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향이 좋았다.
태진이 원두 커피를 즐기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커피 원두가 수동식 믹서기에 갈리면서 내는 향,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가 내리면서 풍기는 향이 좋아서였다.
커피잔을 들고 창가에 섰다.
주위는 적막했다. 이중으로 설치된 베란다 창문의 방음 때문인지 작은 소음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곳 정릉 청수장 근처에 거처를 정한 지도 벌써 4년째 접어들고 있었다. 그동안 진희를 제외한 누구도 초대하거나 방문한 적이 없는 완벽한 아지트였다. 업무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마포강변 한신 오피스텔을 이용했다. 적어도 이 아지트만은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만의 은밀한 공간으로 가꾸고 싶었다.
태진은 이제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온 일을 빈틈 없이 실행에 옮길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오늘 방송국 복도에서 소영이를 보고 낄낄 거린 최 PD와 카메라맨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소영이에게 그런 추잡한 생각을 품고 있는 녀석들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 저 좌우로 흔들리는 엉덩이의 삼각 팬티 라인 좀 봐.’
‘…… 저런 애하고는 쫄쫄 굶으면서 며칠을 침대에서 함께 뒹굴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거야.’
“개새끼들!”
태진은 거칠게 욕을 뱉어냈다.
녀석들은 자신이 뱉어낸 말로 인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 온 것처럼 녀석들도 그만한 고통의 순간을 맞게 할 것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소영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쓴 연놈들은 그보다 몇 배의 피해를 보아야만 했다. 물론, 당하는 연놈들은 누가,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차가 왕창 부서진다든지, 집에 불이 난다든지, 밤길을 걷다가 칼에 찔려야만 했다. 때론, 컴퓨터로 포르노 장면의 남녀 얼굴에 연놈의 얼굴을 합성해서 방송국 안에 수십 장씩 뿌려 참새들의 입방아에 올라 곤욕을 치르게도 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종이 장미를 접기 시작했다.
최 PD를 테러한 후에 남겨줄 검정색 종이 장미였다. 종이 장미는 소영이 늘 가슴에 달고 다니는 장미와 똑같은 것이었다. 종이 장미 두 송이를 접은 다음, 서랍에서 손잡이를 상아를 조각해 만든 칼을 꺼냈다. 잘 벼린 칼날이 어둠 속에서 번뜩 서늘한 서기를 뿌렸다. 이미 피 맛을 본 칼이었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이 솟구치며 가벼운 흥분이 치밀어올랐다.
“기다려라. 이 칼이 네놈들의 피를 부르고 있다!”
태진은 허공에 칼을 ‘휙’ 바람 소리가 나도록 그으며, 음산하고 잔인한 웃음을 흘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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