연 줄 끊어 버리니, 아아, 전당강( 錢塘江) 조신(潮信)이 올 때 홀연 나는 깨달았도다."

노지심의 다비식 때 중국 오산십찰(五山十刹)의 대선사와 승려들이 모두 와서 천도의 경을 읽었고, 경산(徑山)의 대혜(大慧) 대선사(大禪師)가 천도의 법문을 다음과 같이 했다.

"노지심이여, 노지심이여, 녹림에서 몸을 일으켜 불을 뿜는 두 개의 눈으로 사람을 죽이는 마음 한쪽뿐이더니, 홀연히 조수를 따라 돌아가매 과연 흔적이 없도다. 허허 잘도 하늘에 백옥을 날리고, 대지를 황금으로 만드는 도다."

노지심의 최후를 의미하는 게언 "강을 만나 죽을 것이다.(遇江而止)"는 지진장로의 계언은 우주를 통찰하는 깨달은 고승만의 예언이었다. 노지심이 세상을 떠난 후, 불문(佛門)에는 노지심파(派)가 생겨났다. 한국에도 노지심파가 활약해온지 오래이다. 승려가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초탈하여 때에 따라서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고, 불문과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서 적당히 완력을 쓰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노지심파 들이다. 조계종에 분규가 일어나면, 언제나 전국에서 몰려 상경하는 자들은 노지심파들이다. 그들도 모두 은사의 예언적 게언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까?

모든 사람은 각기 타고 난 정해진 운명이 있다. 어찌 인간만이 정해진 운명이 있을까. 통찰하면,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모든 것이 인연법에 의해 생(生)했다가 인연이 다하면 멸(滅)하는 것이다. 개인에게는 개인의 운명이 있고, 국가에는 국운(國運)이 있다. 개인의 운명은 개인이 알게 모르게 지은 업(業)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고, 국가의 운명은 국민이 어떤 생각으로 단결해 있는가에 따라서 국운이 정해지는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에 신라국, 백제국, 고구려국, 고려국, 조선국이사라지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것은 분석해 보면 국민들이 변화의 주역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작금의 천체물리학자들은 그동안 믿어왔던 창세기(創世記)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새로운 창세기를 써야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에는 1천억개가 넘는 태양계가 있다고 주장한 지 오래이다.

끝으로, 천지 창조에 지구가 중심이라는 창세기는 이제 과학으로 깨어난 국민들에게는 설득력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나는 주장한다. 지구를 포함하는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인간이 희망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전지전능한 유일신에 의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지혜를 얻는 것이 중요하고, 나에게 대지혜가 없다면, 대지혜가 있는 선지식을 찾아 대지혜의 설법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주장한다. 한국 불교계에 지진장로와 같은 통찰자가 존재할까? 어느 산, 어느 고찰에 주석하는 것일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