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의원이 그리도 두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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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의원이 그리도 두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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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노대통령 다음으로 싫어하는 김 의원 인터뷰

 
   
  ^^^▲ 2003년 제주민족평화축전 당시 개막 테이프를 컷팅하는 김원웅 의원(좌에서 네번째)
ⓒ 김원웅 의원 홈페이지^^^
 
 

(기획인터뷰)4월 들어 김원웅 의원에 대한 보도가 많다. 아직까지 최고의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부터 CBS까지 한다하는 언론들이 김 의원에 대해 보도했다.

조선일보 내부사정에 밝은 모씨는 조선일보 상부에 도는 말이라며 “김원웅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조선일보 왕국이 싫어하는 x"이라고 했다.

그간 무슨 사정이 있었기에 김원웅 의원이 언론의 조명을 받는지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편집자 주>

지난 4월1일자 조선일보에 ‘김원웅, 최순영의원 투기의혹’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2일 열린우리당(열린우리당#뉴스타운) 제2차 전국 대의원 대회가 열렸고 한나라당(한나라당#뉴스타운)은 ‘김원웅 의원, 필부면 필부다워야지요’란 제하의 보도자료 논평에서 김원웅 의원이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것을 겨냥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쯤 되면 다를 줄 알았다. 그들은 온 몸으로 개혁을 주장해 왔었고 개혁의 화신이라는 점 때문에 국회의원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부동산을 구입해서 100배의 차익을 냈을 때 김원웅 의원은 부동산 투기꾼들과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줬나?”고 비난 했다.

조선일보 보도 기사 내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돌았던 이야기로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루머였다. 그러나 이를 조선일보는 인터넷상 떠도는 루머가 아닌 사실인양 ‘의혹’제기를 했다.

하필 김 의원은 당의장에 출마해 결정의 순간인 전국 대의원대회를 하루 앞두고 있었고, 조선일보(조선일보#뉴스타운)측은 김 의원의 ”기사화를 대의원대회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묵살하고 대의원대회 전날 의혹기사를 보도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논평을 냈다. 이에 뉴스타운(뉴스타운#뉴스타운)에서는 김원웅(대전 대덕구, 3선)의원을 인터뷰해 사건의 전말을 짚어 보기로 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의원은 1983년 6월 경기 용인시 보정리 87 일대의 밭 1800여평(취득당시 평당 4500원)을 2000년 평당 50만원 이상에 토지공사에 수용돼 그린벨트 지역의 밭을 매입한 후 되팔아 차익을 남겼다는 땅 투기 의혹에 대해서?

“국회의원 하기 전(41세경)인 1983년도에 1,800여평의 밭과 밭에서 100m도 안 떨어진 농가주택을 사 부모 형제들이 이주해 실제 영농에 종사하며 생활했습니다. 밭농사는 물론 돼지도 키웠고 꿩 사육도 했으며 비닐하우TM에서 화훼농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거주하시던 농가주택을 1991년에 매각해 지역구를 관리하는 선거비용에 사용했고 1,800여평의 밭 중 200평을 형질 변경 주택을 신축 부모께서 생활하셨습니다.

1983년에 실제 농사를 짓기 위해 밭과 집을 샀고 팔은 집 대신 거주를 위해 대지로 형질 변경 집짓고 살다가 2000년에 고스란히 토지공사에 강제수용당한 것이 투기일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의혹은 1986년 용인시 상현동 385-1,2의 밭 840평을 매입하고 주민등록을 옮겨 놓았고 상현동 땅 일부 410평은 2000년 5월 6억4000만원에 교회에 매각됐다며 위장전입으로 자연녹지의 밭을 매입한 후 되팔아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제기에 대해?

“보정리와 상현동은 인접한 동네로 상현동 밭을 840여평 영농목적으로 1986년 매수했고 실제 영농에 종사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수용 당하기전에 부도난 모 친지가 가족을 이끌고 살게 해달라고 보정리에 오게 됩니다. 함께 생활하던 중 보정리 밭이 수용돼 오갈 데가 없게 되자 상현동 밭 840평 중 200평은 대지로 형질 변경해 건축비는 친지가 부담 건축등기를 해줬고 410평은 2000년에 매각했습니다.

보도 내용에서 매각 시점을 매입 후 4년이 지난 때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14년이 지난 시점이며 위장 전입을 하려고 했으면 해당 토지와 100m 떨어진 부모님 댁에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실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곳에 주민등록을 한 것입니다“

-요즘 새롭게 떠도는 루머인데 대장동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지금 거주하는 곳이 분당구 궁내동인데 대장동은 인접한 동입니다. 해서 3년 전에 텃밭으로 사용코자 360여평의 밭을 매수 현재 은행나무 등이 심어져 있으나 도시계획상 360평 모두 도로에 편입돼 있어 도로에 편입되지 않은 다른 밭의 시가 3분지 1정도에 수용된다고 합니다. 도로에 편입될 밭을 멍청하게 사서 손해 보는 게 투기가 될 수 있습니까?”

-MBC측 50만 달러를 김의원이 떼먹었다는 보도에 대해?

“지난 2003년 제주평화축전 당시 북측은 운동선수 200명 응원단 200명 등 합계 400명의 인원이 행사에 참가하기로 합의했고, MBC(MBC#뉴스타운)측과는 300명이 참가하는 것을 전제로 주간방송사로서 독점방영권을 갖고 50만불 선불 50만불 후불을 북에 제공키로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참가인원이 200여명밖에 오지 않았고 MBC측은 선불 50만불이 북에 넘어간 상태에서 제반사정상 독점방영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북측과 제2차 평화축전 개최 시 방영권을 MBC측에 넘기는 방안을 협의해 MBC측에 이 같은 내용을 제안 문서로 오간 상태입니다.

현재는 북핵문제로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있지만 6자회담 재개 등 한반도 정세가 호전되면 남북간의 문화체육교류가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북측에 제공된 50만 달러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이 내용을 최근에 보도한 CBS측과 정치권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민족평화축전 행사는 북과 남의 사단법인과의 계약 즉 사인간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행사로 정부의 자금을 사용한 게 아닙니다. 이에 CBS측에서도 보도가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재보도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왜 조선일보는 김 의원에 대해 마타도어를 하나?

김원웅 의원은 지난 4월2일 열린우리당 제2차 전국대의원 대회 당시 당의장 후보 연설에서 “조선일보가 안티조선운동을 맨 처음 나선 본인 죽이기에 나섰다”며 “정치적 생명을 걸고 조선일보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한 바 있다.

도대체 김 의원과 조선일보 간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기에 김 의원은 조선일보에 대해 선전포고를 공개 표명 했을까?에 대해 물었다.

-왜 조선일보가 김 의원에 대해 마타도어(흑색선전)를 한다고 보나?

“조선일보와의 악연은 지난 2001년부터입니다. 당시 708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 상당수가 조선일보 원 사주였던 방응모가 수괴급이 아닌 광산을 한 졸부에 불과하고 당시 사회의 지도자급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명단에 넣기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모윤숙, 김기창, 홍난파 등 당시 명단에 들었던 친일 예술인들이 수괴급이란 말 이냐?는 이유를 들어 방응모도 명단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명단에 넣었습니다. 이때 본인의 역할이 조선일보 측에 전달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독립기념관의 조선일보 윤전기 철거로 본인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조선일보 측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철거시켰습니다.

세 번째는 지난 충북 옥천에서 있었던 1박2일간의 안티 조선 MT 당시 ‘조선일보가 지금처럼 독자가 많아 여론형성을 하게 되면 통일은 안 된다.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조선일보가 논조를 바꾸던지 조선일보가 없어지든지 해야한다’는 연설을 한바 있고 이 내용이 보도됐는데 이를 두고 조선일보측은 ‘이런 사람이 국회의원 이냐?’고 했습니다.

네 번째는 지난 제주에서 행사된 민족평화축전당시 행사를 마친 북측 비행기가 기상상태로 몇 시간 이륙이 지체된 적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북측이 돈 달라며 떼쓰느라고 이륙하지 않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했고 본인은 이 보도에 대해 ‘조선일보는 민족을 이간시키는 언론이며 반통일 반민족 언론이다’는 성명을 낸 바 있습니다.

이런 제반의 본인 행동이 조선일보 측에서 볼 적에 못마땅했을 것이라 짐작되며 그 결정판이 금번 4월1일자 투기의혹 기사입니다.“

김 의원은 인터뷰 내내 조선일보 측의 기사에 대해 본인을 “부동산 투기꾼으로 매도하기 위한 조선일보 마타도어(흑색선전)의 일종이다”며 “그동안 안티조선에 앞장 서온 김원웅 죽이기의 일환이다”고 주장했다.

또 김 의원은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신 독립운동가인 민족문제 연구소의 조문기이사장이 독립 운동가였던 선친 생존 시 조선일보가 기사화한 “보문리에 위치한 선친 집에 자주 오셔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형제들을 보았었다”는 말을 전해 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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