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훈이 품속에 잠들었던 여자중 연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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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훈이 품속에 잠들었던 여자중 연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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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어느새 양수리 ‘행복의 강’이라고 간판이 붙은 카페에 멎었다. 두어 달 전의 일이다. 청둥오리 새끼 두 마리가 물위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얼마나 정다웠는지 모른다. 우리도 저 오리 새끼들처럼 다정하지 않느냐며 볼에 키스까지 선물하던 장소였다.

커피 값이 다른데 보다 훨씬 비싸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눈에 북한강을 바라볼 수도 있고 강 건너 서정리 마을이 한 폭의 그림 같아 가끔 이곳을 찾기도 한다. 언젠가 영화의 한 씬이 촬영되었다고 자랑하는 주인마담이 너무나 친절해서 양수리를 올 때마다 이 카페를 찾았다. 처음 이 땅을 살 때는 2억에 샀지만 지금은 5억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여자 주인을 마냥 부러워하던 연지이다.

“이런 카페라도 했으면 좋겠어. 당신 옆에 앉아 과일을 깎아 입에다 넣어주고.”
연지는 꿈을 그리고 있었다. 또 카페를 하고 싶다는 연지의 말이 듣기 싫어 길 건너 카페골목인 서정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분명히 연지는 또 카페를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훈이는 이런 카페를 살만한 돈이라고는 없다. 연지를 알고부터 카드는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옷에서부터 손가락, 목걸이, 심지어는 거들까지도 훈이의 카드에서 빠져나갔다. 연지에게 준 현대카드는 매달 백만 원 씩 빠져나갔다. 카드를 돌려 막기 시작한지 두 달 동안 무려 여섯 개의 카드가 한도액을 초과했다. 그렇지만 훈이는 한번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주말이면 훈이를 죽이는 연지의 숨은 비밀 때문이다.

훈이가 살아 온 오십여 평생 동안 수많은 여자들이 거쳐 갔다. 그의 나이만큼 그의 품속에 잠들었던 여인 중에 연지만은 훈이의 쓸개를 빼 주어도 아프지 않을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훈이는 창가에 앉아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연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곱게 흘겨보듯 살짝 올라간 갸름하고 긴 눈매, 칼로 그린 듯 또렷한 쌍꺼풀, 마치 서편제에 나오는 오정해의 아름다운 눈을 빼다 막아 놓은듯했다.

가끔 윙크라도 하는 날에는 훈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다. 여자는 가꾸기에 달렸다고 하듯 저렇게 예쁜 눈을 가지고 있는 연지를 바라보면 훈이의 심장은 수없이 고동쳤다. 연지는 특히 눈에 신경을 많이 썼다. 눈 화장도구만 하더라도 몇 가지나 된다. 아이섀도우, 마스카라, 아이 펜슬, 아이 컬러 등.

훈이는 눈길을 멀리 강 쪽으로 가져갔다. 안개가 걷히고 이른 아침인데도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강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리고 한 바꿔 원을 그리며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헤즐럿 커피가 이 집에서는 제일 맛이 좋다고 했다. 커피 시음은 연지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영등포에서 사촌언니가 카페를 하고 있었는데 몸이 아파서 입원을 하자 문 닫을 수 없다며 몇 달을 봐 달라고 부탁을 해서 주인 행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커피를 직접 끓였기에 커피 맛을 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훈이가 연지를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훈이가 찾아간 카페는 겨우 대여섯 평이나 되는 좁은 공간이다. 큰길가에 앉은 건물은 자투리로 겨우 다섯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두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뿐이다. 한길 가에 있기는 하나 일제시대 때 지은 목조건물이어서 계단을 올라갈 때면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유난히도 컸다. 진작 건물을 헐어야 했었지만 큰길 한복판에다가 땅값이 비싸 재개발을 하는 데는 대기업이 아니고는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래서 시에서는 재개발 구역으로 정한지 5년이 넘었어도 손도 대지 못했고, 건물 주인들도 언제 헐릴지 몰라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직장이 근처인 탓에 훈이는 조금이라도 시간만 생기면 카페를 찾아갔다. 연지를 쳐다보며 커피 마시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연지는 새로 나온 신곡이라며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를 자주 틀어 주었고, 어느 때는 <사랑하는 이에게>를 들려주며 훈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훈이는 설사 연지가 사랑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적극적으로 프러포즈를 해보기로 결심을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여간해서 커피를 같이 마시지 않았지만 연지는 훈이와 마주보며 웃음을 나누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끊는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이 들고 말았다.

연지는 집에 들어가서도 손님으로 찾아오는 훈이의 얼굴을 들 추겼다. 연지는 설거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카페로 향했다. 여는 때 같으면 이때부터 눈만 감으면 큼직한 얼굴이 눈을 가리고 다가와 있는듯해서 남편 곁은 엄두도 못 냈다. 행여나 남편의 손이 와 닿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만 모로 돌아누웠다.

어떻게 하든 남편과 싸울 일을 생각해야만했다. 아이의 학원비, 은행 이자 타령만 하면 남편은 쉽게 물러났다. 남편은 돈 이야기만 나오면 꼼짝도 못했다. 사업을 한다고 시작한지 일년도 못되어 다 털어 먹고 빌라마저도 은행에 담보를 잡혀 있기에 짹소리도 못했다.

돈의 방패막이 된 남편은 월급봉투를 받아오는 날 겨우 아내의 곁으로 다가 누울 수 있었다. 연지는 의무적으로 남편에게 몸을 맡겼다. 남편은 마치 도둑에게 쫒기 듯 올라갔다. 아내가 비명이라도 지르다가 아이들이 들을까봐 한손으로 연지의 입을 틀어막았다. 남편은 혼자 식식대다가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숨을 몰아쉬며 내려왔다.

이마저도 남편과 정을 나누면 내일 훈이와 만나는 것이 큰 죄를 짓는 듯해 자연스럽게 피하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심심찮게 말다툼이 벌어졌다. 연지는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나면 베게 하나만 달랑 들고 딸애 방으로 건너가곤 했다.

“또 아빠하고 싸웠어?”
딸아이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연지는 대꾸도 하지 않고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면 절대 남편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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