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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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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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은 소영을 본 순간, 심장의 박동이 멈추었다.

아니, 고압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숨이 일시에 멎는 듯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주 보는 얼굴인데도 왜 오늘따라 이러는지 모를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이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으응, 그래. 좋은 아침.”

태진은 방송국 홍보실 복도에서 봄 햇살처럼 화사한 그녀의 인사를 받고 말까지 더듬었다. 바보처럼.
스쳐가는 그녀의 얼굴은 밤이슬을 머금은 야화처럼 요염하면서도 싱싱했다. 깊게 패는 보조개를 만들며,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옷차림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육감적으로 쭉 빠진, 선이 고운 참붕어처럼 점액질이 끈적끈적 묻어날 것만 같은 그녀의 몸매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이 시리도록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꽉 죄게 입은 눈처럼 하얀 원피스가, 정성들여 한 듯한 화사한 화장이, 주위를 환하게 했다. 염색한, 약간 웨이브를 준 긴 금발머리는 허리까지 늘어져 걸을 때마다 물결처럼 출렁였다. 남자들을 뇌쇄시킬 듯, 삼각 팬티 라인까지 보이며 좌우로 흔들리는 앙팡진 엉덩이와 함께.

복도를 지나치던 한 무리 방송국 직원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자태를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의 난다긴다하는 수많은 여자 탤런트들을 매일처럼 접하는 그들이지만, 오늘 그녀의 모습은 그만큼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육감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흰 원피스 오른쪽 가슴 부근엔 엄지 손톱만한 검정색 종이 장미 악세사리가 매달려 있었다.

“야! 민소영이 저년, 사람 죽이네. 저 좌우로 흔들리는 엉덩이의 삼각 팬티 라인 좀 봐.”
“저 완벽한 몸매. 으이그, 난 쟤를 볼 때마다 몸살이 난다니까. 저런 애하고는 쫄쫄 굶으면서 며칠을 침대에서 뒹굴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거야.”

세계 일주 동서남북 팀의 최 PD와 카메라맨이 음흉한 눈길로 몇 번이나 그녀를 뒤돌아보고, 낄낄거리며,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있는 태진 곁을 지나갔다. 태진은 커피를 찔끔거리며 복도 끝으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복도의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살의 역광을 받은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멀어져 갔다. 커피향과 더불어 그녀가 남긴 향수 냄새의 입자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녀의 몸에서 풍겨오던 향수 내음. 그것은 몇 년 전, 프랑스 그라스에 여행갔을 때 해안 언덕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흑장미에서 느꼈던 장미의 그 향기와 같았다.

태진은 며칠 전, 우연히 그녀와 방송국 구내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선생님은 이상해요.”
“뭐가?”
“전 가끔 선생님이 목석인가, 아니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
인가 헷갈릴 때가 있다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밤낮으로 아리따운 영계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이 세계에선 그 흔하디 흔한 스캔들 한 번 없으니까요.”
“영계들이 뭐가 아쉬워서 이 노땅을 붙여 주겠어?”
“어머! 어머! 누가 그래요? 방송국 내에서 멋쟁이로, 스타 제조기로 소문이 자자한데…… 선생님이 여자들을 워낙 사무적으로 대하고 틈을 보이지 않으니까 지레 겁먹고 접근조차 못하는 거죠. 제 말이 틀렸어요? 저에겐 은인이나 마찬가지면서도 술 한 잔 살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걸 보면 알 만하다고요.”

어쩜 그녀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태진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으리라. 방송에 갓 입문한 햇병아리를 오늘날 이토록 크게 한 튼튼한 발판을 마련해 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방송국에서 해마다 배출해 내는 신인 탤런트 중에서, 끝내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져 가는 이 세계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정상에 우뚝 서게 됐으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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