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남자들은 돈 달라면 달아난다
(52) 남자들은 돈 달라면 달아난다
  • 박정수 소설가
  • 승인 2005.06.0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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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가 자리에 앉아 기업체 총록을 뒤적이며 사장의 명단을 들추기고 있는데 부장이 인터폰으로 불렀다.

“이리와 앉아요. 이 달의 실적이 왜 이래요. 이러다가는 지나씨 쫓겨나요. 이 리스트를 줄 테니 한번 해 봐요.”
“고맙습니다. 부장님.”

연지가 나오려는데 부장이 등 뒤에서 말했다.

“지난번 말한 것 잊지 않았지요?”
“네,”
“어떻게 하기로 결정했어요?”
“좀더 시간을 주세요.”

연지는 부장이 준 리스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읽을 수 있었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 돌아오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지나에게 쏠리는 것 같아 얼른 자리에 앉았다. 몇 군데를 전화해 보았지만 워낙 경기가 없어서인지 오다가 나오질 않았다. 그럴수록 아침에 선아가 돈 많은 남자를 구해 줄까하고 말하던 것이 지워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선아는 별로 오다를 끊는데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돈 많은 남자를 물어 생활비를 대어 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연지는 선아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오늘 내가 저녁 살까?”

연지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했다.

“그래요. 언니, 내가 맛있는 집으로 안내할게 ”

연지는 하루 종일 전화를 했지만 단 한 건도 못했다. 부장이 준 리스트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온 것이라서 모두 거절당했다. 퇴근할 적에는 단 한 번도 혼자서 호텔을 나올 자신이 없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나왔다. 지나에게는 출근을 하거나 퇴근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아무리 직업이라고 해도 호텔을 출입하는 것이 창피해서 퇴근할 때는 꼭 다른 사람과 어울려 나왔다. 오늘은 선아와 함께 마음에도 없는 팔짱을 끼고 나왔다. 선아는 지나와는 달랐다. 항상 호텔 앞에 차가 대기하고 있어서 그 차로 몸을 숨겼다. 오늘은 직원들 간에 회식이 있다는 핑계로 애인을 오지 말라고 했다며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식집으로 연지이를 끌고 들어갔다.

“언니, 다음 달부터 나는 그만둘 거야.”
“잘 됐다. 정말 잘됐다.”

연지는 선아가 부러웠다.

“지금 이 남자도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펑펑 쓰지만 좀 짜게 나오면 걷어 찰 거야.”
“어떻게 그리 쉽게 땔 수 있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떻게?”
“돈 빌려달라고 졸라대면 십중팔구는 떨어져. 처음에는 5만원만 빌려 달라면 아주 순순히 준다. 그러다가 금액을 높이는 거야. 천만 원만 빌려 달라면 전화도 잘 안와. 내가 전화하면 돈 빌려달란 줄 알고 약속 있다며 만나주질 않아. 그럼 또 다른 놈 구하면 되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다 도둑놈들이야. 멀쩡한 부인 두고 이혼했다는 놈이 없나,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놈이 없나. 그런 놈들 돈 있으니까 바람피우는데 뭘.”

선아는 아무렇지 않는 듯 백 속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언니도 잘 생각해봐. 여자란 물 나올 때 여자지 안 나오면 어느 남자가 거들떠보기라도 한데? 그렇다고 거기에 매달려있어도 표 나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해보니 알겠는데 섹스란 말이야. 하면 할수록 는다. 이 남자 저 남자 해보면 재미도 있고.”
“그래도 남편한테 죄 짖는 기분이 들지 않겠니?”
“웃기는 소리 그만해. 부부란 헤어지면 남이야. 피가 한 방울 섞여 있는 것도 아니잖아. 완전히 남이라고. 남편이란 사람이 내가 죽으면 같이 따라 죽을 사람도 아니고. 언니가 병에 걸려 죽어봐. 돌아앉아서 웃는다. 한 달도 못가서 재혼한다며 이 여자 저 여자 넘볼 텐데.”
“그건 그래“

연지는 억지로 맞장구를 쳤다.

“언니, 내가 돈 많은 놈씨 하나 구해줄게. 그 놈씨는 처음에는 돈을 펑펑 쓴다. 그러나 얼마안가면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돈을 잘 안 쓰거든, 그 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떨어져. 그런데 그 놈씨는 거기에 구슬을 박았어. 끝내준다. 하고 나면 며칠간 얼얼해“
“같이 잠자리까지 해 봤군?”
“왜 동서지간이면 어때? 벌써 놈씨 것은 배설한지 오래 되었다고요.”
“싫다 얘. 돈에 환장했니?”
“이런 남자도 있고 저런 여자도 있는 게 아니겠어. 남자 것은 언제나 새 거야. 여자들은 이 남자 저 남자 것을 받는다고 하자. 그러나 남자 것은 언제나 새것이 나오는데 뭐가 어때?
“싫다면 관둬.”

보나마나 선아와 썸싱 있었던 남자를 소개해 줄 모양이었다. 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돈이 좋더라도 알고서야 어떻게 그 남자를 소개해 달라고 말할 수 있나 .
핸드백에서 밸이 울렸다. 훈이의 전화였다. 연지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나야. 오늘 너무 힘들었어. 오늘 하루 종일 당신 생각했지 뭐야. 우리 내일 만나. 내일 저녁에 이리로 올래? 차를 갖고 와. 당신 품에 안기고 싶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내일은 안 되겠다. 약속이 있어.”
“무슨 약속?”
“그런 일 있어.”
“여자 만나는 것 아니지? “
“아니야. 절대로!”

연지는 석호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고서는 폰을 접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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