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선진국"은 저능아들의 입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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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선진국"은 저능아들의 입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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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이 빠진 선진국은 불가능

선진국 진입이 경제달리기 마라톤 경주로 가능한가? "선진국=경제"로 착각하는 후진국 저능아들의 주장이 진실처럼 착각되어 왔다. 이에 대해 정반대로 생각을 바꿔야만 선진국의 문턱이라도 똑바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정리해본다.

“경제 살리기”, “민생 챙기기”를 임기 중에 거론했던 대통령들 중에서 지금까지 성공한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개혁에 대한 밑바닥이 드러나면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다. 특히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박수와 존경을 받기는커녕 스스로 능력과 자질에 한계가 느껴지면 습관적이고도 체념적인 의미로 “경제”와 “민생”을 거론한다. 사실 대통령이 경제,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당연하다. 따라서 대통령은 민생이나 경제는 각 분야 전문가에게 맡겨놓고 국가개혁(의식구조 향상과 가치관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자조 섞인 의미로 “경제나 민생”을 거론했을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이런 말을 내뱉는 대통령들은 국민에게 무능과 실정을 감춰보려는 말장난이다. 결국 국민에게 거짓말로 속임수를 부리는 결과밖에 없었다.

사실 경제에 대한 관점은 전문가든 우리 국민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생각해왔다. 따라서 “경제 선진국”이라는 이야기는 “민주주의 자질에 전혀 관계없는 봉이 김선달이나 놀부도 돈만 많이 가지면 양반”이라는 말과 같다.

한국은 외형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다. 하지만 실제 국민의식은 여전히 집안(가부장)과 가문(자기조상)과 연고(혈·지·학연)에 뿌리를 둔 후진성에 머물고 있다. 왜냐하면 집안과 가문과 연고와는 완전히 반대가 되어야만 자유와 평등과 인권과 복지라는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과 가정과는 완전히 반대가 되어야만 자본주의의 공정 분배와 소득 균형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미개국과 원시부족들은 수천 년 역사가 흘렀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암울했을 당시에는 후진성이 근간이었으며 이를 절대 배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통이나 관행을 배제하더라도 달리 뾰쪽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답답한 수준에서는 자유, 평등, 인권, 복지라는 개념 역시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물론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질서나 체제에서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어른이나 기득권들은 자유 평등 인권 복지라는 개념이 들어오면 곧바로 붕괴될 것이기 때문에 좋아 할 리도 없다. 그래서 안팎으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더욱 무지해졌으며 결국 나라를 빼앗겼다.

어쨌든 현대인은 과거와는 정반대 개념(자유, 평등, 인권, 복지)으로 자발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개인과 관련된 일차원적인 인연과 정분 관계만으로는 자신이든 사회든 세상이든 문화든 과학문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다수가 모인 사회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 설정, 합리적인 시스템 조성, 효율적이고 차원이 다른 월등한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전적인 사조들 곧 자연주의, 개인주의, 고전주의 방식을 과감히 걷어 부치고 사회 일반에 널리 적용되는 공통 의식과 관계와 사회를 설정해서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엉망인 사회를 보면서도 혼자 도(道)를 닦아서 도인이 되거나, 신선이 되거나, 해탈하고 영생을 얻는 등 서양과는 정반대였다. 이는 기어코 초라한 자기 자신을 물고 늘어져서 깨우치고 미화하고 장식하고 결국 혼자만 높은 경지에 도달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는 것처럼 도인과 중생으로 구분해버렸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안목이 결여된 탓으로 답답한 모습들이 무의식에 세뇌된 상태로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는 개인의 인연과 정분과 인간미와 수양이 아니라 세상 전반에 대해서 이성, 상식, 법, 이상, 상상, 평균, 전체라는 개념으로 스스로 바꾸고 향상하면서 포괄적 인간애(휴머니즘)로 새로 태어나야 옳다. 이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탓에 수천 년을 심한 차별로 얼룩진 채 미개한 수준에 머물렀다.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합작품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공짜로 얻어놓고도 감당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는 남들이 이루어놓은 훌륭한 합작품을 보고 먼저 반성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을 앞에 두고도 마음속에서는 과거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얻어놓은 밥과 돈으로 취급해버렸다. 그래서 석고대죄와 개과천선이 필요했던 독재자나 부패 공무원이나 악덕 기업주나 대재벌들이 사회 모든 분야를 소유하고 독차지 하려고 덤벼들었다. 이어서 일반 국민들도 경쟁적으로 대열에 합류했으며 계속 줄을 섰다. 힘이 부족한 사람들은 서로 뭉쳤으며 뭉쳐서 얻어진 힘으로 주도권을 장악하자 더 이상 지향점도 없었다. 이는 온 국민이 수준 높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몸담은 채 과거 한풀이를 하거나, 오직 개인 생각만을 하는 등 과거 조상들의 행적 그대로 반인륜, 반인권, 비민주, 비인간적인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비판이 제기되어도 “과연 자신이 어떤 수준인가”를 따지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각, 입장, 인간성”을 적당히 변명하고 얼버무려왔다. 다시 말해서 양심이나 무의식에서는 자신의 수준을 인정하면서도 적당히 둘러대고는 방치한 채 더 이상 듣기조차 싫어한다.

물론 우리는 선진국 덕분에 해방되었고, 전쟁에서 겨우 살았으며, 수고 없이 공짜로 자본주의를 얻어서 극심한 빈곤을 벗고, 부자도 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그러자 열등의식으로 가득했던 국민들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잊은 채 마치 한국과 국민성이 위대한 것처럼 착각하고 떠들기까지 했다. 또한 금방 선진국이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수준은 일당독재, 군사독재, 군인정치, 투쟁과 싸움, 갈등과 대립과 분열하는 등 당파싸움 수준을 벗지 못했다.

한국의 60-70년대에 국가적으로 진행된 것은 근대화를 위한 경제개발 뿐이었으며 더 이상의 국가 목표는 없었다. 아직도 당시에 불렀던 새마을 노래가 귓가에 쟁쟁하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렇게 잘 먹고살 것을 목표로 시작해서 개인적으로 살만해지자 곧바로 자화자찬하면서 엄청난 이기심과 호의호식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국은 망국적인 과거 의식을 제대로 청산하지도, 스스로를 반성해볼 기회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를 끌어안고 과거 잘못들을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새롭게 출발하는 최소한의 성숙한 과정도 없었다. 그리고 이후 지금도 비슷한 수준에 머문 채 국가적인 방향조차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돈이 없어서 심각한 사회가 아니라 오직 돈밖에 모르는 사회여서 문제다. 그래서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싸우고, 재판하고, 서로를 해치고, 살인이 벌어지고, 자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돈만 있으면 인간미로 철철 넘칠 것 같았던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돈으로 인해 비민주적, 비인간적, 비상식적으로 전락한 채 곳곳이 썩고 타락하고 무너지고 자살하게 된 것이다. 이토록 넓고 대단한 세상에서 겨우 개인과 가족이 먹고사는 것이 목표인 수준인지라 더 이상은 알 바도 아니다.

이미 가치 지향적인 삶과 공동체로서의 복지국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조차 까마득히 잊었으며 대충 먹고살기에 바쁘다. 돈으로 굶주림에서는 벗었지만 나머지는 돈 때문에 잃고 망쳤다. 돈 때문에 자기 자신을 망치고, 자녀까지 망치고, 이웃과 사회를 망치고, 청소년을 망치고, 국가를 망치고, 장래를 망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근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으며 대통령, 학자, 전문가, 언론 등 소위 지식인들이 “경제”=“선진국”=“사회 문제 해결”처럼 착각하고 있다. 먹지 못해서 배가 굶주린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국은 경제 타령을 그만해야 한다.

선진국 진입은 마라톤과 달라서 경제 달리기로는 불가능하다. 선진국을 향해 경제정책과 경제지표를 목표로 달려가면 저능하고 무능하고 야비한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는 국민을 가치관으로 전환시켜주고, 나라를 합리적인 구조로 이끌어놓으면 역시 합리적인 방안과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자동으로 경제가 좋아지고 선진국에 진입된다.

합리적 철학이 없는 지도자는 합리적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 때문에 금방 잘 살게 해줄 것처럼 갑자기 경제라는 달콤한 곶감을 제시한다. 그것도 마치 선진국이 달리기 시합해서 곧 주워질 것처럼 꾸며댄다.

“가치관, 가치 지향”은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를 사회답게, 국가를 국가답게 만들어주는 생명수다. 이제라도 가치관이 왜 중요하며, 얼마나 중요한지 심도 있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조차 없기에 국민의 귀에 전혀 와 닿지도 않는 말들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얻었다. 하지만 법과 제도를 위아래서 동시에 받쳐주고 밀어주고 보완해주는 가치관이 빠져버렸다. 때문에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공무원이든, 언론이든, 전문가든, 지식인이든, 일반 국민이든 존엄성에 있어서나, 합리적 철학에 있어서나, 책임감에 있어서나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할 정도로 차이점이 없어졌다.

가치관이란 진정한 의미를 일깨운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개혁에 성공한 것만큼 어려운 부분이며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인 가치관으로 바뀌지 않으면 결국 부작용과 병폐는 물론이고 부정부패에서도 절대 벗어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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